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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 최병수
ⓒ 조찬현
화가 최병수(47). 그의 이름을 떠올리면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기억들이 생생하게 나부끼며 되살아난다. 그가 그린 걸개그림 '한열이를 살려내라'는 1987년 6월 항쟁의 상징이었다. 그런 그가 여수의 한 섬에 살고 있다고 한다.

한때 문제 화가로 불리기도 했던 그가 무공해 화가, 아름다운 목수로 전남 여수의 섬으로 돌아왔다.

맑은 물을 좋아하는 은어처럼, 은어는 어릴 때 바다로 나갔다가 다시 하천으로 되돌아오지만 그는 뭍을 떠돌다 바다로 되돌아왔다. 은어는 살에서 수박향이 나지만 그의 살에는 진한 인간의 향기가 배어 있다.

2002년 교보환경문화 대상과 2004년 민족예술상 개인상을 받기도 한 그는 주요 작품으로 '이한열 영정', '장산곶매', '펭귄이 녹고 있다', '새만금호 배솟대', '이라크 바그다드', '백두산' 등이 있다.

최병수, 그가 보고 싶다

▲ 그가 살고 있는 백야도의 파란 집
ⓒ 조찬현
지난 1월 29일 그를 만나러 전남 여수 화정면 백야도에 갔다. 지난해에 한 번, 올해만 벌써 세 번째다. 갈 때마다 약속도 없이 나의 일정에 맞춰 찾았는데 매번 허탕치고 돌아서야만 했다. 단 한 번도 그를 만난 적이 없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언젠가 신문에서 봤던 까까머리 그의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고 문득문득 떠오르곤 한다.

멀리 아름다운 백야대교가 보인다. 백야대교의 교각이 아침 햇살을 받아 번쩍 섬광이 인다. 그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좋은 예감이다. 백야대교를 내달려 바닷길을 지나 그의 집 앞이다. 지프차 한 대가 집 앞에 떡 하니 버티고 있다.

지난번 여길 찾았을 때마다 자물쇠가 굳게 잠겨 있어 문틈으로 살짝 호기심 어린 눈망울을 굴리다 돌아서곤 했었는데, 대문이 활짝 열려 있다. 파란 지붕 위에서 까치가 운다.

그림 같은 그 집에 그가 산다. 대문을 나서면 너른 바다가 마당처럼 펼쳐지고 고개를 돌리면 백야대교의 아름다운 모습이 눈에 밟힌다.

"안녕하세요?"

기분이 좋은 상태인 나는 호기 있게 그를 불렀다. 오전 10시, 늦은 아침식사를 하던 그가 반갑게 맞이한다. 식사를 하다 말고 그가 안방으로 안내한다. 실은 안방이라기보다는 작업실에 가까웠다.

방을 휘∼ 둘러보았다. 앉으라고 그가 방석을 내줬지만 난 그런 건 안중에도 없었다. 그의 작품들은 방바닥에 널브러져 누워 있기도 하고, 또는 벽에 기대 있고, 어떤 건 벽에 붙어 있다. 그의 수많은 작품들이 시선을 붙들고 날 놓아주질 않았다.

묘한 생명력, 흡입력 강한 그의 작품

▲ 작업실
ⓒ 조찬현
그 방에 들어서는 순간 잠깐 호흡이 멎었다. 그의 작품 하나하나는 묘한 생명력을 발하며 날 끌어당겼다. "지난번 마을 사람들에게 여쭤봤더니 이 집에 목수가 산다더라"고 말을 건네자 그는 "하하하∼" 시원스런 웃음을 날린다.

그의 작품을 하나하나 세심히 살펴보고 있는 나에게 그는 거침없이 말을 내뱉는다.

"세상이 모순덩어리입니다. 골고루 다 병들었으니까. 종합병원 형식으로 작품을 해야 됩니다. 써먹을 수 있는 건 다 써먹어야죠."

"밑 빠진 독에 부처님이 앉아 계신 거지요. 2001년에 서울의 조계사에 전시했던 작품입니다."


▲ 작업에 사용하는 공구걸이와 공구
ⓒ 조찬현
▲ 밑 빠진 독에 앉아 계신 부처님, 2001년 서울의 조계사에 전시했던 작품이다.
ⓒ 조찬현
요즘 그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스케치를 한다. '알 시리즈'는 2001년 이라크 방문 전부터 작업을 했다.

"미사일 둥지에 알이 있는 겁니다. 전 지구를 알로 봤지요. 지구가 알이고 인간은 알 속에, 이 안에 있는 거지요. 인간들은 알 속에서 싸움질이나 하고 눈먼 장님이지만, 미사일 쥔 놈이 먼저 싸우고 있지요. 이 안에서 싸우면 지구 종말이잖아요? 지구 온난화 등으로 환경문제도 심각한데…."

"그건 2000년에 만든 작품인데 컨베이어 벨트가 지구를 파먹는 거예요. 맥도널드 코카콜라 등의 다국적 기업이 컨베이어 벨트를 돌리고 있는 것이지요."


환경운동가이기도 한 그가 얼음조각으로 만든 펭귄은 지구 온난화로 남극의 빙하가 녹아내리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작업에 사용하는 공구걸이도 독특하다. 나무의 겉 표면을 절단하고 구멍을 뚫어 드릴과 송곳 줄, 붓 등의 작업도구를 꽂아 놨다.

그는 삶 자체가 예술이다

▲ 검정 고무신으로 만든 실내화
ⓒ 조찬현
거실에는 이상하게 생긴 검정 고무신 서너 켤레가 놓여 있었다.

"고무신 뒤축이 달아서 재활용하기 위해 잘라내서 만든 겁니다. 환경보호도 되고, 뭐~ 일석이조죠."
"일상이 다 예술이네요?"


그의 삶 자체가 예술이다.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게 다 작품이다. 출입문 벽에 걸어놓은 두 개의 표주박, 계란 종이상자를 액자에 담아 걸어 놓으니 그것 또한 아름다운 예술작품으로 다가온다.

그의 생활에 사용하는 도구 하나까지 다 작품이다. 기다란 탁자를 가리키며 "이런 거 목수 시절에 만들어 놓은 걸 쓰는 거지. 요철이니까 끼워 맞춰서…"라고 말한다.

그는 나무와도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말한다. 대화를 나눌 수 있느냐고 묻자 희망사항이란다.

"큰 사다리와 작은 사다리 두 개의 사다리가 있는데, 이건 1996년도 작품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큰 사다리를 자기 거라 그러고, 나이 든 사람들은 겪어보니까 큰 사다리는 재벌들 거지 내 거 아니다 그래요. 빈부격차, 사회 양극화를 '두 개의 사다리'로 표현했어요. 우리 생활에 익숙한 소재를 사용해야 사실적으로 통하는 겁니다."

"수년 전 사다리를 일산의 집 마당에 꽂아 놨는데, 친구가 왜 여기다 세워놨느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사람들이 누구나 하늘로 오를 수 있도록 길게 자라라고 심어 놨다고 말해줬지요."


사다리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마다 다른 모습이다.

시 쓰는 화가

▲ 작품 '나비'와 시 '번데기'
ⓒ 조찬현
- 글도 잘 쓰시네요.
"가끔 가다 쓰는 거지요."

다음은 그의 시 '번데기' 전문이다.

번데기

시공을 정지시킨
갑옷을 두르고

고독을 관통한
그곳에서

예행을 하고
비행을 하고

그랬구나


- 간결하고 울림이 강한데요. 작품 설명 좀 부탁합니다.
"나비는 비행술이 대단해요. 나비를 관찰하는 과학자들은 나비의 DNA가 그렇다 그러는데, 나비가 꿀을 먹는 모습이나, 탁 떠 갖고 순간이동을 하는 모습이나, 바람결을 타고 비행술을 하는 것을 그걸 본능이라고 인간의 잣대로 얘기한 거죠. 이 그림은 역행을 해 본 겁니다. 최병수의 잣대로 본 겁니다.

언젠가 배추흰나비 애벌레를 보니까 먹기만 하고 정신없더라고요. 어찌 보면 이럴 때부터 비행 연습을 안 한 것 같기도 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번데기를 본 거지. 때론 번데기를 관찰해 보면 그 안에서 사유와 사색을 하고, 그 속에서 여행하고 비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번데기를 가르고 나오면 바로 비행을 하는 게 아닐까요."

나비에 그려진 7개의 별은 겨울철 남쪽 하늘의 별자리인 오리온자리다.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를 사랑한 대가로 그녀의 화살에 맞아서 죽임을 당한 그리스신화의 용사이며 사냥꾼인 오리온의 별자리다. 그는 방패연 같기도 하고 나비 모양 같기도 하다고 말한다.

나비는 부화의 상징이다. 인간이 지구에 왔으면 성인들이 말하는 사랑과 도를 지키며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며 그는 안타까워한다.

"어느 시인의 말마따나 소풍을 왔으면 엄마가 챙겨준 김밥 등의 먹을거리만 챙겨 먹을 게 아니라 환경도 지키고 구경도 하고 그래야 하는데 세상이 먹자판입니다. 전 세계가 난리잖아요. 환경재앙으로…. 알래스카 원주민들도 석유업자한테 돈을 받아먹으니까 그린피스가 오면 공격을 한다잖아요. 세상이 미쳤어!"

▲ 자본의 518 FTA
ⓒ 조찬현
촉수는 감각이다. 나비 자리는 앞으로 판화로 만들 예정이다. 그는 더듬이 만들기가 참 힘들다고 말한다.

"인문과 예술을 경시하고 없애면 더듬이를 없애는 것입니다. 더듬이가 없으면 뭘 하겠습니까? 일개미처럼 노예로 그냥 사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더듬이를 상실하지 않게 해야 됩니다.

FTA가 와도 이러다 어떻게 되겠지. 그냥 어떻게 되겠지, 그렇게 살면 맹탕입니다. 서울역에서 노숙을 해봐야 정신들 차리지.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습니다."


그는 1993년부터 시를 썼다. 그의 시들은 간결하다. 반복해서 몇 번을 읽어보니 가슴에 울림이 전해져 온다. 흡입력이 있다. 그의 시어들은 간결하고 압축미와 끌림이 강하다. 그의 시는 '걸개 그림과 다름이 없다'는 어느 작가의 표현이 가슴에 와 닿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U포터뉴스에도 보냈습니다.


#은어#최병수#백야도#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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