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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5일이 훌쩍 지난 지금 산타 이야기를 꺼낸다면 비웃고 외면하실 독자들이 상당수 있을 것이다. 그런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산타를 보았다고 자랑스럽게 이 글을 올린 이유는 단 한 가지! 궁금하신가? 그렇다면 끝까지 읽어보시길…. <필자주>

2007년 1월 5일, 페테르부르크, 러시아

몸이 욱신욱신 쑤셔온다. 머리에 조금씩 열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하루종일 집에만 앉아 있더니 좀이 스나 보다. 밖에는 비만 오고, 작년과 달리 눈이 안 와 구질거리다. 맘 같아서는 좋아하는 영화나 실컷 보고 싶지만, 그놈의 시험이란 녀석 때문에 책만 붙들고 궁상이나 떨고 있다.

러시아는 대개 12월 말부터 1월 말까지 시험을 본다. 그 중간에 새해 연휴라고 해서 12월 31일부터 1월 10일까지 쉬기는 하지만 제대로 쉴 턱이 없다. 스트레스 때문에…. 이곳에 온 지 벌써 횟수로만 4년째. 이미 크리스마스는 잊은 지 오래다.

전화벨이 울린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누나다. 다음 주에 산타를 보러 가잔다. 생각해 보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런, 난 시험인데…. 그러다 5분도 채 안 돼서 다시 전화를 걸었다. "누나! 나 갈래요."

2007년 1월 13일, 페테르부르크

첫 번째 시험을 기분 좋게 끝냈다. 드디어 어디론가 떠나는 날! 얼마나 기다려 왔던가! 어디로 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지긋지긋한 이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다.

여행을 같이 갈 일행은 전에 말했던 누나와 아주 친한 형이다. 그 둘은 교회에서 만난 사이로 아주 절친한 사이다. 형은 나에게 고등학교, 대학교 선배이기도 하다. 자고로 여행은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가야 되는 법. 내가 흔쾌히 여행을 가기로 마음먹은 이유이기도 하다.

2007년 1월 14일, 페테르부르크

우리가 택한 교통수단은 작은 승용차. 형과 누나가 번갈아가며 운전하기로 했다.

러시아 국경을 넘어 핀란드 국경에서 입국 심사를 받던 중 핀란드 공무원이 어디로 가냐고 묻는다. 애초부터 떠난다는 것과 산타 말고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나로서는 예상치 못했던 질문. 난 모른다고 대답했고, 핀란드 공무원은 웃으면서 검사해야 하니 30분간 차에서 기다려달라고 한다.

그 사실을 안 형은 웃으면서 나에게 우리가 가는 곳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우리가 가는 곳은 핀란드 북부에 있는 라플란다 지방의 라보니에미라는 도시로 이곳에 산타가 산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안데르센이 쓴 동화 눈의 여왕의 배경이 되는 곳이라고…. 아무 생각 없이 따라온 난 이내 새로운 곳을 향하는 설렘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2007년 1월 14일 핀란드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핀란드 국경을 통과하여 잘 닦여 있는 핀란드 도로를 신나게 달렸다. 하루종일 잠을 자지 않은 나로서는 단조로운 핀란드 길 덕분에 잠을 청할 수 있었다.

18시간! 우리가 차로 달려온 시간이다. 산타가 있다는 이곳 라보니에미까지 무려 1000km가 넘는 거리를 차로 타고 온 것. 더욱더 재미있는 것은 이 거리를 주파하는 동안 사람들이 모여 사는 작은 마을 하나 보기가 힘들었다는 것이다. 이 커다란 땅덩어리에 500만명밖에 살지 않는다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도착한 라보니에미는 무척 작아 보인다. 밤이라 잘 보이지는 않지만 아주 예쁜 도시인 것 같다. 내일이면 알 수 있겠지.

2007년 1월 15일, 라보니에미 산타 파크

아침을 먹고 난 뒤 우리는 도시 외곽에 있는 산타 파크로 향했다. 산타 파크로 가는 동안 둘러본 도시는 예상대로 아주 아담했다. 하얀 눈이 작은 도로와 건물들에 쌓여 있어 흡사 동화의 나라에 왔다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산타를 보기도 전에 그런 생각을 하다니….

산타 파크는 산에 동굴을 만들어 그 안에 조성한 테마파크이다. 긴 굴을 지나 안에 들어가 보니 산타 복장을 한 엘프들이 장난을 치면서 우리를 반긴다.

▲ 산타 파크 입구.
ⓒ 박건우
공원에 들어서자마자 우리의 이목을 끈 것은 '엘프 학교'. 엘프들이 마술을 가르쳐주는 곳이라고 한다. 엘프 선생과 초콜릿이라 불리는 엘프, 그리고 학생 엘프가 교실 안에서 여러 가지 장난을 친다. 그리고 신기한 듯 사진을 찍는 우리를 위해 멋지게 포즈를 취한다.

▲ 엘프 학교 선생님들.
ⓒ 박건우
사진을 찍은 뒤 엘프 선생은 우리에게 엘프어 3마디를 가르쳐 주었고 그 말에 맞는 춤도 가르쳐 준다.

토베르, 코베르, 오베르!

학교를 나온 뒤 우리가 향한 곳은 작은 기차가 있는 곳. 기차를 타고 산타가 살고 있는 동화 속 나라를 가 보았다.

동물들과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곳을 지나 산타들이 온갖 장난감을 만드는 공장, 그리고 공장을 지나 루돌프를 비롯한 온갖 인형들이 있는 곳을 지나왔다. 살아 움직이는 동화 속 캐릭터들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는지 누나가 기차를 담당하는 엘프에게 외친다. "One more time!"

기차를 타고난 뒤 우리는 아이스바로 들어갔다. 온통 얼음으로 뒤덮인 이곳에서 엘프 한 명이 얼음 컵에 음료수를 따라 준다. 아이스바 안에서 마시는 음료수는 차갑기보다는 아주 시원하게 느껴졌다. 가슴 속에 맺혀 있던 답답함을 한순간에 풀어주는 듯한….

▲ 아이스바.
ⓒ 박건우
10분 뒤에 엘프들이 공연을 한단다. 그래서 우리는 공연장을 향해 갔고 그 와중에 산타를 발견했다. 우리가 인사를 해도 받아 주지 않던 산타…. 장난기가 발동한 우리는 산타의 뒤를 따라다녔다. 그러자 못 이기는 척 같이 사진을 찍어주는 산타. 너무 익살스럽게 생긴 산타다.

▲ 익살맞게 생긴 산타.
ⓒ 박건우
엘프들의 공연은 다이내믹한 율동과 우리 귀에 익숙한 캐롤송들로 이루어졌다. 우리는 한 손에 솜사탕을 들고 아이들 틈에 껴서 같이 동심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한참 재밌게 보고 있는데 벌써 끝이 났단다. 우리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채 산타 파크를 빠져나왔다.

▲ 눈으로 뒤덮인 핀란드 숲의 노을
ⓒ 박건우
산타 파크를 떠나 우리는 스노우 바이크를 타는 곳으로 향했다. 운전면허가 없어 난 형의 뒷자리에 탈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 와서 뒷자리에 묻혀 가야 한다는 아쉬움이 컸던 것이 사실. 하지만 드넓은 설원을 달릴 때에 그런 아쉬움보다는 시원한 공기가 주는 상쾌함이 더 크게 다가왔다.

오후에 호텔로 돌아와 저녁을 먹은 뒤 형과 나는 호텔 사우나로 갔다. 핀란드에 왔으니 그 유명한 핀란드식 사우나를 즐겨야 하는 법. 사우나 안에는 인상이 좋은 아저씨가 있었다. 우리에게 영어로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보는 아저씨. 러시아에서 왔다니 놀라면서 러시아어로 되묻는다. 학생들이냐고. 그 아저씨는 딸에게 산타를 보여주기 위해 러시아 페름에서 여기까지 왔다고 한다.

아저씨와 대화를 나눈 뒤 우리는 베란다로 나갔다. 수영복차림으로 열이 올라 있는 몸을 식히기 위해 베란다에 나온 우리는 영하 14도가 주는 추위보다도 내일 보게 될 산타마을과 개썰매에 대한 기대로 즐거움에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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