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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후 서울 안국동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 뉴센추리홀에서 열린 '미스터 초밥왕 식객을 만나다' 행사에서 만화 '미스터 초밥왕'의 작가 테라사와 다이스케씨가 '식객'의 작가 허영만씨와 한일 음식문화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3일 오후 서울 안국동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 뉴센추리홀에서 열린 '미스터 초밥왕 식객을 만나다' 행사에서 만화 '미스터 초밥왕'의 작가 테라사와 다이스케씨가 '식객'의 작가 허영만씨와 한일 음식문화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황광모
"맛있는 음식이 꼭 좋은 음식은 아니다."

<식객>의 작가 허영만(58)과 <미스터 초밥왕>의 작가 데라사와 다이스케(寺澤大介. 48)가 입을 맞춘 듯이 똑같은 요리관을 선보였다. 지난 3일 오후 서울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에서 열린 허영만과 데라사와 다이스케의 대담 자리에서였다.

사람들의 식욕을 부채질(?)하는 두 작가의 발언으로선 의외였다. 더 나아가 "음식 쓰레기가 지구를 뒤덮는 공포를 느낀다"면서 엄청난 식탐 문화를 경계했다.

허영만은 2004년 제주환경운동연합 주최 '우리의 먹을거리와 환경-우리의 밥상'에서 강사로 나서 "위험한 지구를 살리려면 조금 먹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는 육류 문화가 빚는 환경 파괴, 패스트푸드 때문에 사라지는 열대우림 등 상당히 구체적인 데이터를 갖고 지구를 살리는 방법을 역설했다.

이 날 두 사람은 양국 음식 문화와 요리만화에 대해 풍부한 이야기를 나눴다. 허영만은 일본 요리에 대해 '달다', 데라사와는 한국 요리에 대해 '맵다'고 평가했고, 서로의 만화에 대해선 "초밥만 갖고 장기 연재를 한다는 게 놀랍다" "재미뿐만 아니라 굵직한 감동을 준다"고 호평했다.

두 작가의 대담을 만화 칼럼니스트 선정우(코믹팝엔터테인먼트 대표)씨가 질문자로 나서 진행했다. 다음은 두 사람이 나눈 대담 전문이다.

일본음식 "달다", 한국음식 "맵다"

<미스터 초밥왕>의 작가 데라사와 다이스케.
<미스터 초밥왕>의 작가 데라사와 다이스케. ⓒ 오마이뉴스 김대홍
- 양국 음식에 대한 인상과 양국 음식문화의 차이는?

허영만(이하 허) : '달다'는 느낌이 강하다. 반찬 개수가 적지만 거의 '계란'이 빠지지 않은 것도 기억에 남는다. 생선을 먹을 때도 일본은 숙성시킨 맛을 중요시하는 반면 우리는 '활어'처럼 씹는 맛을 중요시한다. 일본은 개인 문화고 우리는 단체로 먹는다. 비위생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좋게 보면 '정'이 있다. 또 일본은 밥공기를 들고 먹고, 우리는 들지 않고 먹는다.

데라사와 다이스케(이하 데) : 맵다는 인상이 강하다. 낙지볶음은 특히 매웠다. 그리고 일본은 젓가락만 사용하고 한국은 젓가락과 숟가락을 같이 사용한다. 일본 젓가락이 한국을 통해 전달됐다고 하는데, 왜 숟가락은 전해지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밥그릇을 들고 먹는 것은 젓가락만으로 먹기 때문이다. 국도 들고 마시는데, 한국의 뜨거운 국을 대했을 때 처음엔 난감했다. 숟가락이 있으면 편하게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 요리 만화를 그리면서 생각하는 점은?

: 요리에 대한 문제점을 많이 생각한다. 고급 식재료와 자연스러운 식재료 중 어느 것이 좋을까 하는. 즉 좁은 공간에 가둬놓고 만드는 닭과 농가에 자유롭게 뛰노는 닭이 있다고 하자. 후자가 고급 식재료인데, 모든 사람이 다 마당에서 뛰노는 닭만 찾는다면 아마 닭은 멸종할 것이다. 또한 식재료를 만드는 사람은 비싸게 팔려는 욕구가 있고, 소비자는 좋은 식재료를 편리하게 먹고 싶은 욕구가 있다.

좋은 쌀을 편의점을 통해서 먹고 싶은 게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편의점은 유통기한 지나면 폐기 처분한다. 양쪽의 적절한 지점을 찾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그 동안 서울에 두 번 왔는데, 일본과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그런데 '식객'을 보고 한국과 일본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 세계 음식 25% 정도가 과잉생산 된다고 한다. 많이 (과잉) 생산하는 곳은 50% 정도 되는 곳도 있다고 한다. 반면 아프리카에선 굶어죽고.(잠시 뜸을 들인 뒤) 이왕이면 제철 음식을 먹는 게 좋다고 본다. 기다리는 맛도 있을 것 아닌가.

사실 맛을 표현하는 게 참 어렵다. 우리가 어린 시절 맛봤던 음식이 평생 좌우한다. 어머니의 숫자만큼 맛의 종류도 다양하다. 100명 다 맛있다는 음식은 없다. 가능한 많은 사람이 맛있어 하는 것을 찾는 편이다.

요리를 흑백만화로 표현하는 게 참 어렵다. 색깔이나 냄새를 표현할 수 없으니. 그래도 그림 그리는 문하생(4명)들한테 이 것 하나만은 강조한다. 음식만화를 그리려면 독자들이 먹고 싶도록 그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내 만화는 음식에 사람 사는 이야기 끼우는 게 아니라 사람 사는 이야기에 음식을 끼워 넣고 있다."

- 양국 만화의 차이는.

: 큰 차이 없는 것 같다. 한국 만화 읽으면서 재미있다고 느꼈다.

: 우리나라 만화 역사가 짧다. 그래서 일본 만화 영향을 많이 받았다. 40대의 만화 그리는 친구가 '<바벨2세>가 한국만화인줄 알았다'고 말한 적 있다. 일본 만화의 영향력은 지금도 여전하다. 음식 만화를 구상했을 때 <초밥왕>의 아류가 되지 않을까 굉장히 고민했다. 처음 대결구도가 나왔을 때 '아류'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독자들이 (<초밥왕>을 따라가지 않을까) 경계의 눈으로 본 것이다.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그런 의혹은 없어졌지만.

"<미스터 초밥왕> 그렇게 오래 연재할 줄 몰랐다"

<식객>의 작가 허영만.
<식객>의 작가 허영만. ⓒ 오마이뉴스 김대홍
- <미스터 초밥왕>을 지금 스타일대로 만들게 된 계기는?
: 이 만화는 소년만화다. 소년이 성장하면서 고난을 극복한다는 내용이다. 소년만화의 특징은 스포츠든 다른 장르든 모두 똑같다. 소년만화 틀 안에 요리가 포함된 것이다.

요리 중에서도 초밥을 선택했는데, 초밥은 일본 사람에게 특별한 요리다. 나도 초밥을 자주 먹지는 않는다. 특별한 일이 있을 때 먹는다. 그날은 상당히 행복한 날이다. 혼났을 때 먹었던 음식을 어른이 되고 나서도 기억하는 것처럼 초밥은 그런 기억을 불러낼 수 있다.

사실 초밥만 갖고 그렇게 오래 연재할 줄 몰랐다.(<미스터 초밥왕>은 1996년 7월 1권을 시작으로 1998년 1부가 끝났고, 2000년 11월 전 시리즈가 완전히 끝났다.) 처음엔 초밥에 관한 기억으로 만화를 구상했다. 소년과 소녀가 사랑한다. 소녀가 돈 많은 남자에게 시집간다. 소녀가 소년의 마음을 간직한 초밥을 기억한다와 같은.

- <식객>에서 회를 표현한 것으로 아는데.

: 아직 표현하지 않았다. 그런데 회를 워낙 좋아하고 어릴 때 고향(전남 여수)에서 회를 많이 먹었기 때문에 앞으로 다룰 것이다. 요즘 회 먹는 문화에 대해선 그렇게 안 먹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보통 상추에 고추, 마늘 등 온갖 양념을 얹고 회를 고추장에 듬뿍 찍어 올린 뒤 먹는다. 강한 양념과 고추장 때문에 회 맛이 사라져 버린다. 도미 같이 고급회도 그렇게 먹으면 소용이 없다. 강한 양념을 자제하고 회 자체 맛을 즐겼으면 좋겠다.

- 취재를 많이 하는데.

: 취재를 많이 하고 사진도 많이 찍는데, 수집한 정보의 3분 1 정도밖에 쓰지 못한다. 정보가 너무 많으면 오히려 전달이 힘들다. 화학성분 같은 것을 만화에 넣기는 힘들다. 가능한 음식의 탄생 배경 등을 통해 요리를 표현하려고 한다.

: 바른 정보가 없으면 바른 만화를 그릴 수 없다. 초밥집 가서 초밥 만드는 방법을 보기 위해 매일 갔다. 400번 정도 초밥 만드는 모습을 본 것 같다. 자꾸 보니 보이더라. 칼질을 왜 다르게 하는지 질문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문제는 초밥도 계절이 있다. 초일류 초밥은 그 계절에 그 고장에서 나는 가장 신선한 재료를 쓴다. 매일 그 초밥집에 가더라도 최고의 초밥은 1년에 단 한 번이다. 10년 동안 가도 10번밖에 최고의 초밥을 먹을 수 없다.

- 책이나 다른 데서 정보를 얻기도 하는지.

: 어느 초밥집이 맛있는지 물어본다. 그리고 직접 찾아간다. 지방에 있는 사람한테 물어보기도 하고. 인터넷이나 책을 보고 정보를 얻기도 한다. 자료를 보고 지방에 찾아갔을 때 없는 경우도 있다.

- 에피소드는?

: <미스터 초밥왕> 축제를 신라호텔이 기획해서 한국에 온 적이 있다. 그때 답례로 한국 초밥을 기획했다. 그런데 특별한 한국 초밥이 있냐고 물었더니 '없다'고 하더라. 난감했다. 언젠가 한국의 한 회전초밥집에 갔는데, 불그스럼한 초밥이 나왔다. 쫄깃쫄깃한 게 맛있어 '뭐냐'고 물었더니 '개불초밥'이라고 하더라. 부산 가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날 심야열차를 타고 부산에 갔다. 실제 개불을 보니 이상하게 생겼더라. SF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모양이었다. 일본에선 본 적이 없었다.

"<식객> 참 굵직한 작품이다"

-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은.

: 초밥 하나만 갖고 장기 연재를 하는 것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 처음 식객도 '김치'만 갖고 끌고 갈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다른 음식을 넣고, 급기야 술까지 끌고 들어갔다.

요즘 전 세계 음식은 '단 맛'에 점령당하고 있다. 일본 음식도 달다. 일본 음식이 언제부터 달았는지 궁금하고, 화학조미료가 일본의 단 음식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하다.

: 일본 음식이 달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일본은 찍어먹는 장이 그냥 간장이 아니라 다시 국물이다. 초밥을 달게 먹기 위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일본의 단 음식문화는 아주 오래 됐다. 나도 어렸을 때부터 먹어서 그런지 익숙하다.

화학조미료 영향도 있을 것이다. 일본이 어려웠을 때 매일 국물을 만들어 먹는 게 어려웠다. 지금은 일하는 주부들이 늘면서 한계가 있다. 음식이 전부 화학조미료 맛이라면 문제가 있겠지만 어느 정도는 쓸 수밖에 없다고 본다.

안타깝게도 일본에 번역된 한국만화가 별로 없다. <식객>은 참 굵직한 작품이라고 느꼈다. 굉장히 강하게 느껴진다. 나는 엔터테이너 성격이 강하다. 큰 사명의식이 없다. 굵직하게 생각한 적이 없고, 크게 벌인 적이 없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 음식만화 외에 다른 장르를 구상한 적은 없는지.

: 도전해봤지만 망했다.(웃음)

중요한 건 요리하는 사람의 가치관

이날 공보문화원 2층에선 <미스터 초밥왕> 만화 전시회가 펼쳐졌다. 이를 구경하는 사람들.
이날 공보문화원 2층에선 <미스터 초밥왕> 만화 전시회가 펼쳐졌다. 이를 구경하는 사람들. ⓒ 오마이뉴스 김대홍
- 자신의 작품들이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졌을 때 태도는.

: 원작을 넘길 때 영화사 연혁 같은 걸 잘 살펴본다. 넘긴 다음엔 전혀 간섭하지 않는다. 불만이 있을 수도 있는데... 옛날에 영화 시사회 자리에 참석한 적 있다. 영화를 보고 감독에게 몇 마디 해줄까 생각했었다. 감독을 보니 주위에 스탭 20여 명과 함께 있더라. 잘못 이야기하면 20명한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웃음) 아기가 태어났으면 덜 떨어졌더라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 처음에 내 작품이 드라마로 만들어 졌을 때 무척 기뻤다. 하지만 점점 흥미가 없어지더라. 만화의 주인공 캐릭터와 드라마나 영화 캐릭터는 다르다. 왜 그런가 봤더니 만화 원작을 각본가 사람이 각색한다. 그걸 감독이 바꾸고, 연기자가 또 자기 생각대로 해석한다. 그러니 원작만화와 영상물이 다른 게 어쩔 수 없다고 본다.

- 만화 속 캐릭터와 본인이 닮은 점이 있는지.

: 작가가 그리는 인물은 작가의 마음속에만 있는 것이다. 나는 쇼타처럼 성실하지 못하고 식탐정처럼 낙천적이지 못하다.

: 나도 마찬가지다. 성찬과 달리 굉장히 변덕이 심하고 성격이 급하다.

- <미스터 초밥왕>은 음식과 추리를 섞었다. 앞으로 다른 장르와 요리를 결합할 생각은.

: 요리는 일본에서도 인기 장르다. 데이터는 비슷한데, 수많은 사람이 요리만화를 만드니까 굉장히 얄팍해져버린다. 싸게 보이지 않기 위해 장치가 필요했다. 처음엔 굉장히 불안하게 시작했다. 원래 코미디를 좋아한다. 그런데 <초밥왕> 이후부터 감동을 좋아하는 작가가 돼 버렸다. <식탐정>도 그렇게 좋은 캐릭터가 만들어지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앞으로도 요리를 소재로 한 만화를 계속 그릴 줄은 모르겠다.

-어떻게 만화가가 됐나.
: 대학교 다닐 때는 만화가가 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당연 그림 공부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졸업 때가 돼서 취직할 생각하니까 만원전철 타고 직장 가는데 싫었다.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만화가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러스트레이트를 뒤늦게 공부하기 시작했다. 미대 나온다고 해서 그림 잘 그리는 게 아니다고 생각한다.

- 좋은 요리란 무엇인가. 맛있는 요리가 좋은 요리인가. 음식 공급의 불균형 이야기도 나왔는데, 사회적인 의미도 따져봐야 할 것 같다.

: 요리는 맛도 맛이지만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정성이 들어간다고 다 맛있는 것은 아니다. 총각 때 하숙한 집주인이 충청도 분이었는데, 굉장히 정성스럽게 요리를 했다. 그런데 맛이 너무 없었다. 결국 보름만에 집을 나왔다.

요즘 사람들이 너무 많이 먹는다는 생각을 한다. 좀 더 적게 먹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이대로 가면 이 지구가 음식 쓰레기로 덮이는 것 아닌가 하는 공포 속에 만화를 그린다.

: 맛있다고 다 좋은 게 아니다. 어느 맛있는 음식을 1주일동안 먹었더니 몸이 붓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너무 맛있는 게 몸엔 나쁠 수도 있다. 최고의 재료를 사면 좋은 요리를 만들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요리하는 사람의 가치관이다. 같이 먹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세계 식량 위기를 생각하면서 그림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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