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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일어난 ‘이형호 어린이 유괴 살인 사건’을 모티프로 아이를 유괴당한 부모의 지옥 같은 44일간의 행적을 그린 영화 <그놈 목소리>시사회가 29일 저녁 용산 CGV에서 열렸다. 대구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피해부모 김현도씨(김영규의 부친)가 이날 시사회에 초청돼 영화를 관람하고 있다.
1991년 일어난 ‘이형호 어린이 유괴 살인 사건’을 모티프로 아이를 유괴당한 부모의 지옥 같은 44일간의 행적을 그린 영화 <그놈 목소리>시사회가 29일 저녁 용산 CGV에서 열렸다. 대구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피해부모 김현도씨(김영규의 부친)가 이날 시사회에 초청돼 영화를 관람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저렇게 멋진 놈을 누가…"

멋진 자식놈을 데려간 '그놈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사진 속 우철원군은 변함없이 13살 모습 그대로인데, 사진 앞에 선 아버지 우종우(60)씨는 백발이 성성했다. 마치 먼저 간 손자를 보면서 탄식하는 할아버지 모습이었다.

우씨는 한참동안 고인이 된 아들의 사진 앞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두 손을 비비며 "멋진 놈"을 읊조렸다. 오후 8시 영화 시작을 알리는 안내 방송에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붉은 얼굴은 오기 전에 마신 맥주 탓이라고 말했지만, 서서히 붉어지는 눈에 대해서는 "어이구, 참"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영화가 끝난 뒤 우씨는 "똑같네, 우리 이야기랑 똑같다"며 영화 속 부인이 기독교 신자인 것부터 여러 차례 협박전화로 거금을 준비했다 무산된 과거 등을 되짚었다. "타들어가는 부모들 심정을 잘 표현했네"라고 평가했다.

29일 오후 서울 용산CGV 극장에서 영화 <그놈목소리>의 특별 시사회가 열렸다. 영화 <그놈목소리>는 지난 1991년 실종된 이형호군 유괴사건을 영화화한 것으로, SBS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의 AD 출신인 박진표 감독이 당시 취재했던 자료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이날 시사회에는 유명 배우와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지만, 언론의 관심을 받은 이들은 대구에서 올라온 우씨와 김현도씨, 박건서씨 등이었다. 이들은 모두 지난 1991년 실종된 '개구리 소년들'의 부친으로, 김씨와 박씨는 각각 영규(당시 11세)군과 찬인(당시 10세)군의 아버지다.

철원, 영규, 찬인이를 비롯해 조호연(당시 12세)군과 김종식(당시 9세)군 등 5명의 아이들은 당시 동네 인근 와룡산(경남 사천)으로 개구리를 잡으러 나간 뒤 실종됐다. 그 후 11년이 지난 2002년 9월 대구 달서구 성산고 신축 공사장에서 유골이 발견됐을 뿐 범인에 대한 단서 없이 2006년 3월 25일 공소시효가 끝났다.

"슬픈 나의 과거, 기대되는 나의 영화"

현상수배극을 표방한 <그놈 목소리>는 실화에 바탕을 두었지만 주인공들의 인물설정은 영화적으로 재구성했다. 주연을 맡은 배우 김남주·설경구씨가 박진표 감독과 나란히 무대에 올라 인사말을 하고 있다.
현상수배극을 표방한 <그놈 목소리>는 실화에 바탕을 두었지만 주인공들의 인물설정은 영화적으로 재구성했다. 주연을 맡은 배우 김남주·설경구씨가 박진표 감독과 나란히 무대에 올라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29일 <그놈 목소리> 시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상경한 우종우씨(대구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피해부모, 우철원의 부친)가 영화를 관람한 뒤 기자의 질문을 받고 있다.
29일 <그놈 목소리> 시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상경한 우종우씨(대구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피해부모, 우철원의 부친)가 영화를 관람한 뒤 기자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이날 시사회에는 개구리 소년들의 부친뿐만 아니라 자식을 잃은 경험을 갖고 있는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모임'(회장 나주봉·이하 전미찾모) 회원들이 유괴 등 특수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를 위한 서명운동을 펼쳤다.

또한 유명 영화배우들과 함께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 문병호 열린우리당 의원, 고경화 한나라당 의원, 권영길·최순영 민주노동당 의원 등이 참석해 영화관은 영화 시작 한시간 전부터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를 바라보는 우씨의 기분은 어땠을까. 아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돌아오라 개구리소년>(1993년)는 그의 표현대로 "쫄딱 망했"지만, 비슷한 시기의 또다른 실종사건을 다룬 영화는 개봉 전부터 문전성시를 이루는 것을 보니 기분이 설렌단다. 유괴범에 대한 공소시효(현행 15년)가 연장되거나 폐지되는 법안이 탄력을 받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씨는 "공소시효가 폐지되고, 우리 아이들 사건이 소급 적용될지 몰라 마음이 들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고통은 겪어봐야 안다고, 자식 잃은 부모 심정은 당해본 사람만이 안다"며 "비슷한 처지의 부모를 도울 수 있는 일인 것 같아 영화를 보러 왔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범인이 양심선언을 해주면 마음이 편할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전미찾모 회원인 김아무개(여)씨는 "세상에서 유괴가 없어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왔다"며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는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의 딸은 3년 전 유괴됐다가 실종 4개월 후에 사체로 발견됐다. 서명운동 책상을 지키고 있던 김씨의 손목에는 자살 기도를 한 흔적이 있었다.

이날 시사회를 찾은 이형호군의 부모는 언론에 자신들을 공개하지 않은 채 사라졌다. 이들은 영화를 다 본 뒤 박진표 감독을 찾아와 눈물을 흘리며 그를 안아주고 집으로 돌아갔다.

"공소시효 15년, 너무 짧다"

대구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피해부모들은 "10년, 20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 미제사건의 경우 현재의 공소시효는 너무 짧다"며 "아동 유괴 등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아예 폐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대구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피해부모들은 "10년, 20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 미제사건의 경우 현재의 공소시효는 너무 짧다"며 "아동 유괴 등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아예 폐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이같은 가족들의 고통과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실감나는 연기 덕분인지, 이날 영화를 본 이들은 "악질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폐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최순영 의원은 "아동 유괴, 성폭행 등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폐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해졌다"며 "특히 장애아들을 유괴해 돈벌이에 이용하는 범죄에 대해서는 더욱 공소시효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법안 제정을 위해 국회 차원에서 여러 노력을 했는데, 영화 한편이 더 큰 영향력을 끼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박진표 감독은 "시사 프로그램을 제작할 당시, 이형호군 사건은 아동 유괴라는 점과 공소시효의 문제점 등으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며 "이번 영화를 통해 실험을 해 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한국도 다른 나라처럼 유괴 같은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김현도씨는 "법안을 만들 당시에는 공소시효를 정해두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10년, 20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 미제사건을 생각하면 지금의 공소시효는 너무 짧다"며 "폐지가 어렵다면 30년으로라도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주봉 전미찾모 회장은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은 아픔을 평생 안고 사는데, 가해자는 15년만 버티면 면죄부를 받게 된다"며 "피해자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데, 법적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또한 "20∼30년 시간이 흘렀음에도 과학기술이 발달해 DNA 분석 등이 가능해졌는데, 공소시효가 만기돼 조사하지 못하는 사건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공소시효는 끝나고, 관련법안은 계류중

'3대 미제사건'으로 불리는 이형호군 유괴살해사건,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 화성 연쇄살인사건은 각각 2006년 1월, 3월, 4월로 공소시효가 끝난 상태다.

현행법상 살인죄는 공소시효가 15년이고, 성범죄의 경우 7년이다. 일부에서는 이에 대해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지나치게 짧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경우 살인에 관한 공소시효를 25년으로 연장했고, 독일은 30년이다.

문병호 열린우리당 의원이 2005년 8월 살인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20년으로 연장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제출했다. 공소시효 폐지와 관련해서는 이원영 열린우리당 의원이 같은해 7월 '반인권적 국가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안'을 제출한 바 있다.

이들은 모두 공소시효 연장 혹은 폐지를 다루고 있는 법안으로, 제출된 지 1년이 지났음에도 지금까지 법사위에 계류중이다. 문병호 의원은 "형사소송법 개정안의 경우 처리를 합의한 상태"라며 "올해 2월 혹은 4월에 처리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민 10명 중 7명이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S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엔조이>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대표 이택수)에 의뢰해 지난 25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남녀 740명을 대상으로 전화 조사한 결과, 69.1%가 "폐지해야 한다"고 답한 반면 22.5%가 "폐지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이번 조사의 표집오차는 95%로 신뢰수준은 ±3.6%였다.

덧붙이는 글 | 현재 '㈔전국미아·실종찾기 시민의모임'(www.182.or.kr)과 문병호 열린우리당 의원(www.lawmoon.com), '고 이형호군 유괴사건 국민수사본부'(www.wanted1991.org)는 각각 홈페이지를 통해 공소시효 폐지를 위한 온라인 서명운동을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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