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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에게 굴과 따개비와 해초들이 죽어가고 있는 부안 앞바다에 대해 말하고 있는 강영선 할머니. 아이들의 안타까운 시선이 더 아프다.
ⓒ 최종수
여러 방송과 언론에서 지구온난화를 새해 특집으로 다루고 있다. 50년 뒤에 제주도에서 열대병인 뎅기열 환자가 발생하고 아마존 우림은 사막이 되어갈 것이란 전망이다.

그린란드의 얼음이 절반쯤 녹으면서 국토가 물에 잠긴 방글라데시와 남태평양의 환경난민들이 세계를 떠돌고, 정부는 제방을 높이는 데 지나치게 많은 예산이 든다는 여론에 따라 새만금 간척지를 포기할 것이란 예측이다. 2100년에는 목포와 군산, 남포와 신의주의 대부분이 바닷물에 잠길 것이고 눈송이를 볼 수 없는 3계절의 나라가 된다는 충격적인 보도가 새해의 벽두를 장식했다.

24일 오후, 성당의 중·고생 아이들과 함께 콧구멍에 바닷바람을 쐬는 동계수련회로 새만금 방조제와 변산해수욕장을 지나 격포 적벽강 국립공원에 갔다. 격포리 중막마을의 천주교 공소 건물을 관리하는 할아버지 댁을 방문했다. 할아버지는 오늘(24일) 따온 것이라며 자연산 굴과 소주를 상에 올렸다.

'어머니 바다'와 함께한 꿈 같은 세월은 가고

▲ "바다는 어머니"라고 고백하는 강씨 할머니는 매일 바다에 나가 어머니의 신음소리를 들어야 하는 게 가장 가슴 아프다고 말한다.
ⓒ 최종수
강영선 할머니(67)는 서귀포에서 태어나 줄곧 바다를 떠나본 적이 없었다. 농사짓듯이 바다에서 전복, 해삼을 따며 살아왔다. 어머니의 품에서 젖을 먹고 자란 아이처럼 바다가 한없이 키우고 베푼 것을 먹고 자란 백발의 할머니는 "바다가 어머니"라고 말한다. 30년 전 전복 양식을 시작한 남편을 따라 격포에 살게 된 해녀가 삶의 실타래를 풀기 시작했다. 그 고백은 어머니의 은혜에 대한 자식의 도리이며 바다를 향한 사모가였다.

"제가 격포에 이사 올 때만 해도 여기 사람들은 물질을 할 줄 몰랐습니다. 제가 육지 해녀 1호지라. 처음으로 물질하러 채석강 앞바다에 들어갔을 때,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요.

그 때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어요. 해삼, 전복, 성게가 버글버글했죠. 해녀들이 물질한 것들을 임시로 보관하는 수족관에 들어온 착각이 들었다니까요. 얼마나 신이 났던지, 점심시간도 잊은 채 배고픈 줄도 모르고 땄지요."


"5년 전까지만 해도 손님을 기다리는 횟집의 수족관처럼 해삼, 전복이 많았어요. 그런데 새만금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어요. 하루에 1000Kg 잡던 해삼, 전복이었는데 지금은 10Kg 잡기도 어렵습니다. 어디 그뿐이에요. 2년 전까지만 해도 게장을 담는 독게를 두 사람이 1200Kg 넘게 잡았습니다. Kg당 8000원 했응께 960만원을 하루에 번 셈이지요. 돈벼락이 따로 있나요."

할머니들은 바닷물에만 들어가면 망태 가득 희망을 따 올리던 기억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드디어, 마실 나온 정희금 할머니(71)가 꾹꾹 눌러서 쌓아놓은 말문을 열었다. 잔뜩 화가 난 사람의 분노였다.

▲ 격포리 중막에서 태어나 71년 동안 이곳을 떠나지 않고 있는 정희금 할머니. 할머니는 새만금 방조제 때문에 부안 앞바다가 죽어가고 있다고 개탄했다.
ⓒ 최종수
"해삼과 전복은 말할 것도 없고, 노랑조개랑 바지락이 손으로 긁어 담을 정도로 많았어요. 근데 이젠 바지락 씨가 마를 지경이니 조개 먹고 사는 소라도 없어요. 새만금 갯벌이 휩쓸려 와서 해초들이 죽으니까 전복도 없어요.

두 사람이 한 조로 나가 물질하면 이 집 시멘트 대형 수족관 4개를 가득 채웠는데, 지금은 해변 바위에 붙어사는 굴 따는 것으로 입에 풀칠하고 살아요."


목까지 차오른 분노를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김재열 할아버지(70)가 일어나 책꽂이로 간다. 두꺼운 노트를 꺼내들고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시커멓게 타버린 애간장을 꺼내 보여주는 울분이었다.

"이 장부가 2006년도 해녀들의 물질과 양식장에서 작업한 것들을 적어놓은 것인디, 작년 6월 이후로 작업을 그만뒀어요. 여기 보쇼잉. 하루에 두 사람이 1200Kg 잡던 독게를 5Kg 밖에 잡지 못헌디, 어떻게 작업을 할 수 있당가요? 선장 하루 일당 20만원 줘야 허고, 면세 휘발유가 10만 원 정도 들어가는디 워떡케 물질을 한당가요. 휘발유 값도 나오지 않아서 때려 치워 부렸당게요.

새만금 갯벌이 위도까지 휩쓸려 가서 전복, 해삼이 다 죽어가고, 갯벌에 산란하러 오는 고기가 없으니 인근 어장서도 고기가 잡히질 않아요. 하루에 최소한 30~40만원 벌던 통통배들이 하루에 10만원도 못 잡으니 워떡케 그물을 던지겄어요. 새만금 땜에 인근 어민들 굶어죽게 생겼당게요."


▲ 해녀들의 물질과 양식장의 작업 일지 장부. 일지의 6월 19일자 독게 자리에, 1200Kg를 밀어낸 '5Kg'이 선명하게 적혀 있다.
ⓒ 최종수
"새만금 땜에 어민들 굶어죽게 생겼당게요"

다음날(25일) 오전 11시 반경에 아이들과 적벽강 겨울 바다에 나갔다. 동네 할머니 네 분이 굴을 따고 있었다. 공소 할머니도 수건을 두르고 부지런히 손을 놀리고 있었다.

제법 바다바람이 쌀쌀했다. 아이들은 여기저기 신기한 눈빛으로 돌을 들어보기도 하고 굴을 따서 먹기도 했다. 파도가 아이살결처럼 반들반들 만들어놓은 조약돌과 여러 조개껍질을 줍는 아이들에게 강영선 할머니가 다가갔다. 손자들에게 뭐가 알려주고 싶은 게 있었던 모양이다.

"얘들아, 난 바닷가에서 나고 바닷가에서 자라서 바다를 잘 알아. 이것은 굴이고 이것도 굴과에 속하는 따개비라고 하는데 여기 하얗게 죽었지. 이것은 해초인데 이곳에 발 디딜 틈 없이 빽빽했어. 근데 씨가 말라가고 있어. 자라는 것도 이렇게 영양실조란다.

너희들이 엄마가 돼서 아이들과 이곳에 와도, 너희들처럼 굴을 따서 굴김치전을 해 먹을 수도 없을 거야. 나는 이제 70이 다 되었단다. 이렇게 죽어가는 바다를 보면 속상할 때가 많아. 너희들처럼 굴을 따는 아이들을 보면 더욱더 마음이 아프단다."


"내가 시집가서 우리 아이들과 적벽강에 왔을 때 굴 하나 따먹지 못한다면 어떡해! 이 맛있는 굴을…."
"야, 너만 시집가니. 나도 장가간다."

"저기 벌거숭이 섬 옆에 보이는 게 뭐지 알아?"
"새만금 방조제 말이에요?"
"그래, 저 방조제 때문에 새만금 갯벌이 썩어서 악취가 나기 시작했어. 변산해수욕장에 갯벌이 쌓이고 물길이 달라져서 모래가 쓸려나가고 있어. 여기 먼 곳까지 이처럼 죽어가고 있어. 저 멍청한 방조제를 터야해. 그래야 새만금 갯벌이 살고 해수욕장도, 국립공원 채석강도 살 수 있어. 그래야 바다가 살고 너희들도 살 수 있는 거야.

방조제 위에 풍력발전기를 세우고 두세 군데 터서 현수교를 놓고 관광지로 개발해야 한단 말이지.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면 농촌경제가 파탄난다고 하지만, 농민은 땅이라도 있으니 농사를 지을 수 있잖아. 그러나 바다 생태계가 죽으면 바다가 있어도 잡을 것이 없는 어민들은 살 수가 없어. 저 웬수 같은 방조제를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니까."

▲ 꽃씨 하나에도 우주가 들어있다고 하지 않던가. 생명이 살 수 있는 유일한 지구를 두 손으로 바쳐 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최종수
아이들의 눈빛에도 할머니를 향한 안타까움이 서려 있다. 그 눈빛이 자신의 미래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총총히 동네 할머니들이 굴을 따는 장소로 되돌아갔다. 전복껍질에 여러 조개껍질과 고동게를 잡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신기한 눈빛으로 둘러서서 바라보는 아이들. 그 아이의 작은 손에 우주가 들려있었다. 은하계의 우주에서 생명이 살 수 있는 유일한 지구, 그 아이는 두 손으로 지구를 받쳐 들고 있었다.

아이들이 엄마가 돼 다시 와도 굴을 딸 수 있을까

바다는 아이들의 배꼽시계마저 멈추게 했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됐다. 할머니께 인사드리러 갔다. 그릇에 담긴 굴에서 겨울 햇살이 자르르 윤기를 발하고 있었다. 입안에 침이 고이기 시작하자 입술이 그만 조개처럼 열리고 말았다. 할머니들의 웃음에 먼발치에서 파도가 화답한다. 새만금 갯벌과 부안 앞바다가 할머니들처럼 웃었으면 좋겠다. 그 웃음이 우리 아이들에게까지 영원할 수 있도록.

▲ 동네 할머니들이 바위에 서식하는 굴을 따고 있다. 죽어가고 있는 부안 앞바다 상황을 감안하면, 저 작업도 언제 그만둬야 할지 모른다.
ⓒ 최종수
"할머니, 굴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요!"
"하~하~하~."
"여기 그릇째 드쇼잉."(강씨 할머니)
"워매 그래도 동상이 안 죽고 싶은가 보제!"(정씨 할머니)
"하~하~하~."
"굴맛이 꿀맛이라더니 정말 죽이네요."
"작고 볼품없지만 크고 때깔 좋은 양식굴과 맛으로 비교할 수가 없죠."(강씨 할머니)
"……."

이번엔 강씨 할머니가 농을 걸었다.
"어젯밤에 준 호박떡 주면 안 잡아먹지!"
"안 잊어먹으면 아이들 편에 보내드릴게요!"
"죽기 싫은 것은 젊은 신부도 마찬가지그만!"(정씨 할머니)
"하~하~하~."

▲ 아이들이 가져다 드린 호박떡을 점심으로 들고 있는 동네 할머니들.
ⓒ 최종수

태그:#새만금, #부안, #부안 앞바다, #적벽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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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 기자는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일꾼으로, 불평등한 소파개정 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으로 2000년 6월 20일 폭격중인 매향리 농섬에 태극기를 휘날린 투사 신부, 현재 전주 팔복동성당 주임신부로 사목하고 있습니다. '첫눈 같은 당신'(빛두레) 시사 수필집을 출간했고, 최근 첫 시집 '지독한 갈증'(문학과경계사)을 출간했습니다. 홈피 http://www.sarang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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