흔히 소박하고 볼품없는 집을 말할 때 '초가삼간'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그러나 그만한 집도 없는 사람들한테는 희망의 집이기도 했다. 위의 그림에서 보는 집이 딱 그런 집이다. 우리네 조선 팔도, 삼천리 금수강산에 가장 많이 지어졌던 우리들의 초가삼간은 부엌 하나에 9자 짜리 작은 방 두 개, 그 앞엔 좁디좁은 툇마루 하나가 전부였다.
평수로 따지면 방 하나가 채 3평도 안 된다. 낙숫물이 떨어지는 처마 안쪽을 다 계산하더라도 15평 정도의 작은 집이다. 여기서 부모님을 모시고 줄줄이 흥부네 제비새끼 같은 자식들을 거느리며 살아왔다. 큰 자식들은 부모님 방으로 보내고 아직 철없는 어린 자식들은 한방에서 같이 살고.
@BRI@여기서 소개할 집은 그런 사람들이 살던 초가삼간이 아니라 양반님네 사랑채다. 함허정이 있는 전남 곡성군 입면 제월리 군촌부락이 바로 그곳인데 좌측 초가집은 대문간 겸 행랑채고 그 안에는 안채가 있다. 여느 양반님네 집들과 달리 이 집은 특이하게 사랑채가 따로 있다. 출입구도 없고 울타리도 없다. 아무나 이 집에 들어와도 좋다는 뜻일 것이다. 길가던 과객이나 시인 묵객들이 얼마나 이 집을 많이 드나들었을까? 동네 아이들의 서당역할도 했다고 한다.
3칸 중 2칸은 방이고 한 칸은 마루다. 방 양 옆으로 퇴보(툇기둥과 안기둥에 얹는 짧은 보)를 걸어 방의 절반만한 폭을 보태 툇마루를 내고 실용성과 견고성은 물론 한옥의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또한 현대 건축의 호사스런 방식과는 달리 5량구조가 제격임에도 불구하고 마룻도리와 내진 주위의 중도리, 외진주(외진칸을 감싸고 있는 기둥) 위의 처맛도리를 하나의 서까래로 처리한 간결한 3량구조는 주인의 인품과 그 시대의 선비정신을 보는 듯하다.
간결하면서 소박한 이 집의 품새는 현대의 복잡하고 요사스런 한옥과 비교할 때 참으로 그 기품과 멋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넘쳐난다. 현대에 와서 이만한 정도의 집을 지을라치면 목재의 양만도 여기에 소요된 양의 서너 배가 더 들 것이다. 그것은 기둥과 서까래를 비롯한 각종 부재들의 굵기와 길이는 물론이고 집을 치장하기 위한 많은 목재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위 사진에서 보는 서까래는 아마도 최근에 문화재 보호라는 명목으로 보수를 한 듯한데 초기의 것을 그대로 재연해 놓지는 않은 모양이다. 한옥의 백미라 불리는 선자연(扇子椽, 귀서까래, 모양이 부채를 닮아 이렇게 불림)을 깔았는데 사진에서 보이는 서까래의 양만 가지고도 지붕 전체를 다 덮고도 남을 것이다. 그만큼 선자연이 나무의 양이 많이 들어가고 품이 까다로운 작업이다. 옛날 양반집을 답사해보면 보수하지 않은 집 치고 선자연이 걸린 집 없고 최근에 들어 보수해 놓은 집 치고 선자연이 걸리지 않은 집이 거의 없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건축물은 작고 간결한 구조에서 더 크고 복잡한 모양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 요즘의 추세다. 수공이 많이 들어가는 한옥에서 그 모양새를 위해 치장을 자꾸 하다 보면 나무의 양도 늘어나고 품도 훨씬 많이 들게 된다. 그러나 전통 건축물은 본래 그 격이 있게 마련이다. 살림집은 살림집의 품격, 또 사당이나 서원에서부터 절집이나 궁궐집의 품격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인 것이다. 이렇듯 외양만 중시하지 말고 짐짓 중요한 편의성과 실용성을 최대한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BS Uporte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