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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다른 포즈들
각자 다른 포즈들 ⓒ 장승현
우리 처갓집은 참으로 조용한 집안이다. 우리집 7남매들하고 비교해보면 아주 정서가 전혀 다른 집안이다. 그런데 이런 처갓집에서 가족사진을 찍자고 해 몇 번 모일려고 계획한 적이 있는데 내가 대부분 펑크를 내는 바람에 1년이 넘도록 사놓은 티켓을 썩히고 있던 차였다.

며칠 전 그 밀렸던 처갓집 사진 찍는 일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양복을 빼입고 수원으로 행차를 하게 되었다. 정말 가기 싫었는데 아내가 무서웠고, 그리고 지난번에도 우리 때문에 가족사진 찍는 게 불발이 되어 이젠 더 이상 펑크를 내면 안 되는 입장이었다.

일요일 날 아침 일찍 수원으로 올라가 보니 어떤 사진관을 미리 예약했는데 이건 그냥 사진 찍는 곳이 아닌 것 같았다. 사진 찍는 게 장난이 아니었다. 다들 분장까지 하고 코디들이 옆에서 자리를 잡아주고 무려 사진 한 장 찍는데 걸린 시간이 거의 두어 시간이나 되는 작업이었다.

딸과 사진 찍을 준비하는 동서
딸과 사진 찍을 준비하는 동서 ⓒ 장승현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준비 시간이 많이 걸렸다. 각자 위치마다 높이가 다른 의자와 소품이 있었고, 사진사는 그 사람들을 퍼즐 맞추듯 하나하나 맞추어 가며 위치를 잡았다. 그 위치에 서서 사람들은 각자 자기의 포즈를 취해야 했다.

머리 손질하는 작은 처남 딸 유경이
머리 손질하는 작은 처남 딸 유경이 ⓒ 장승현
그런데 아들 성안이 성욱이의 장난 때문에 수없이 사진판을 버리고 다시 찍었다. 나중에 여러장 찍은 사진 중에 골랐는데 그 중에서 성안이와 성욱이가 장난을 친 사진이 너무 많아 고를 수 있는 사진을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다른 식구들은 조용한데 이놈들이 사진관 전체가 떠나갈 정도로 떠들고 장난치고 막무가내로 까불고 있었다.

장난 치는 성안이 성욱이
장난 치는 성안이 성욱이 ⓒ 장승현
"어 거기 이선희씨, 고개를 약간 먼산을 바라다 보는 것처럼 하고… 거기 작가 선생님, 오른쪽 팔을 옆에 부인 어깨에 살짝 올려놓고, 어어, 장난하네 이따 장난감 하나 줄테니까 장난 그만하고 앞에 무릎 꿇고, 그래 자세 좋고, 롱다리처럼 보이게 다리좀 뻗어봐요…."

사진 찍을 셋팅 시작
사진 찍을 셋팅 시작 ⓒ 장승현
사진을 찍는 사진관은 아주 세밀하게 위치를 정해 잡아주고 구체적인 각자의 포즈를 주문했다. 뒤에 있는 조명을 점검하고 처갓집 식구들의 조용하고 표정없는 얼굴들을 환히 만들어 하나의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큰처남댁과 장인 어른
큰처남댁과 장인 어른 ⓒ 장승현
그런데 압권이 나를 보더니 맘에 안드는지 옆에서 도와주는 도우미 아가씨한테 뭘 가져오라고 시켰다. 발판이었다. 키가 작은 내가 한 10센티 정도 높여주는 발판을 딛고 서야 겨우 내 위치가 잡히는가 보았다.

사진을 찍고 나서 문제가 생긴 건 그 사진관의 로비에서였다. 사진관이 일반 결혼식장 만큼이나 붐비는 곳이었다. 큰 처남이 미리 예약했던 액자와 지금 있는 액자가 차이가 난다고 여직원과 논쟁을 하던 중이었다. 큰 처남이 예약한 건 엔틱 분위기의 아주 고급스런 액자인데 여직원이 권하는 건 일반 플라스틱 모양의 썰렁한 액자였다.

이유는 예약했던 액자가 요즘에는 물건이 안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플라스틱이 고급스럽다고 그걸 권하는 것이었다. "이거 너무하잖아요? 처음에는 사진 사이즈가 예약할 때와 다르더니 이번에는 액자가 또 다르네요?"

큰 처남이 점잖게 따지고 있었다. 그러자 여직원이 무조건 플라스틱 액자가 고급스런 액자이니 그걸 선택하라고 강요했다. 이 정도 되면 성질 급한 내가 안 나서면 속병이 날 것 같았다.

"아니 아가씨 왜 우기고 있어. 처음 예약한 걸로 하겠다는데 왜 안 된다는 거여?"
"그게 아니라 여기 고급스런 액자로 하면 안되냐고 물어본 거죠…"

큰 처남은 그래도 큰 소리를 치지 않고 있었다. 그냥 아무거나 해 달라고 했다. 옆에 있던 나는 화가 치밀기 시작했다.

"여기 사장 어디 있어. 이거 뭐 이딴 곳이 다 있어. 사기 아녀. 사기, 처음에 예약했던 사진 사이즈도 아니고 액자도 이런 식으로 바꾸고…"

그러자 사장이라는 남자가 왔다. 그와 큰 처남은 전에 여직원과 했던 논쟁을 똑같이 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사장이라는 사람이 하는 말이 "손님 너무하십니." 그 말에 난 머리가 획 돌아버리고 있었다. "아니, 뭐라고 우리가 너무하고 있다고? 이런…"

거의 욕이 나올 지경이었다. 큰처남과 처갓집 식구들이 날 말리고 있었다. 나도 차마 처갓집 식구들이 있는 곳에서 더 이상 나설 수는 없었다. 더 이상 나섰다가는 괜히 일이 커질 것 같아 큰 처남이 하는 대로 맡길 수밖에 없었다. 결과는 그냥 사장이라는 사람의 사과를 받고 그냥 그 사장이 알아서 좋은 걸로 해주기로 하고 일을 마무리 했다.

조용한 가족의 웃는 모습
조용한 가족의 웃는 모습 ⓒ 장승현
사진관을 나와 어느 두부전문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큰처남댁 집에 가서 차 한 잔을 하니 같이 올라갔던 장인어른이 집에 내려가자고 하셨다. 형제들끼리 오래간만에 만나 이런저런 할 이야기도 많고 그럴텐데 장인 어른은 경상도 분이시라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앉아계시다가 시간이 되자, "이젠 내려가자. 준비하자!" 이 한마디였다. 정말 우리 처갓집은 조용한 집안이었다. 무미건조할 정도로.

조용한 가족의 전체 사진
조용한 가족의 전체 사진 ⓒ 장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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