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김동오 부장판사)는 5일 비자금 693억원을 조성하는 등 900억원대 회삿돈을 횡령하고 계열사에 2천100억원대 손실을 끼친 혐의로 기소된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취재진의 질문을 받으며 법정을 나서는 정 회장에게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 회원이 자신들의 요구를 주장하려 하자 현대기아차 직원들이 몸으로 에워싸 이를 제지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김동오 부장판사)는 5일 비자금 693억원을 조성하는 등 900억원대 회삿돈을 횡령하고 계열사에 2천100억원대 손실을 끼친 혐의로 기소된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취재진의 질문을 받으며 법정을 나서는 정 회장에게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 회원이 자신들의 요구를 주장하려 하자 현대기아차 직원들이 몸으로 에워싸 이를 제지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예상은 빗나갔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표정은 굳어졌고, 그는 아무말없이 서울 서초동 법원청사를 빠져나갔다. 정 회장의 뒤를 따르던 아들 정의선 기아자동차사장도 마찬가지였다.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통해 총수의 1심 선고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직원들의 표정도 어두웠다.

회삿돈 900억여원을 횡령하고 회사에 2100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특정경제가중처벌법의 횡령 및 배임)로 기소된 정몽구 회장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징역 3년의 실형이었다. 집행유예를 예상했던 세간의 전망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BRI@지난 4월 28일 검찰에 전격 구속된 이후 9개월여 만이다. 법원은 방어권 보장 차원에서 다만 신변 구속은 하지 않았다.

이번 판결로 정몽구 회장은 그룹 경영의 도덕성과 신뢰성에 큰 손상을 입게 됐다. 황제경영으로 불리는 전 근대적인 경영방식과 불법적인 부의 축적, 편법적인 경영권 승계 등에 대한 사법부의 단죄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현대자동차그룹은 1인 총수중심에서 벗어나 이사회 중심의 의사결정구조와 투명한 기업지배구조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안게 됐다.

법원, 정 회장 혐의 모두 유죄

정몽구 회장의 혐의는 크게 횡령과 배임이다. 우선 비자금 조성에 따른 회삿돈 횡령 부분. 정 회장은 지난 2001년 이후 그룹 계열사인 현대자동차를 비롯해 비상장사인 글로비스 등을 통해 비자금 693억원을 조성하는 등 회삿돈 900억여원을 조성해 횡령한 혐의를 받았다.

또 하나는 부실 계열사의 유상증자에 다른 계열사를 참여시켜서 회사에 손실을 끼친 혐의(배임)다. 이들 회사들이 입은 손실 금액은 모두 2100억여원에 달한다. 배임 금액이 50억원을 넘어 특정경제가중처벌법의 적용을 받는다. 그만큼 형량은 무거워지게 된다.

좀더 내용을 들여다 보면, 지난 99년부터 2000년 사이 청산이 예정됐던 현대우주항공의 빚에 대해 정 회장은 자신의 연대보증 책임을 피하기 위해 계열사들을 유상증자에 참여시켰다. 또 자금난에 빠졌던 현대강관이 유상증자를 실시하자, 현대자동차와 중공업 자금을 증자에 참여시켜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있다. 자동차 부품회사인 (주) 본텍을 그룹 계열사로 편입하는 과정에서 제3자 유상증자를 실시했고, 이 과정에서 아들인 정의선씨 등에 실제보다 훨씬 싸게 주식을 배정하는 방식을 썼다. 의선씨는 막대한 시세차익을 올렸고, 지배주주였던 기아자동차는 손해를 입었다.

법원은 정 회장에게 적용된 4가지의 혐의 모두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당초 법조계에선 검찰 기소 내용을 법원이 모두 받아들일 경우 최소 징역 5년 이상은 나올 수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실제로 검찰도 지난달 결심공판에서 피고인의 횡령 및 배임행위의 경우 범죄가 중대하고 폐해가 크다면서 징역 6년을 구형했었다.

집행유예 대신 실형 선고한 법원의 판단과 고민

특정경제범죄처벌법상 횡령 및 배임 혐의로 피소된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에 대한 선고공판이 열린 5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 회원이 자신들의 요구를 주장하려 하자 현대기아차 직원들이 이들을 끌어내며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특정경제범죄처벌법상 횡령 및 배임 혐의로 피소된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에 대한 선고공판이 열린 5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 회원이 자신들의 요구를 주장하려 하자 현대기아차 직원들이 이들을 끌어내며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물론 정 회장 쪽도 검찰 기소 부분에 대해서도 대체로 인정했다. 다만 외환 위기 극복 과정에서 기업 경영상 불가피한 점을 강조해왔다. 또 재판과정에서 현대자동차그룹에서의 정 회장에 대한 리더십과 경영성과 등을 적극적으로 설명했다.

이번 선고에 앞서 재계와 증권가에선 법원이 정 회장에게 실형보다는 집행유예를 내릴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이유는 형평성과 최근 경제여건을 감안해서 나온 것이다.

작년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의 비자금 사건 등에서도 검찰은 징역 6년을 구형했지만, 법원에선 집행유예를 선고했었다. 또 최근 원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수출 위주 국내 기업들의 이익이 크게 나빠지고 있는 경제 상황도 정 회장의 집행유예설을 뒷받침했다.

또 재계2위인 글로벌 기업의 총수에 대한 사법처리가 곧 기업의 위기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국가신인도와 기업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재계의 논리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지난 4일 재계 한 고위임원은 "법원의 결정은 사법부 고유의 권한"이라면서도 "비자금 조성 등은 당시 기업으로서 일부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고, 최근 수년 사이 현대차가 해외에서 올린 실적은 정 회장의 리더십이 아니면 얻기 어려운 결과였다"면서 법원의 선처를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법원의 생각은 달랐다. 재판부는 "정 회장의 범죄행위들이 과거 반시장적인 관행에 기초한 것이라 하더라도 법률적으로 명백한 범법행위에 해당하는 것들"이라면서 "그러한 구태의 잘못된 경영관행을 청산하고, 투명한 기업경영을 통해 선진경제로 도약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비춰 엄정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못박았다.

특히 장기간에 걸친 대규모 비자금 조성과 불법적인 사용이 기업 경영의 투명성과 건전성을 해친다는 점을 법원은 분명히 했다. 대신 정 회장이 현대차그룹을 총괄경영하면서,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현대차를 세계적 자동차 기업으로 성장시킨 부분에 대해선 법원도 인정했다.

현대차가 가야할 길... 정 회장일가 도덕성 손상, 투명 지배구조 고민

물론 현대차 쪽에선 아쉽다는 반응이 많았다. 익명을 요구한 현대자동차그룹의 한 임원은 "아쉬울 뿐"이라며 언급 자체를 꺼렸다. 대신 이번 판결이 앞으로 현대차 경영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는 "정 회장이 그룹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를 것"이라며 "외부에서 생각하는 것 이상이며, 비록 법정구속을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법원의) 실형 선고는 회사입장에선 분명한 악재"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임원은 "굳이 다른 그룹(두산)과의 형평성까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비자금이나 배임 등의 부분에서 법원의 판단은 다소 아쉽다"면서 "치열한 글로벌 경쟁 속에서 최고경영자가 회사 일에만 집중하기 어려운 현실이 돼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현대차그룹이 전근대적인 경영방식에서 벗어나 보다 투명한 의사결정구조와 지배구조 개선의 계기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는 "형량의 내용을 떠나 사법부에서 황제경영에 따른 불법적인 부의 축적, 편법적인 경영권 승계 등에 대해 단죄를 내린 점에 대해 평가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현대차의 강점이자, 약점은 정몽구 회장 한 사람에게 너무나 많은 것들이 집중돼 있다는 점이고, 이제 1인 총수중심에서 벗어나 이사회 중심의 의사결정구조와 투명한 기업지배구조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