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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다시 접할 기회가 생겼다. 이 책은 내가 어릴 적 읽었던 몇 안 되는 과학 서적이라서 그런지 우연히 눈에 띄기라도 하면 옛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운 느낌이 들곤 한다.

이번에도 반가운 마음에 새로 옷을 갈아입은 깔끔한 표지에 선뜻 눈길이 갔는데, 가장 먼저 내 눈에 띈 것은 요란한 광고 문구가 아로새겨진 금색 띠지였다. 거기엔 "한국의 과학자들이 청소년에게 권하는 과학 도서 1위", "역사상 가장 많이 읽힌 과학 교양서", "KBS 눈물나게 재미있는 과학책" 등과 같은 거창한 광고 문구들이 즐비하게 나열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거창한 광고 문구들 사이로 예상치 못한 한 줄의 문장이 눈에 띄었다. "칼 세이건 서거 10주기 특별판". 그 순간 기분이 묘해졌다. 절친했던 친구를 잃은 느낌이라고 하면 좀 과장된 표현처럼 들릴까? 그 정도는 아니어도 10년이 지난 후에야 옛친구의 죽음을 알게 되었을 때의 미안함과 안타까움 같은 것이 스치고 지나갔다.

오래전에 읽었던 <코스모스> 표지에 붙어 있던 칼 세이건의 사진은 항상 건강한 웃음을 머금고 있었는데... 그가 서거한지 10주기가 될 때까지 그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니 그동안 나도 꽤나 안달복달하며 산 모양이다.

지금 내 책상엔 새로 구입한 특별판 <코스모스>(사이언스북스, 2006, 홍승수 옮김)와 어릴 적 읽던 투박한 <코스모스>(학원사, 1993, 서광운 옮김, 조경철 감수)가 나란히 놓여 있다. 굳이 어느 것이 더 좋은가 나쁜가를 따지고 싶진 않다. 다만, 아무래도 어릴 적 추억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손때 묻은 옛날 책에 좀더 정이 가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번역 상태를 놓고 보면 서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둘 다 무난하게 잘 된 것 같다. 가장 큰 차이는 책의 크기다. 예전에 읽던 <코스모스>는 약 490쪽이었는데 새로 나온 특별판은 무려 700쪽이 넘는다. 다시 말해서 책의 크기가 작아진 대신에 두께가 두꺼워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무게감은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그만큼 가벼운 종이를 사용했다는 얘기일 것이다.

아무튼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걸 보니 정말 기쁘다. 이 책은 정말 쉽고 재미있는 우주과학 입문서다. 단순히 쉽고 재미있다는 말로는 한참 부족하고, "눈물나게"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품격이 있는 책이다. 그것을 확인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 <코스모스>의 첫 문장을 읽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코스모스(cosmos, 우주)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그 모든 것이다. 코스모스를 정관(靜觀)하노라면 깊은 울림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나는 그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지고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며 아득히 높은 데서 어렴풋한 기억의 심연으로 떨어지는 듯한, 아주 묘한 느낌에 사로잡히고는 한다. 코스모스를 정관하는 것이 미지(未知) 중 미지의 세계와 마주함이기 때문이다. (....)

인류는 영원 무한의 시공간에 파묻힌 하나의 점, 지구를 보금자리 삼아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주제에 코스모스의 크기와 나이를 헤아리고자 한다는 것은 인류의 이해 수준을 훌쩍 뛰어 넘는 무모한 도전일지도 모른다. 모든 인간사는, 우주적 입장과 관점에서 바라볼 때 중요하기는커녕 지극히 하찮고 자질구레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인류는 아직 젊고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으로 충만하며 용기 또한 대단해서 '될 성 싶은 떡잎'임에 틀림이 없는 특별한 생물 종이다. (....)"


칼 세이건이 특별한 이유는 "무한한 우주 속에서 지구는 아주 작은 먼지에 불과하다"는 막연한 진리를 우리들이 직접 깨닫고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기 때문이다. 막연히 우주가 무한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그것을 직접 실감하는 것은 그 의미가 다르다. 그는 TV와 책을 통해 우주의 무한성과 인간의 유한성을 실감나게 설명해주었다.

우주 어딘가에 또 다른 생명체가 살고 있는지, 지구를 닮은 별이 존재하는지, 우주가 무한한지 유한한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지난 날 지구 안에만 갇혀 있던 우리의 시각이 칼 세이건을 비롯한 많은 과학자, 우주 탐험가들의 노력 덕분에 지구 밖으로 한층 넓어진 것은 정말 놀랍고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우주시대를 여는 인류에게 이정표 역할을 한 의미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우리도 이제 한국인 최초 우주인 탄생을 앞두고 있는 만큼 자라나는 꿈나무들이 이 책을 꼭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코스모스 - 보급판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사이언스북스(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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