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올해는 대선이 있을 뿐 아니라 북핵 문제를 중심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도 긴박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오마이뉴스>와 외교안보 전문 싱크탱크인 코리아연구원은 '2007 코리아의 전망과 과제'를 주제로 공동기획을 준비했습니다. 이 글은 모두 9편의 글 중 8번째로 백준기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가 '2007년 러시아 대외정책 전망'을 주제로 썼습니다. 원문은 코리아연구원(www.knsi.org)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편집자주>
▲ 서울 중구 정동 러시아대사관.
ⓒ 오마이뉴스 권우성
2006년을 회고하며

2007년 러시아의 대외정책은 전반적으로, 지난해에 이어 '에너지 슈퍼파워'로서의 역할을 자임하는 현실주의적 접근(realpolitik)을 시도하는 한편 미국과 EU에 대해 '국제법과 주권'을 강조하는 원칙적 입장에 근거할 것으로 보인다. 금년은 어느 해보다도 대외관계 측면에서 국내정치적 변수가 미치는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BRI@12월로 예정된 총선과 특히 내년 3월에 실시될 대선은 향후 러시아의 국가발전방향과 리더십 재편문제와 관련해 대내외 정치 전반에 걸친 변화와 지속성 문제를 가름하는 중대선거(critical election)적 의미를 지닌다.

의회 내 제1당의 지위를 토대로 3선가능성(개헌·국민투표·벨로루시와의 신연방 수립 등)이 불가능하지 않은 상태에서, 경제적 성공(약 5~7%의 GDP성장률, 외환보유고 세계 3위, GDP규모 세계 10위) 등을 기반으로 60% 내외의 높은 지지율(1월 둘째 주 현재 57%)을 기록하고 있는 푸틴 대통령의 리더십이 두 번의 연이은 선거를 통해 평가받을 것이다.

선거 결과에 따라 향후 국가발전방향의 변화 또는 지속성 문제가 결정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올 한 해 동안 푸틴정부는 집권기간 동안의 대내외적인 정치·경제적 성과를 마무리함과 동시에 '내부적 이행'에 집중할 것으로 예측된다.

따라서 대외정책의 향방은 이러한 일정에 맞춰질 것이며, 유권자에게 단기적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제시하기 어려운 미국이나 EU와의 관계발전과 문제해결에 집중하기보다는, 상대적으로 정책적 여지가 많은 독립국가연합(CIS) 지역(특히 중앙아시아)이나 인도를 포함한 아시아·태평양지역으로의 진출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장기적으로 볼 때 러시아가 유럽적 정체성을 포기할 수 없고 유럽적 표준을 문명적 자기정체성으로 동일시하겠지만, 중단기적으로는 아시아로의 접근을 강화할 것이다. 이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러시아 내에서 사상적 논란과 정책적 경쟁으로 진행되고 있다.

2006년 한 해 동안, 미국과 EU에서 다방면으로 비난했음에도 푸틴정부는 대외정책에서 일정한 성공을 거둔 것으로 자평하고 있다. 지난해 초, 가스 공급가격 인상문제로 발생한 러시아-우크라이나간의 가스분쟁에 이어 금년 벽두 러시아-벨로루시 간의 가스분쟁으로 러시아산 가스의 유럽 공급에 차질이 생김에 따라 EU가 러시아에 대한 신뢰 상실을 언급한 데 이어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전직 러 연방정보부 요원)와 안나 폴리트콥스카야(언론인) 살해사건 문제, 이란에 대한 핵·미사일 수출 문제, 푸틴의 통치 스타일 등에 관해 9·11이후 미국과 EU가 전례 없이 러시아를 비난한바 있다. 이에 대해 러시아는 에너지 주권과 내정간섭 배제, 국제법 준수 주장으로 대응하고 있다.

푸틴 정부의 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개최된 G8 정상회의에서 러시아는 의장국 지위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에너지 슈퍼파워'로서의 역할을 인상적으로 수행했으며 대외경제정책의 숙원 과제 중 하나인 WTO 가입문제가 급진전돼 미국의 동의를 얻어냈다. 또한 서구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구 소련연방 구성 국가들에 대해 에너지 압박외교(우호가격이 아닌 국제가격으로의 인상 압박)를 통해 러시아는 CIS 구성 국가들에 대한 일정한 정치적 영향력을 회복하거나 새롭게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주로 친서방정책을 펴며 러시아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하던 국가들이 대상이 됐다. 서방국가들이 러시아 견제를 위한 교두보로 중시하던 우크라이나의 경우, 작년 총선에서 친러시아 정치세력의 승리로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총리로 임명됐고 몰도바의 블라지미르 보로닌 대통령의 경우 러시아의 경제적 압박에 밀려 친러시아 정책으로 선회했다.

미국의 재정적·정치적 지원으로 '장미혁명'에 성공한 그루지아의 미하일 샤카슈빌리 대통령의 경우, 독립을 선언한 남오세티아와 압하지아에 대한 군사적 개입시도가 러시아의 전면적인 경제제재로 인해 여의치 않게 됐다.

러시아는 대내외적으로 심각한 위협요인 없이 비교적 순조롭게 2007년을 맞이하고 있다. 1월에 개최된 다보스포럼에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제1부총리는 작년에 GDP 규모 세계 10위 달성에 이어 금년에는 러시아가 세계 10위 무역국으로 진입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러한 경제적 성공을 기반으로 러시아는 올해 대외관계에서 획기적인 변화 시도보다는 지난해에 이어 국가이익을 중심으로 지정학적 고려에 따른 '선택적 동맹' 전략을 구사하고 '아시아·태평양벡터'를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선택적 동맹 또는 네트워크 외교(network diplomacy)

러시아 대외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푸틴정부의 국제체계에 대한 기본인식은 '홉스적 무정부 상태(Hobbesian anarchy)'다. 냉전과 탈냉전을 겪으면서 서구의 문명적 보편주의가 약화됨에 따라 국제체계의 행위자간 쟁투의 범위와 강도가 심화돼 지정학적 및 지경학적 경쟁(에너지 전쟁 같은)이 대외관계에서 점차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는 것이 러시아 대외정책 결정자들의 인식이다.

따라서 러시아는 새로운 '강대국 협조체제'(the Concert of Great Powers)를 통해 '국제체제의 민주화'를 달성하는 것을 전략적 목표로 하고 있으며 올해 러시아의 대외정책 또한 이러한 기조 아래 수립, 실행될 것이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적 기본벡터는 대략 다음의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①포스트 소비에트 공간에서의 지배적 위치 확보, ②러시아 에너지자원에 대한 유럽의 의존도 증대, ③미국 및 유럽과의 제한된 협력과 포스트 소비에트 공간으로의 영향력 차단, ④아시아·태평양 벡터(특히 중국과 인도) 강화 등.

러시아가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특히 포스트 소비에트 공간 재확보와 아시아·태평양으로의 진출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동맹문제는 중요하다. 냉전해체와 더불어 러시아는 냉전시기의 동맹정책을 폐기하고 미국과의 '평화적 동반자 관계'(PFP, Partnership For Peace) 수립을 시작으로 동맹개념을 전략적 동반자관계 개념으로 대체한 바 있다.

그러나 90년대 중후반 NATO의 동진정책, 대외정책 실패에 따른 국내적 압박에 직면해 동맹 필요성에 관한 문제가 다시 부각됐다.

논쟁의 방향은 구 소비에트공간에서의 영향력 회복, 중국과 인도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지역에서의 전략적 관계 수립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으나, 다방면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조건과 전략적 열세로 서구와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대체할 만한 동맹관계 수립에는 도달하지 못한 상태다.

그럼에도 러․중 관계, 상하이협력기구(SCO) 강화, 벨로루시와의 통합문제 등에선 현저한 성과가 있었으며, 특히 벨로루시와는 경제통합을 지나 새로운 통합연방구성에 급진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유럽과 미국의 러시아 전문가들은 2007년 벽두부터 논란이 된 에너지 가격인상이 구 소비에트지역 국가들과의 동맹관계 가능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들 국가에 대한 에너지 공급을 유럽국가에 대한 수출가격에 준해 국제가격으로 공급하겠다는 게 러시아의 논리다. 현재 천연가스의 경우 대 유럽 수출가격은 1000m³당 $230~250인데 비해, 구 소비에트 지역 국가들의 경우 $110(그루지아)에서 최하 $47(벨로루시)에 이른다. 유럽 국가들과 비교할 경우 절반에서 6분의 1정도의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받고 있다.

구 소비에트지역 전체는 차치하고라도, 현재 고전적 의미에서 러시아의 유일한 동맹국으로 분류될 수 있는 벨로루시와의 에너지 분쟁으로 인해 러시아가 동맹정책을 포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분석이 있다.

러시아가 에너지대국(생산량 2위)으로 부상한 이후 미국에 대한 견제정책에 힘이 실린 것은 사실이지만, 서유럽에서 동아시아에 이르는 석유소비축(횡축)과 러시아, 중앙아시아, 중동으로 이어지는 석유공급축(종축)을 연결하는 '대십자로 계획'(the grand cross project)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협조문제가 중요하다.

그러나 9·11을 계기로 일시적으로 회복된 미국과의 협력관계도 이라크전쟁의 장기화와 이란문제, 지구적 차원의 NATO확대 계획('글로벌 나토') 등으로 인해 악화됐고, 유럽과의 관계 또한 러시아를 배제한 EU의 확대프로그램, 에너지 공급에서의 신뢰문제 등으로 인해 악화되고 있다.

유럽과의 관계에서 러시아는 '9·11'이후 미국의 일방주의로 인해 형성된 유럽과 미국 사이의 외교적 간극·균열에서 '통합자'(integrator in the transatlantic gap)' 또는 '유럽의 통합자'(European integrationist)'로서의 역할을 자임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라크전쟁 등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한 반대급부로 형성된 러시아·프랑스·독일 간의 외교적 협력관계, 이른바 '삼국협력' 관계가 해체되고, 슈뢰더 퇴진 후 등장한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정부는 푸틴체제에 대한 비판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작년에 이미 미국, 유럽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에서 실질적으로 애초의 목표와 효력에 대해 심각한 의문이 제기됐고, 이러한 전략적 파트너십 개념을 대체할 새로운 전략개념(예를 들어 '동맹')이 필요한 시점에 발생한 구 소비에트지역 국가들과의 에너지 가격분쟁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가?

SCO나 중국·인도와의 관계, 동북아 6자회담 등에서의 러시아의 공세적이고 일정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직 고전적 의미의 동맹관계 수립은 요원하다. 그렇다면 러시아 대외정책의 기조와 장기 전략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러시아 분석가들 간에 러시아의 장기전략은 조건 의존적이고 매우 유동적이라는 인식이 존재한다. 러시아는 자국의 행동의 자율성을 제약할 수 있는 장기전략적 의무(long-term strategic commitment)에 연루되기를 피하려한다고 평가된다. 러시아는 주요 국제 이슈들에서 협상력을 제고하고 안정된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일시적 동맹' 또는 '선택적 동맹'을 추구한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이것은 역으로 러시아의 영향력 확보에 제약조건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결정적인 리스크 회피를 가능하게 해주기도 한다. 북핵 6자회담이나 이란문제 등에서 이러한 원칙들이 적용되고 있다. 러시아 외무장관 세르게이 라브로프는 이러한 선택적 동맹을 '네트워크 외교'라고 정의한 바 있다. 따라서 러시아 대외정책 개념에서 가장 중요한 '근외지역'에 대한 전략 또한 고전적 의미의 동맹 개념보다는 이런 원칙이 준용될 수 있으며 이것에 근거해 최근의 에너지 공급분쟁을 해석할 수 있다.

물론 구 소비에트 지역의 경우 전략적 비중에서 타 지역(원외지역)과 비교할 경우 특수한 위치에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번 분쟁에 이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 확인과 길들이기 측면이 있는 것 또한 배제할 수 없다. 현재 3000억 달러의 외환보유고와 막대한 에너지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러시아로서는 포스트 소비에트 공간에 대한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해 군사적 수단에 의존하는 것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으며 한반도문제에 대한 접근도 그러하다.

▲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항.
ⓒ 오마이뉴스 김태경
아시아 태평양벡터와 '다자적 파트너 네트워크'

현재 러시아에서는 대외정책방향에서 유러피언 벡터와 아시안 벡터에 대한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푸틴정부 외교팀의 공식적인 입장은 양자 간의 정책적 충돌은 존재하지 않으며, 러시아 외교정책의 우선순위와 지향의 문제는 양자 간의 선택의 문제가 아닌 멀티벡터적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미국·유럽과의 관계가 냉각되고 있는 가운데 아시안 벡터에 대한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아시안 벡터론의 주요 논지는 전통적으로 유로-대서양 공간에 초점을 맞춘 대외정책에 대한 인식 전환 없이 새로운 아시아정책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중국·인도와의 오랜 정치, 경제적 협력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여전히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국외자로 인식되고 있고 해당지역 국가들은 역내시장에서 러시아의 경제적 능력과 정책적 의지에 대해 회의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러시아-유럽 간의 관계와 비교할 경우에도 전략적 협력관계의 수준, 정기적인 정상회담, 공동의 협력 공간, 다양한 형태의 대화채널 등에서 아시아와의 관계는 저발전돼 있다고 평가된다.

따라서 아시아 벡터론자들은 러시아의 아시아 정책과 관련,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과 같은 지역안보기구나 ASEAN, APEC 등의 경제협력체에 대한 참여와 협력 공간 창출 등의 역동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전통적인 유럽중심적인 대외정책적 사고를 전환해 아시아정책에 대한 국가적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한다.

러시아의 아시아 정책은 대략 세 가지 목표와 가능성을 추구한다. 먼저 국내 정치·경제적 측면에서 경제발전전략으로서의 '근대화 프로젝트'라는 목표와 관련된 것이다. 기존의 근대화 프로젝트는 유러피언벡터 의존적인 것이었는데 이에 발생하는 문제는 유럽-러시아 이외지역, 특히 시베리아-극동지역의 저발전과 지역 간 양극화 상태의 심화다. 시베리아-극동지역의 발전은 러시아의 근대화 프로젝트의 성공과 경제의 질적 성장을 위해 불가결한 문제이다. 이것은 단순히 이 지역의 에너지자원의 개발, 수출문제 이상의 정치적 의미, 즉 국내시장과 경제적 통합성 그리고 국가통합성에 관한 '내적발전'의 문제이다.

시베리아-극동지역의 대외무역의 85%가 아시아·태평양 지역국가들과의 교역이 차지하고 있고, 러시아 전체무역 비율에서도 이 지역 국가들과의 교역은 지난 3년 간 13.4%의 증가추세(향후 30% 증가 예상)를 보여 유럽과의 교역이 해당기간 동안 4.3% 증가에 그친 것을 감안하면 그 경제효과를 판단할 수 있다.

따라서 시베리아-극동지역경제를 아시아경제에 적극적으로 연계, 통합하는 방안에 대한 국내적 요구가 대두되고 있다. 러시아는 시베리아-극동지역의 경제적 성장을 통해서만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통합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다음으로, 아시아의 경제적 통합추세가 부여하는 기회 활용 측면이다. 아시아 지역의 높은 경제 성장률과 경제적 상호의존도 증가로 해당지역에서 경제협력이 심화돼 10년 이내에 양자 및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체결에 의한 자유무역지대가 수립될 것으로 러시아는 예측하고 있다. 러시아로서는 이러한 추세에 시기적절하게 적극 참여할 필요성이 있다.

단기적으로 볼 때, 유럽과 달리 아시아 지역은 문화적·역사적·정치적으로 동질성이 결여되고 하위지역들이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어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나 EU같은 대범위의 협력체를 수립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비교적 레벨이 평균적인 국가들 간의 수평적 통합이던 1950년대 유럽 사례와는 다르게 아시아지역에서는 하나의 강대국과 다수의 약소국들 간의 경제적 통합(예를 들어, 중국과 ASEAN 국가들)을 예상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대범위의 통합이 예상되지만, 이러한 중범위 수준의 통합모델 또한 러시아에게 오히려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복수의 다자적 파트너 네트워크 구성을 통해 네트워크 외교를 실현할 수 있는 전략적 입지가 넓어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마지막으로, 아시아 지역의 세력균형 측면이다. 러시아의 판단으로는 아시아의 주요국가들-미국·중국·일본·인도·한국-간에는 아직 동맹이나 통합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며, 지역국가들 간에 역내에 대범위의 정치, 군사적 동맹이나 안보공동체가 수립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또한 해당지역에서 러시아가 패권적 지위를 획득하기도 어려우며 중국의 대외정책 우선순위도 러시아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라는 것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러한 조건이 러시아에게는 선택적 동맹을 위한 전략공간을 열어줄 수 있다. 따라서 러시아는 중단기적으로 양자간(러-중, 러-인), 소범위(러-중-인) 협력모델을 핵으로 하여 중범위(SCO, ASEAN 등) 협력모델을 네트워킹하는 정책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6자회담 또한 이러한 틀 속에서 결정될 것이다.

'유라시아의 다리'를 건너서 아시아로?

푸틴이 집권초기에 '러시아가 없는 유럽은 상상할 수 없다'고 했지만 러시아는 제국의 길을 선택한 후 유라시아 국가로서의 '예정된 운명'을 주장하면서 유럽과 아시아 간 문명의 교량 역할을 자임해왔다. 서로 상이한 문화, 종교적 특성과 지역 간의 차이, 발전단계와 경로적 특수성 등을 인정하고 문명 간 상생이란 측면에서 포괄적인 전략모델을 수립하는 것이 러시아의 역할이라는 것이고, 특히 아시아에서의 문제해결을 위한 러시아 특유의 잠재력을 강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중동지역의 이란-이라크문제나 동북아 지역의 북핵문제 등에서 역할이 그것이다. 푸틴체제의 권위주의적 성격 논란 및 에너지 정책 등과 관련하여 유럽의 러시아에 대한 부정적인 추세가 2007년에도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한 가운데 아시아로의 접근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월 24일 300여 명의 대규모 사절단을 이끌고 '공화국의 날' 행사에 주빈자격으로 인도를 공식 방문한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인도간의 핵 협력에 합의한 데 이어 2008년을 인도는 '러시아의 해'로, 러시아는 2009년을 '인도의 해'로 선포하였다. 작년에 러시아와 중국 간에 2006년과 2007년을 상호 '국가 년'으로 지정한 것과 연관하여 러-중-인 간의 접근이 주목되고 있다.

2007년 아시아 정책은 다음과 같은 과제를 중심으로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먼저, SCO와 유라시아경제공동체(EEC)와의 파트너쉽 관계의 발전을 기반으로 이러한 기구들과 ASEAN과의 기구 간 중범위적 연계를 모색할 것이다. 다음으로, APEC에 대한 주도적인 참여를 통한 대범위에서의 러시아의 장기적인 전략적 포석이 예상된다. 셋째, 러시아-ASEAN, '동아시아 정상회의'(East Asia Summit) 참여 등 정상회담의 정례화를 통해 유럽과 같이 최고위급 수준의 대화를 제도화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북한에 대한 경제협력과 지원에서 예년과는 다른 진전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6년간 중단됐던 북-러간 경제통상위원회도 3월부터 재가동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러한 조치는 극동지역의 고립이 러시아의 국가적 정체성과 안보에 심각한 위협요인이라는 인식 아래, 시베리아-극동지역에서 아시아지역 경제와의 긴밀한 연계를 통한 근대화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북한 문제를 건너뛸 수 없다는 판단에서 비롯한 것이다. 한국과는 에너지 분야에서의 협상과 더불어 양자간 FTA체결에 대한 가시적인 일정 요청 등 좀 더 적극적인 시도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2007년 러시아는 내부적으로 경제적인 성공에 기반해 대외적으로 별다른 위협요인에 직면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위치에서 대외관계를 풀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미국·EU와의 관계개선문제는 여전히 러시아의 대외관계에 짐으로 작용할 것이다. 금년에 있을 프랑스 대선의 향방과 영국 블레어 수상의 퇴진 등의 변화 또한 작년의 독일의 내각교체 영향에 비추어 러시아에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유럽의 이러한 변화가 러시아의 아시아로의 접근에 힘을 실어주고 있기도 하지만, 이에 대해 국내적인 우려나 비판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아시안 벡터로의 전환을 반대하고 유러피언 벡터를 주장하는 그룹에서는 푸틴정부의 아시아정책을 러시아 버전 '네오콘'이 주도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따라서 금년 러시아의 대외정책은 아시아로의 접근이 현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다리를 건넜는지는 총선과 내년 대선이 결정해줄 것이다. 러시아의 금년은 내년, (대선이 있는) 2008년을 위해 존재한다. 즉 러시아에게는 2008년이 더 중요하다.

덧붙이는 글 | 코리아연구원(www.knsi.org)은 연구자, 정책전문가, NGO 활동가 등을 기반으로 한 '네트워크형 민간 싱크탱크'로 외교안보 및 양극화 관련 정책대안 및 국가전략 제시를 목적으로 연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태그:#러시아, #아시아, #유럽, #분석, #코리아연구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