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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않았으면 좀 빠지소

"멀리 있는 남도 백성들아 짐의 말을 들을 지어다… 생각하여 보니 지난 기축옥사(정여립 모반 사건) 이후에 도내에 걸출한 인물들도 오랫동안 뽑아 쓰지 아니하여 그윽한 산골짜기에 외롭게 홀로 향기를 품고 있으며… (이제야 난을 당하여 널리 인재를 구하고자 하니) 부끄러움에 얼굴이 뜨겁도다…" - <난중잡록> 3. 정유년 2월

결국 선조는 임진왜란을 당하여 인재가 부족하게 되자 호남인에 대한 정치적 소외와 차별을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차별대우와 소외를 경험했음에도 호남인들은 왜란이 일어나자 벌떼같이 일어나 목숨을 건 의병항쟁의 대열에 참여하였다.

물론 전국 어느 지역이고 왜란 중에 온몸으로 막아 싸운 의병이나 충절 인물들은 수없이 많았다. 그러나 그 수에 있어서, 특히 목숨을 바친 사람의 수에 있어서는 호남을 따를 곳이 없다.

요즘에도 어른들이 모여 앉아 조상 이야기를 하는 중에 죽지 않은 의병이 나오면 "결국 순절한 분이 아니구먼" 하면서 의병대열에서 한발 뒤로 제쳐놓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호남 최초의 의병장 김천일

나주 정렬사(旌烈祠)에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의병장 김천일(金千鎰)을 제향하고 있다.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인 나주에 있던 김천일(55세)은 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활동하던 중 1593년 6월 운명의 순간을 맞이하니 바로 2차 진주성 싸움이었다.

▲ 김천일 의병장 유물관.
ⓒ 최장문

▲ 김천일 의병장 기록화. 맨상투에 평민복 차림을 한 것이 인상적이다.
ⓒ 최장문

김천일 의병장은 "진주가 없으면 호남도 없다. 진주를 지켜야 한다"라고 주장하면서 의병을 이끌고 진주성에 입성하였다. 아군 1만5천여 명은 10만 대군의 일본군과 9일 동안 100여 차례 공방전을 벌이다가 성(城)이 함락되었다. 이에 김천일은 함께 싸우던 큰 아들을 부둥켜안고 촉석루에서 남강에 투신·순절하였다.

진주성 전투의 패배는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성이 함락당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유성룡은 징비록에서 김천일의 군사 전략적 실패를 패배의 원인으로 지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김천일과 호남의병의 진주성 혈전으로 일본군 역시 막대한 손실을 입어 호남 공략에 대한 공세를 약화시켰다.

국가기념관은 한 명만 키운다?

국가의 위기 때 의병을 조직하여 적군과 싸우다 순국한 지도자는 분명 높게 평가되어야 한다. 그러나 충절의 행적이란 혼자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역민의 협조와 참여하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 최장문

국가기념관에 가보면 국가에 목숨을 바쳐 충성하다 죽은 지도자(지배층)만 있을 뿐 함께 싸우다 죽어간 지역 공동체의 많은 사람들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사람의 목숨엔 귀천이 없건만 죽고 나면 지도자만 남는 것 같아 아쉽다. 그 벌떼같이 일어나 왜군과 싸우다 죽어간 민초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때로는 잘못된 영웅을 키우기도 한다.

문득 '일해 공원'이 생각난다. 군사 쿠데타로 헌법을 유린하고, 광주에서 수많은 시민들을 폭도로 몰아 총칼로 살해한 사람. 그렇게 잡은 권력으로 수천억 원을 축재하여 재판까지 받아 추정금을 내라고 하였으나 남은 재산이 29만원밖에 없다며 국민을 향해 대사기극을 벌인 장본인!

경남 합천군에서 그 사람의 호를 따서 시민의 쉼터로 조성되는 숲 공원을 만들겠다고 한다. 시민의 이름으로 가장한 '일해공원 성역화 공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 '일해공원'이란 명칭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 윤성효

학교교육의 궁극적 목표가 더불어 잘사는 민주시민양성이건만 국가·지역기념관을 돌아보면 공동체는 없고 주인공 1명, 또는 잘못된 영웅이 들어선 경우도 있다. 학교교육의 목표를 바꿔야 할까, 국가·지역기념관 컨셉을 바꿔야 할까? 후자야말로 반드시 바꿔야할 대상 아닐까?

짓궂은 선배교사가 또 약을 올린다.

"아 글쎄, 교과서대로 가르치라니깐!"

덧붙이는 글 | 다음에는 '영산강과 나주의 근대도시 경관 변화'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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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세월속에서 문화의 무늬가 되고, 내 주변 어딘가에 저만치 있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보면 예쁘고 아름답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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