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매출을 좌지우지하는 입학철을 맞아 교복 업체들의 광고가 치열하다. 교복 업체들은 '라인이 예술이다' '내 마음대로 튜닝한다' 등의 광고 카피와 10대에게 인기 있는 연예인들을 앞세워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다음은 한 교복 회사의 TV 광고.
교복으로 보이는 몸에 딱 맞는 재킷과 체크 무늬 미니 스커트를 입은 여학생이 춤추는 것을 남학생들이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여학생은 허리를 돌리고 손으로 가슴부터 허리까지 쓸어내린 후 남학생들을 향해 손짓을 한다. 그녀의 몸매에 반한 남학생들은 장미꽃을 들고 그녀의 곁으로 몰려든다. 이어지는 남학생들의 멘트.
"학생복도 튜닝하는 것! 얼굴 빼고 책임진다! XXX 튜닝 스타일!"
또 다른 회사의 광고.
남성 인기댄스 그룹 멤버들과 여학생이 신나는 음악에 맞춰 함께 춤춘다.
"역시 라인이면 S, XXX 라인이죠"라는 멘트가 나오고 춤추던 여학생의 상체가 클로즈업된다. 이어 여학생이 교복을 입은 모습이 목부터 무릎까지 비춰진다. 여학생이 입은 교복은 대학생들이나 입을 법한 초미니 스커트. 여학생은 자신의 몸매를 과시하듯 허리에 손을 얹고 미소짓는다. 이어지는 남학생의 말.
"네 라인을 보여줘."
교복 선전에 웬 라인 타령? 몸매 강조하는 광고 봇물
최근 교복 광고에서 눈에 띄는 것은 여학생 교복의 '섹시 아이콘화'다. 교복 광고에 등장하는 여학생들은 하나 같이 무릎 위 15cm 이상 올라간 치마에 몸에 딱 맞고 짧은 기장의 재킷을 입고 있다. 물론 실제 학교의 교복은 아니다. S라인을 강조하는 트렌드에 맞춰 제작된 교복.
'어린 학생들이 웬 섹시?'라고 할 수도 있지만 S라인 트렌드는 10대들의 교복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몸매를 강조하는 요즘의 사회 풍조에 맞춰 중고등학교 여학생들도 몸매가 드러나게 교복을 줄여입고 있다.
사실 교복 줄여입기는 최근 몇 년의 일만은 아니다. 10년 전인 1997년에도 짧은 길이의 교복 치마가 유행하면서 중고등학교 여학생들 사이에는 교복 줄이기가 유행했다.
김태영(23)씨는 "5년 전에는 일부 '노는' 남학생들이 바지를 달라붙게 줄여입고 다녔다, 여자아이들도 일부는 교복을 짧게 줄여입고 다녔다"고 말했다. 그에 비해 김씨보다 3살 아래인 S(20)씨는 "중학교 때 반 여자아이들 15명 중 10명이 교복을 줄여 입고 다녔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남녀공학 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L(15)양은 "교복을 줄인 것과 안 줄인 것은 확 차이가 난다, 교복을 고치는 것이 대세"라고 말했다. 교복을 어떻게 고치냐는 질문에 L양은 "허리 곡선이 드러나게 재킷을 줄이고 셔츠는 길이를 자켓에 딱 맞게 줄인다, 치마 길이는 유행에 따라 다르게 고친다"고 말했다.
교복을 산 다음에 따로 줄이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요즘 교복은 몸에 딱 맞게 나오는 추세다. 한 교복 대리점은 "교복이 몸에 딱 맞게 나와서 따로 줄일 일이 없다"고 대답했다. 또 다른 업체의 대리점도 "치마 길이나 허리도 줄이지 않아도 괜찮게 나왔다, 하지만 원한다면 수선은 무료"라고 비슷한 답변을 했다.
"교복 변형 단속해도 아이들에겐 못 당해"
하지만 대부분의 학교가 교복을 줄여 입는 등 교복 변형을 학칙으로 금하고 있다.
(가) 교복변형을 금한다. (나) 남학생 바지의 넓이는 자신의 발목 둘레의 2배(9인치) 이상으로 제한한다. 남학생의 경우에 바지 단을 좁게 변형하여 줄여 입는 행위를 금한다. (다) 여학생의 경우 상의를 줄여 입거나 치마폭과 치마 길이를 줄여 몸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나는 교복은 입지 않는다. (대전 소재 한 중학교 교칙)
때문에 일선 학교들은 교복을 줄여입는 것을 금지하고 이를 어긴 학생들에게 경고를 주는 등 교복 지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두발자율화 등 학생들의 인권을 고려한 조치들의 영향으로 교사들의 단속이 예전처럼 철저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학생부 교사를 7년 동안 했던 서울 D여중의 A(37)교사는 "2년 전부터 교문 지도를 거의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그 전까지는 매일 아침 교문 앞에서 교사와 선도부 학생들이 함께 서서 복장이 불량한 학생들의 이름을 적고 잘못된 점을 시정하도록 했다.
하지만 현재 D여중은 학생들로 구성된 선도부가 일주일에 한 번씩 복장을 지도하는 것이 전부다. 이에 대해 A교사는 "아이들이 지킬 수 있도록 규율이 완화된 측면도 있으나 교사들이 지도에 자포자기한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에게 이야기해 봤자 말을 듣지 않기 때문에 지도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
교복을 줄이는 것에 대해 A교사는 "줄인 교복을 늘리거나 다시 사라고 말하기가 어려워 교복을 줄이지 말라고 학기 초에 미리 말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물론 말을 듣지 않고 교복을 줄이는 학생들도 많다. 그런데 성장기에 있는 학생들이 짧은 시간에 몸이 커버려 치마가 골반에 꽉 끼어 치마 주머니가 뜯어진 학생들도 부지기수라고. 결국 그런 학생들은 다시 교복을 새로 살 수밖에 없다.
남자 학교인 동국대학교부속고등학교의 김영민(43) 교사는 "두발과 복장 단속이 자율화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김 교사는 "개인의 독창성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교복을 변형하는 것에 여유를 둘 필요는 있지만 현재 정해진 교칙을 지켜야 한다"며 "교복집에서 고쳐준다고 교칙에 크게 위반될 정도로 고치면 안 된다, 학생들이 판단을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학교 3학년 딸과 고등학교 2학년 아들을 둔 한 학부모(46·부산시 해운대구 좌동)는 여학생들이 교복을 몸에 꼭 맞게 줄이는 것에 대해 "꼭 끼는 교복이 활동에 불편해 보인다, 여학생들은 엎드리면 살이 다 나오니까 자극적일 수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최근 교복값 거품 논란을 제기한 '학교를 사랑하는 모임'의 한 학부모 관계자는 "S라인 교복이라고 광고를 해 사입어도 선이 살아있지 않아 학생들이 교복을 많이 고친다"면서 "교복의 경쟁적인 광고들이 거품 가격을 올리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고 말했다.
'내 마음대로 튜닝한다'는 광고 문구를 내세운 엘리트 교복의 한 관계자는 "교복 구입 후 따로 수선하지 않아도 라인이 살고, 하루 종일 입어도 불편하지 않는 교복을 만들었다"며 "'튜닝 스타일'이라고 광고하는 것은 트렌드를 반영한 광고 콘셉트이지 학생들에게 수선을 권고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