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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들
연인들 ⓒ 정현순
"저 사람들은 파도가 저렇게 심한데 위험하게 저기에서 저러고 있을까?"
"그러게, 부부사이가 저렇게 좋을까?"


거센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가는 바닷가에서 두 남녀가 꼬옥 끌어안고 서 있다. 마치 한 사람처럼 보일 정도로. 내가 사진을 찍자 남편은 "함부로 찍지마. 괜히 큰일날라" 한다. "누가 누군지 몰라. 멀어서 얼굴은 하나도 나오지 않아" 파도가 점점 심해지기 시작했다.

@BRI@지난 금요일(26일) 대설주의보가 내렸지만 강원도로 2박3일 예정으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눈이 오면 딸, 사위 아들은 더 좋다면서. 우리 부부는 그런 아이들이 신기했다. 눈이 오면 운전하기 힘들 텐데. 아이들은 그런 걱정을 전혀 하지 않는 듯했다. 오히려 그러기를 기대하는 듯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눈은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다.

27일 아이들과 스키장을 갔다 숙소로 돌아 온 시간은 저녁 5시 무렵. 그날 바닷가에 가지 않으면 그곳의 겨울바다를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남편에게 "아이들은 피곤해 보이니깐 우리 둘이 요앞에 있는 바다에 좀 나갔다 옵시다" 했더니 남편은 만만의 준비를 하고 나선다.

남편과 단둘이 바닷가를 걸으면서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 5분 정도 걸으니 바닷가에 도착했다. 바다 비린내가 나면서 갈매기들 소리가 '끼륵끼륵' 들려오기도 했다.

평화스러워 보이는 청둥오리들
평화스러워 보이는 청둥오리들 ⓒ 정현순
갈매기들처럼 보이는 새들이 한가하게 산책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난 "어머나 갈매기들 좀 봐" 했다. 남편은 "갈매기가 아니라 청둥오리 같은데?" 한다. 바람이 불어온다. 불어오는 바람에 파도가 일렁인다.

마음이 다 후련해지고 개운해진다. 일렁이는 파도가 손짓을 하고 있는 듯했다. 남편과 뚝방아래로 내려갔다. 꼬마 낚시꾼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난 아이에게 "오늘은 무슨 고기 잡았어요?" 물었다. 그 아이는 멋쩍은 듯 싱긋 웃으면서 "아직 한 마리도 잡지 못했어요" 한다. 파도가 점점 거세진다. 하얗게 부서졌다 삽시간에 다시 밀려나간다.

꼬마 낚시꾼
꼬마 낚시꾼 ⓒ 정현순

불빛이 반짝이는 오징어 배
불빛이 반짝이는 오징어 배 ⓒ 정현순
하얗게 밀려가는 파도를 따라 나도 모르게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남편은 걱정이 되는지 "이젠 그만 찍고 가자" 한다. "조금만 더" 난 정말 좋았다. 그곳의 풍경과 소리를 모두 담아가고 싶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거칠어지는 파도소리, 하얀거품, 이렇게 가까이 보기도 처음이다. 난 그런 파도를 쫓아다녔다.

조금 높고 바다 가까이에 있는 바위 위로 올라갔다. 일렁이는 파도를 실감나게 찍고 싶었다. 그때 남편의 걱정스런 목소리가 또 들려온다. "거기는 진짜 위험해 보인다" "아니야 여긴 높아서 괜찮아" 난 그곳에서 몇 장만 더 찍고 숙소로 돌아가려고 마음 먹었다.

열심히 찍고 있는데 파도가 그곳까지 밀려왔다.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입고 있던 바지, 양말, 신발, 무릎 아래까지 파도가 모두 휩쓸고 지나갔다. 나도 모르게 큰 함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카메라를 보호하느라 더 많은 수난을 겪어야 했다.

남편은 "그것봐라 어째 위태 위태해 보인다 했어. 다친 데는 없어?" "다친 데는 없는데 옷과 신발이 다 젖었어" "그래도 넘어지지 않은 게 다행이다" 난 갑자기 밀려드는 파도를 피하느라 껑충껑충 뛰면서 이리저리 피했었다. 남편은 업히라고 한다. 망설이다 남편에게 업혔다.

서산으로 넘어가는 해
서산으로 넘어가는 해 ⓒ 정현순
얼마 만에 남편 등에 업혔는지. 예전에는 남편이 힘이 없어 보이면 "나 좀 업어 봐. 우리 남편이 얼마나 힘이 빠졌는지 보게" 했었다. 그럴 때면 남편은 한 번 웃고 나를 업어 주곤 했었다. "우리 남편 아직은 괜찮은데" 하면 남편의 기분은 풀어지곤 했었다. 어느새 주변은 껌껌해졌다.

남편 등에 업혀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바닷가 멀리에서 불빛이 보인다. "어머나 저건 또 뭐지?" "저게 바로 오징어 잡는 배야" 한다. "자기 힘들지만 나 좀 잠깐 내려줘 봐" 남편은 내 의도를 알아 차리곤 적당한 곳에 내려준다. 멀리서 작은 점점이 불빛이 보이는 오징어배를 찍고 난 걸어간다고 했다. 남편은 괜찮다면서 또 업히라고 한다. 난 못 이기는 척하고 다시 업혔다.

하얗고 거센 파도가 나를 유혹했고 나는 그런 파도에 붙잡혀 파도에 푹 빠졌던 날이었다. 몸과 마음이 파도에 반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파도가 사람도 집어 삼킬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거센 파도는 정말 무섭다는 것을. 모든 것이 새삼스러웠다. 며칠이 지난 지금도 조용히 있으면 '철썩 철썩' 눈이 부시도록 일렁이는 하얀 파도와 거센 파도소리가 귓전을 맴돌고 있다.

'철썩 철썩~~~ 쏴악 쏴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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