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보기엔 그럴듯 한 중국산 짝퉁 루이비통 가방.
보기엔 그럴듯 한 중국산 짝퉁 루이비통 가방. ⓒ 김혜원
"당신한테 좋은 선물 하나 샀어."
"무슨?"
"아 글쎄 기다려봐. 당신이 무지 좋아하는 거야."

중국으로 출장을 간 남편. 누구나 다 아는 그 흔한 장미꽃 문양 딱분(콤팩트) 하나를 사오라고 부탁을 해도 이름도 모른다, 성도 모른다, 비싼 외제화장품은 뭐 하러 쓰냐면서 잔소리를 하는 사람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선물을 샀다는 건지? 전화를 끊고도 도통 어안이 벙벙합니다.

'물건을 볼 줄도 살 줄도 모르는 사람이 뭘 샀다고 저러는 거지?'

'선물'이라는 말에 당연히 기뻐 가슴이 뛰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중국이라는 나라의 특성상 혹시나 외국인이라고 바가지라도 씌워 팔았으면 어쩌나 공연한 걱정도 되었지요.

일주일간의 중국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의 느끼한 속을 달래주기 위해 칼칼한 김치찌개와 동치미, 짭짤한 젓갈류로 정성껏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전에 없이 엷은 화장까지 하고 그를 맞이합니다.

"어, 웬일이래? 오늘은 특별히 밥상이 더 신경을 썼는 걸. 귀한 성게알젓까지?"
"웬일은 무슨. 지난 번에 당신이 전화로 짭짤한 젓갈이 먹고 싶다고 해서 사다놨지. 조거 무지 비싼 거 알지?"
"그럼. 알고 말고. 하하하. 역시 집에 오니까 좋다. 역시 한국 사람은 김치랑 젓갈을 먹어야 해."

밥 두 그릇과 누룽지까지 깨끗이 비우고 난 남편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트렁크를 찾습니다.

"가방 좀 거실로 가져와봐."

드디어 선물을 꺼내 줄 모양이지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방 한 켠에 놓아두었던 가방을 끌어옵니다. 아무리 아내라도 선물에 너무 혹한 모습을 보이면 상당히 모양이 빠져 보이는지라 짐짓 초연한 척 가방 속에 물건을 꺼내는 남편의 손만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 술이 그렇게 좋은 술이라네. 당신도 저녁에 한잔씩 마셔봐. 혈액순환에도 좋다니까."
"아, 이 담배는 중국친구가 준 건데 중국에서 제일 비싼 담배래. 포장은 그저 그런데 중국에서는 이 담배가 부의 상징이라나."
"이건 빨래들이고. 아, 이건, 곶감이야. 한국 돈 2500원어친데 양이 많아. 간식으로 먹다 남아서 가져왔지."

속타는 마누라의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가방 속을 뒤지는 남편 손은 느리기 이를데 없습니다.

"작은 가방도 가져와봐. 거기에 당신 선물이 있네."

그럼 그렇지. 설레는 마음으로 깡총깡총 뛰어가 나머지 가방을 들어오니 드디어 지퍼가 열리고 남편은 부직포 주머니에 담긴 그 무엇인가를 눈앞에다 대롱대롱 흔들어 보입니다. 두근 두근 두근….

"이거 당신 좋아할 것 같아서 사왔어. 열어봐."
"뭔데? 비싼 거 아니야?! 아니 이게 뭐야! 이건… 그 유명한… 뤼뤼뤼?"
"놀라긴. 열어도 안보고 뭘 그리 놀라? 열어봐. 당신 좋아한다는 그 '똥' 맞지? 똥 똥 노래를 부르더니 그렇게 좋아?"

내가 아는 한 남편은 죽었다 깨어나도 아내를 위해 수백만 원이나 하는 명품백을 사다 줄 사람이 아닙니다. 그 명품백이 수백만 원에 팔린다는 것을 안다면 아마도 기절을 할지도 모릅니다. 겁이 더럭 납니다.

"당연히 좋은 건 좋은데… 당신 이거 혹시 누구한데 뇌물로 받은 건 아니지? 직접 산 거 맞아? 웬일이래?"

머릿속에 아주 잠시 불길한 상상이 스치고 지나갑니다. 누군가의 불법적인 일을 돕고 뇌물을 받았나? 중국에서 명품 가방을 파는 여인과 사귀는 건 아닌가? 술 먹고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강매를 당했나?

그러나 이런 걱정은 한순간에 안도와 실망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그거 중국에 흔하더구만. 청도에 있는 쯔모르 시장에서 샀어."
"쯔모르 시장? 중국은 명품매장이 시장에 있나?"
"우하하하. 당신이 명품족이라며? 한눈에 알아본다며? 그거 짝퉁이야, 이 사람아. 100위엔 주고 샀네. 한국 돈 1만2500원짜리야."

그럼 그렇지. 구름 위를 날던 기분이 냄새 나는 빨래더미 위로 처박히는 순간. 문득 몆 만원을 들여 사온 성게알젓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우이쒸~ 뭐야. 짝퉁이야? 내가 미쳐. 차라리 사오질 말지. 짝퉁은 뭐할라고 사온데?"
"크하하하. 재미있잖아. 당신 내가 그럼 진짜 명품백이라도 사올 줄 알았던 거야?"
"명품백은 아니라도 적어도 짝퉁을 사올지는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비싼 성게알젓도 안사는 건데. 성게알젓 한 통이면 저 가방 몇 개 사겠네."

정신을 차리고 자세히 보니 바느질도 엉망이고 심지어는 작은 포켓의 지퍼는 중간에 걸려 열리지도 닫히지도 않습니다. 물론 1만2500원어치의 가치는 있는 물건이지만 짝퉁 선물을 받은 아내의 기분은 썩 상쾌하지 않다는 것을 남편은 알까요?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과 관심만 짝퉁이 아니면 다행이겠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