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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곳엔 논이 있었고 높은 곳엔 밭이 있었지요. 산 밑 열 마지기 우리 사과밭은 산그늘도 빨리 졌어요.
낮은 곳엔 논이 있었고 높은 곳엔 밭이 있었지요. 산 밑 열 마지기 우리 사과밭은 산그늘도 빨리 졌어요. ⓒ 이승숙
집에서 나와 한참을 걸어가야 하는 우리 열 마지기 밭. 아버지는 곡괭이로 땅을 파시다가 "아부지요∼"하는 내 소리에 "오∼야"하시면서 구덩이에서 나오셨다. 돌 골라 갖다 버리느라 힘들었을 엄마도 머릿수건을 벗어 옷을 탁탁 털면서 웃음 띤 얼굴로 나를 맞으셨다. 우리 셋은 땅바닥에 둘러앉아서 밀가루전을 먹었다.

사과농사가 제대로 되어서 돈을 막 만지기 시작했을 때 사과 팔아서 산 돈을 엄마 아부지는 하루 저녁 담요 밑에 깔고 잠을 잤단다. 돈에 포원(抱寃)이 져서 일부러 그래 해봤다고 한다. 돈 깔고 잔다는 말이 있더니 우리 엄마 아부지가 진짜로 그랬던 거다. 엄마 아부지는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레었을까.

나중에 우째(어떻게) 알았는지 이웃 사람이 물었다.

"잇살띠기요, 돈 깔고 자이 어떻던교?"

한창 청년기의 사과나무에서 돈이 막 쏟아져 나왔을 때, 늦도록 밭에서 일해도 엄마 아부지는 힘든 줄을 몰랐단다. 돌이켜 보니 사과나무와 함께 우리 집도 그 시절이 가장 번성했던 거 같다.

사과나무와 함께 했던 우리 집, 다시 일어설 준비를 한다

그렇게 울울창창했던 사과나무도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하나하나 사그라져 갔다. 햇빛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꽉 짜여서 우거져 있던 사과밭이 어느샌가 머리숱 빠진 중늙은이 머리처럼 숭숭 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몇 해 더 지나 사과나무를 다 베어내고 말았다.

사과나무의 쇠락과 함께 우리 집도 기울기 시작했다. 내 몸 안 아끼고 장정처럼 일하던 우리 엄마가 아프기 시작한 거였다. 엄마가 돌아가시자 우리 부모님이 알뜰살뜰 모았던 재산들이 솔솔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논밭전지를 정리하려고 아버지가 마음을 먹었던 적이 있었다. 웃대 어른들로부터 아부지 엄마에 이르기까지 땀과 눈물로 만들어졌을 논밭전지들. 그 어느 것 하나 마음 안 가는 게 있으랴만 그중에서도 특히 닷 마지기 논과 열 마지기 밭은 우리에겐 특별한 존재였다.

그래서 남동생은 아버지에게 간절하게 말씀드렸다 한다. 그 밭은 엄마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밭이니 놔두고 싶다고 말씀드렸단다. 그래서 열 마지기 사과밭은 우리 곁에 남게 되었다.

재작년 겨울에 친정 집에 갔을 때 일부로 열 마지기 밭에 올라가 보았다. 근처 밭에는 산소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살아평생 밭에서 살던 사람들이 죽어서 밭 근처에서 쉬고 있었다.

우리 밭도 쉬고 있었다. 밭에는 드문드문 감나무 애동나무가 심겨져 있었다. 열 마지기 밭은 다시 일어날 때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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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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