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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목동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쳤던 노먼 선생님.
서울의 목동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쳤던 노먼 선생님. ⓒ 한나영
"작년에 1년 동안 한국에 있었어요."
"어머, 그러세요. 어디에?"

"서울이요."
"서울 어디요?"

"목동이요. 목동 학원에 있었어요."

작은딸의 영어 선생님인 노먼 선생님의 '목동 학원' 발음이 나쁘지 않다.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지난주에 아이들 학교에서 '백투스쿨 나이트(Back to school night)'가 있었다. '백투스쿨 나이트'는 새 학기가 시작되면 으레 있는 학교 행사다.

'백투스쿨 나이트'는 교사가 학부모에게 수업 내용과 클래스 운영, 시험· 과제·성적 등을 자세히 설명해주고 질문도 받는 시간이다.

학부모는 자녀 시간표를 가지고 교실을 이동하면서 각 과목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보통 10분 정도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 선생님은 학부모에게 <강의요목>을 나눠주고 자녀들이 어떤 수업을 듣고 있는지 소상하게 설명해 준다.

성의 있는 학부모들은 일일이 메모를 해 가며 듣기도 한다. '백투스쿨 나이트'는 모든 학부모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밤에 열리지만 이번 2학기의 학부모 참석률은 생각보다 높지 않았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이 선택하는 대학 수준의 수업인 'AP 클래스'나 우수반인 '아너 클래스(honor class)'에 오는 학부모들이 정규반인 '레귤러 클래스'에 오는 학부모들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이다.

자녀의 학교생활에 관심이 많은 학부모의 자녀가 공부를 잘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녀가 공부를 잘 하기 때문에 학부모가 관심이 많은 것인지 정확히 판단할 수는 없지만(아마, 둘 다겠지만) 학부모의 관심 정도와 자녀의 학업 성취도는 분명히 상관관계가 있어 보인다.

'백투스쿨 나이트'가 있는 날은 교사들도 '평소와 달리' 단정한 정장 차림이거나 예쁜(?) 옷을 입고 온다고 한다. 격식을 따지지 않는 미국이라고 해도 학부모를 만나는 날의 교사는 특별한 옷차림으로 예를 갖추는 것이리라.

7시에 시작되는 '백투스쿨 나이트'에 온 차들 (학교 주차장).
7시에 시작되는 '백투스쿨 나이트'에 온 차들 (학교 주차장). ⓒ 한나영
선생님과 무슨 얘기를?

한국에서 온 작은딸의 영어선생님에게 특별히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우리 아이는 선생님이 목동에서 가르쳤던 한국 아이들과 달라요. 그만한 수준이 안 되거든요."

목동에 사는 동창 딸아이의 높은 수준을 떠올리면서 선생님에게 설명을 했다.

"제 아이는 한국에서 영어학원에 다닌 적이 한 번도 없어요. 학교에서 배운 영어가 전부거든요. 그리고 이제 미국에 온 지 1년 반이 되었는데…."

노먼 선생님은 우리나라에 부는 '영어 광풍'을 이미 실감하고 온 터라 한 번도 영어학원에 다닌 적이 없다고 하는 말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다.

"한국에서 학교 수업만 들었어요. 그래서 어휘와 읽기, 쓰기가 부족할 거예요. 지난 학기까지 ESL(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이 듣는 영어)을 들었거든요. 다른 과목은 '아너 클래스'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지만 영어는 이번에 처음으로 '레귤러' 과정을 듣는 거예요. 그러니 선생님께서 잘 지도해 주세요."

처음으로 듣는 정규과정의 영어 수업이 다소 걱정되었던 나는 선생님에게 아이의 실력과 영어 학습능력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했다.

"아이들이 매일 읽어야 할 책과 작문은 이미 정해져 있는데요, 여기 <강의요목>을 보시고 혹시 아이가 부담이 되거나 어려워하면 제게 이메일을 주세요. 전화를 해 주셔도 좋고요. 이제껏 관찰한 바로는 찬미가 어려워하지 않는 것 같은데 말이죠."

수업에 관한 공식적인 이야기를 끝낸 뒤, 나는 선생님과 한국 이야기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왜냐하면 나 말고는 영어 수업에 온 학부모가 한 사람도 없었기에 다음 시간까지 시간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순두부가 먹고 싶어요. 아, 그리운 순두부."

입맛을 다시는 노먼 선생님은 한국에서 순두부를 얼마나 많이 주문해 봤는지 '순두부' 발음이 유창했다.

노먼 선생님이 학부모에게 주는 클래스 안내문.
노먼 선생님이 학부모에게 주는 클래스 안내문. ⓒ 한나영
학교에서 만나는 선생님은 이번 학기에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게 될 선생님만이 아니었다. '백투스쿨 나이트'가 있는 날에는 모든 선생님이 자신이 가르치는 교실 복도에 나와 있기 때문에 지난 학기에 만났던 선생님들도 다시 만났다.

그 선생님들과는 이미 두 차례 ('백투스쿨 나이트'와 '컨퍼런스데이')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있기 때문에 구면인지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지난 학기에 잘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말씀 되게 빠르네요"

큰딸의 세계사 선생님은 대단히 주도면밀했다. 선생님은 칠판 구석에 '백투스쿨 나이트'에서 설명해야 할 것들을 다 적어놓았다. 그리고 그걸 봐가면서 순서대로 설명을 했는데 선생님의 말은 너무나 빨랐다.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선생님 설명에 이어 질문이 끝난 뒤, 다른 교실로 이동하려고 할 때 선생님과 악수를 하게 되었다. 선생님에게 한 마디 건넸다.

"주연이 엄마예요. 선생님 말씀이 엄청 빠른데 ESL 학생인 우리 아이가 잘 알아들을지 걱정이네요."
"아, 그래요? 죄송합니다."

속사포 쏘듯 빠르게 말하는 세계사 선생님. 왼쪽의 교생 선생도 자리를 함께 했다.
속사포 쏘듯 빠르게 말하는 세계사 선생님. 왼쪽의 교생 선생도 자리를 함께 했다. ⓒ 한나영
'백투스쿨 나이트'에서 이렇게 잘 준비된 선생님의 '클래스 브리핑'을 듣고 있으려니 마음이 든든했다. 왜냐하면 내 자녀가 학교에서 무슨 공부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고, 직접 선생님을 만나서 듣는 얘기도 좋았고, 선생님의 성격이나 취향도 웬만큼 파악이 되니 집에서 아이들로부터 듣는 학교 얘기도 더욱 실감이 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모든 교사들이 학부모 마음에 쏙 드는 건 아니었다. 나이가 지긋한 어떤 선생님은 <강의요목>도 안 나눠주고 수업에 대해서도 별로 할 말이 없다는 듯 학부모들과 가벼운 얘기만 주고 받았다.

또한 학교생활에 대해 궁금한 게 있으면 이메일을 보내라고 했는데 정작 선생님은 자신의 이메일 주소도 제대로 칠판에 못 적었다.

'이메일을 보내면 읽으시기는 하려나?'

어쨌거나 '백투스쿨 나이트'는 이렇게 학부모와 교사가 공식적으로 만나 학교생활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또한 학부모로서 궁금한 게 있으면 주저없이 질문을 하고 자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

사실 이런 자리가 아니라면 나같은 사람은 일부러 학과 선생님을 찾아갈 일도 없을 테니 말이다.

"이번 학기에 공부할 내용입니다." 9학년 지구과학 선생님.
"이번 학기에 공부할 내용입니다." 9학년 지구과학 선생님.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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