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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어려운 장애인과 함께하는 당나귀 아저씨. 시각장애인 조승현씨.
ⓒ 라이프존

자기 자신도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언제나 남을 위해 뛰어다니는 시각장애인이 있어 주위에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시각장애인들에게는 당나귀 아저씨로 더 유명한 조승현(60)씨가 주인공이다.

조승현씨는 현재 '시각장애인 자립을 돕는 라이프존(life-zone)'을 운영하면서 주위의 어려운 장애인들을 돕기 위해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다. 라이프존(http://www.bec.or.kr)은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함께 모여 이러한 작은 고비에 닥친 장애인들의 고비를 넘기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다.

또한 그는 집수리가 필요한 장애인이 있으면 도와줄 사람들을 찾아 함께 수리하기도 하고 수술비가 없어 고생하는 장애인이 있으면 수술비를 마련하기도 한다.

당나귀처럼 구석구석으로

@BRI@"누구나 작은 고비는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 고비를 넘기지 못하면 현재의 위치에서 상상할 수 없는 바닥으로 추락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이러한 고비를 넘겨 삶의 질의 추락을 막아보자는 것이 라이프존을 만들게 된 계기이지요."

성북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정보화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오정훈씨는 "우리 젊은 사람들은 조승현 아저씨를 '당나귀'라고 부릅니다, 마치 과거 구석구석 짐을 나르는 당나귀 같아서 붙인 별명이지요"라며 조씨를 설명하였다. 조씨도 이런 별명이 싫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당나귀 아저씨 조씨가 경제적으로 넉넉한 것은 아니다. 그는 서울 흑석동의 약 15평 남짓한 빌라에서 부인과 함께 세 들어 살고 있었다. 생활은 현재 부인이 책임지고 있는 상태. 조씨 역시 6년 전 앓았던 포도막염으로 인해 전혀 앞을 보지 못하는 1급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이다.

라이프존은 그동안 역량에 비해 많은 일들을 해냈다.

A씨는 소아당뇨로 인해 신장과 췌장을 이식해야 하는 시각-청각의 중복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라이프존은 약 5천만원의 수술비와 치료비를 마련하여 수술을 도왔고, A씨는 지금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있다. 또한 역시 시각과 청각을 상실한 중복장애인 B씨에게 라이프존을 통해 인공 와우 수술을 할 수 있도록 했다. B씨는 현재 언어치료를 통한 사회적응을 할 수 있도록 애쓰고 있다. 이밖에 서울과 인천에 거주하는 노인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여름에는 선풍기를, 겨울에는 난로를 보급하는 일도 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을 위해 조씨는 언제나 발로 뛰어다닌다.

"라이프존은 돈이 많은 단체가 아닙니다. 전혀 없지요. 그래서 우리는 사무실도 없어요. 사무실을 운영하려면 그만큼의 경비가 들어가게 되거든요. 그 경비를 아껴 다른 일에 써야지요. 필요할 때 회원들이 모이고 지원을 위해 각자가 할 일을 정하고 도움을 줄만한 사람들을 찾아 뛰는 수밖에는 없지요."

▲ 2006년 12월 라이프존 활동보고대회에 조승현씨.
ⓒ 라이프존
현재 조씨는 시각과 청각의 이중 장애를 가지고 있는 중복장애인에 대한 지원을 위해 고민하고 있다.

시청각 중복 장애인들이 타인과의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반드시 누군가 옆에서 통역을 해주어야 하는데 현재는 손가락에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점자를 터치하는 방법인 '손가락 점자'를 사용하거나 청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수화를 만져서 확인하는 '촉수화' 등의 방법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헬렌 켈러는 시각과 청각, 그리고 언어 장애라는 3중고에 시달렸습니다. 정작 우리 주변에 헬렌 켈러와 같은 시청각 중복 장애인에 대해서는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 또한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가능하여야 하고 그러려면 무엇보다 그들에 대한 통역과 교육이 중요합니다."

그는 현재 서울·인천·대전 등지에 흩어져 있는 약 10명의 시청각 중복 장애인과 함께 시청각장애인 자립과 재활을 위한 모임인 '시청각장애인 자립&지원회(가칭)'을 준비하고 있다. 이 모임을 통해 그는 시청각장애인들에게 통역서비스를 제공하고 그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한 활동을 펼칠 생각이다.

마침 3월에 방문하는 도쿄대학교의 후쿠시마 사토시 교수와 전영미 박사 일행도 이 모임 결성식에 참가하기로 하였다. 특히 후쿠시마 교수는 이 모임 결성식에서 일본 시청각장애인의 현황이나 복지에 대하여 특별 강연도 할 예정이다. 그 역시 시청각 중복장애를 가지고 있어 '살아 있는 동양의 헬렌 켈러'라고 불린다.

조씨는 우선 올해에는 시청각 중복장애인을 찾아내 필요한 통역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고 충분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당면한 문제라고 말했다.

장애인이 서로 돕는 직업 대안 만들 터

▲ 오늘도 '흰 지팡이 또드락거리며 집을 나서는 당나귀 아저씨.
ⓒ 라이프존
조씨의 제일 큰 꿈은 장애인이 서로 돕는 직업을 만드는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 현재 여러 가지 방안을 찾고 있다.

"사실 장애인이 정상적인 직업생활을 하기는 실제로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회사에서 장애인을 기피하고 있는 듯합니다.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마저 지키지 않는데 기업들이 지키겠습니까? 그렇다고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에게만 책임을 돌릴 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조금만 달리 생각하면 얼마든지 그 방법들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유형이 서로 다른 장애인들이 서로를 보완하는 방법으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직업을 창출 할 수 있다는 것이죠."

'앞 못보는 사람이 다리다친 사람 업고 간다'는 말을 실제로 직업적 대안으로 찾고 싶다고 조씨는 말했다.

예를 들어 청각·지체 장애인들이 인터넷에 접근이 가능하도록 '이미지 이름표 붙이기(레이블링)'을 한다거나, 하여 시각장애인이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을 펼치게 되면 시각장애인에게는 정보접근이라는 기대효과를 그리고 이에 종사하는 청각 등의 다른 유형의 장애인들은 직업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청각장애인들의 전화 통화시의 통역을 위해 시각장애인들이 컴퓨터를 통해 통역을 한다거나 하면 장애인들에게 서비스도 제공하면서 또 다른 장애인에게는 직업 활동도 가능하다는 게 조씨의 생각이다.

조씨는 이러한 자신의 생각을 구체화하기 위하여 필요한 자금 이나 여러 가지 제반 사항 등을 마련하기 위해 바쁘게 뛰고 있다. 한 겨울 바람이 매섭다. 이 차가운 날씨에도 그는 바쁘게 그의 표현대로 "흰 지팡이 또드락거리며" 집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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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1급 시각장애인으로 이 땅에서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장애인의 삶과 그 삶에 맞서 분투하는 장애인, 그리고 장애인을 둘러싼 환경을 기사화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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