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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길 전 원내대표와 강봉균 전 정책위의장을 비롯해 조배숙, 이종걸, 조일현 등 열린우리당 의원 23명이 6일 오전 9시 20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집단 탈당을 선언했다.
김한길 전 원내대표와 강봉균 전 정책위의장을 비롯해 조배숙, 이종걸, 조일현 등 열린우리당 의원 23명이 6일 오전 9시 20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집단 탈당을 선언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주역 64괘 중의 하나인 지천태괘(地天泰卦)는 "천지가 만나고 만물이 통하는" 점괘입니다. 좋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길(吉)한 점괘입니다. 그러나 괘를 이루는 요소 중 마지막 효(爻)는 또 다른 쇠락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마지막 효는 "새들이 흩어지듯 그 세가 약화되는 것은 그 부를 이웃과 함께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믿음으로써 경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로 풀이됩니다.

뜬금없이 주역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선인(先人)들의 지혜를 통해 전환기에 선 합리적 진보세력이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 또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지천태괘가 경계하는 바는 합리적 진보세력에게 뼈아픈 교훈을 줍니다.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은 한 시대가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의제, 국민통합과 국민참여를 호소하면서 탄생했습니다. 참여정부의 집권 초기 정부에 대한 지지도는 75%가 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과거의 지지자들은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실패만이 아닌 평화민주개혁세력 전체의 몰락을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집권 이후 오만과 독선에 젖어 개혁의 정당성을 배타적으로 독점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중산층이 해체되고 서민이 극빈층으로 몰리는 상황에서 사회경제적 기본권 보장을 소홀히 했기 때문입니다. 거시지표만을 들이대며 민심을 경계하지 않았습니다. 언론 환경만을 탓하며 '선전'과 '계도'에만 치중했습니다. 지천태괘의 마지막 효처럼 나눌 줄 모르고 경계할 줄 모르다가 몰락한 것입니다.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저의 정치적 행동에 대해 많은 비판이 있습니다. 여전히 죄송스러운 마음이 쉬 가시지 않습니다. 비판 중에서 특히 정당정치와 책임정치의 실종을 지적하는 비판은 무겁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정치의 핵심이 국민생활의 안녕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저는 국민을 위한 '책임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탈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당정치'의 핵심이 국민이 원하는 바를 정치의 장에 옮기는 것이라면 저는 민의를 섬기는 '정당정치'를 하기 위해 탈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시민들이 마땅히 누려야 하는 사회경제적 기본권을 지키고 강화시키기 위해 '여당 정치인'으로 누릴 수 있는 기득권은 당연히 포기되어야 했습니다. 오로지 국민을 위한 정책경쟁을 통해 국민과 합리적 진보세력이 공생해야 한다는 목표만 있었을 뿐입니다.

'조용헌 살롱'이라는 책에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주역'의 49번째 괘는 '택화혁'(澤火革)인데, 이는 낡은 것을 부수는 것이며, '벼를 베어 방앗간에서 찧는 과정'이다. 50번째의 괘는 '정'(鼎)괘인데 창조를 의미하며 '솥단지에 쌀을 넣고 가열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51번째 괘가 '중뇌진'(重雷震)으로 '사람들에게 밥을 퍼주는 단계'를 의미한다는 내용입니다. 사람들에게 밥을 퍼주는 단계를 '새로운 정치의 시작'이라는, 친절한 해설까지 붙여놓았습니다.

국민을 위한 '책임정치', 민의를 섬기는 '정당정치'는 국민께 새로 지은 밥을 퍼주는 정치입니다. 이를 위해 '이웃과 함께' 하지 않고, 민심을 경계하지 않는 기존의 정치질서를 깨뜨려야 했습니다. 새로운 정치는 솥단지를 걸고 밥을 짓는 정치입니다. 언젠가 따뜻한 밥을 함께할 내일을 위해 지금 어렵더라도 수고로움과 봉사를 마다 하지 않는 정치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솥단지 정치'를 시작하겠습니다. 아니 '솥단지 정치'는 이제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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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영남대, 전남대 로스쿨 및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중입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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