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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과메기는 내장이 육질에 스며들어 진한 맛을 품고 있다
통과메기는 내장이 육질에 스며들어 진한 맛을 품고 있다 ⓒ 맛객

드디어 생각났다. 과메기를 처음으로 접한 날, 그날이 벌써 5~6년 전이던가. 부천 원미구청 앞에서 갈비집을 운영하던 사장님이 시커먼 꽁치 열댓 마리를 들고 왔다. 물이 질질 흐르던(지금 생각하니 지방이었다) 그걸 과메기라면서 먹으라는데, 솔직히 덜 말랐다고 생각해서 한두 마리 먹고 폐기처분 해버렸다.

그 후 과메기 사건은 잊혀지고, 밤색으로 잘 마른 베진과메기를 접하면서 '음, 이게 과메기 맛이군"이라며 음미하며 먹으러 다녔다. 베진과메기 맛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통과메기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갈비집 사장님이 가져온 게 통과메기였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맛객은 과메기라는 개념이 정립되기 전이어서 어떤 맛도 기억해낼 수 없다. 다시 한번 제대로 된 맛을 경험해보고 싶다. 본고장 사람들이 즐겼다는 그 맛. 그 오리지널 맛은 대체 어떤 맛일까?

통과메기 맛이 궁금하다

"창자까지 다 먹어요. 후루룩 빨아먹거든요. 얼마나 고소한데요. 형도 그 맛을 꼭 한번 봐야 해요."

같은 건물에 있는 후배가 몇 해 전 먹었다는 통과메기 맛 자랑을 늘어놓는다. 이거야 원, 맛 자랑이 아니라 완전 약 올리는 소리로 들린다. 생각만 해도 엄청 특색 있는 맛일 거란 예상. 맛에 대한 호기심으로 인해 더욱 더 애가 타기 시작한다. '구룡포를 사람하는 사람들의 모임' 조이태 총무에게 물어봤다.

"통과메기 내장까지 먹기도 해요?"
"내장은 안 먹죠."

응? 그럼 구룡포에선 안 먹는 내장을 후배는 먹었단 말인가. 하긴, 구룡포에는 널린 게 과메긴데 굳이 내장까지 먹었으랴 싶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구룡포에서 과메기 덕장을 운영하시는 정태현님께 물었다.

"아 그것은 말이죠. 꽁치를 구웠을 때는 내장까지 먹는 사람도 있는데요. 과메기는 거의 안 먹습니다. 간혹, 한두 사람 먹기도 합니다만 그건 음식으로 보면 안 됩니다."

통과메기는 3~4일 햇빛에 말린 베진과메기와 달리, 그늘에서 보름동안 얼었다 녹았다 를 반복하면서 자연 숙성된다
통과메기는 3~4일 햇빛에 말린 베진과메기와 달리, 그늘에서 보름동안 얼었다 녹았다 를 반복하면서 자연 숙성된다 ⓒ 맛객

통과메기는 말 그대로 통으로 한 보름여 그늘에서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자연숙성된 말린 것을 말한다. 배를 갈라 내장을 손질 후, 3~4일 말린 베진과메기에 비해 훨씬 깊은 맛을 내는 건 당연하다.

말라가는 과정에서 녹아내린 내장이 살 속으로 스며들어 고소한 맛의 농도가 짙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과메기 맛을 안다는 사람들 기준이고, 잘 접해 보지 않은 사람들이 먹기엔 쉽지 않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손질이 좀 불편할 뿐 아니라 줄줄 흘러내리는 내장을 보면 시각적으로도 별로 가까이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통과메기는 그런 지저분함 속에 먹는 맛이 있다. 통과메기는 한 겨울의 절정에 맛도 절정을 이룬다. 요즘이다. 베진과메기에 맛이 물려갈 무렵, 통과메기를 맛볼까나. 그래야 어디 가서 과메기 좀 먹어봤다고 큰소리 칠 수 있지.

통과메기는 일반적인 맛이 아니기에 대중음식점에서 먹기란 쉽지 않다. 과메기 하면 거의 모든 집들이 베진과메기만 차린다. 할 수 없이 구룡포 덕장에서 직배송을 주문했다. 짜잔~ 다음날 오전 도착한 통과메기.

자연숙성 통과메기 드디어 맛보다

가위로 머리와 꼬리를 자르고 배를 가르고 있다
가위로 머리와 꼬리를 자르고 배를 가르고 있다 ⓒ 맛객

녹은 내장은 이미 육질로 스며들어 내장이랄 것도 없다
녹은 내장은 이미 육질로 스며들어 내장이랄 것도 없다 ⓒ 맛객

날렵한 꽁치 20마리가 짚으로 엮어져 있다. 고운 은빛이 참 매끄럽다. 이것을 차가운 곳에 놔두고 생각날 때마다 마른 것부터 빼먹어야지. 통과메기는 차가운데 놔두면 열흘, 한 달도 상하지 않는다고 한다. 혹, 배가 통통하게 부어오른 게 있다면 부패 되었을 가능성이 크기에 안 먹는 게 좋다.

가위로 머리와 꼬리를 자르고 다시 배를 갈랐다. 등도 갈라 쫙 펼치니 뼈와 흐물흐물 녹다 만 내장이 줄줄 흐른다. 후배 놈이 내장을 먹었다는 얘기를 들어서인지 이것도 하나의 음식으로 보인다. 이걸 후루룩 마셨단 말이지. 살짝 맛을 보니 가루약을 먹은 듯, 씁쓰레 하다. 구운 꽁치 뱃살을 먹었을 때 혀에 감지되는 그런 씁쓰름.

손으로 껍질을 벗기니 잘 벗겨지지도 않을 뿐 아니라 살점이 너무 많이 껍질 쪽에 달라붙는다. 금세 요령이 생긴다. 광어 껍질 벗기듯 칼로 스윽 밀어가니까 수월하다. 불그스름한 육질에 반지르르한 기름기가 좔좔 흐른다. 꿀꺽~ 침 한번 삼키고.

맛객보다 먼저 통과메기를 접한 후배의 말에 의하면 아가미 아래쪽에서부터 껍질을 벗긴 후, 머리를 자르고 미역을 돌돌 말아 통째로 씹어 먹었다고 한다. 그렇게 먹는 것도 하나의 맛이겠지만 부드럽고 살살 녹는 맛이 가시 때문에 방해 받을 것 같다.

회 뜨듯, 껍질을 벗기고 있다
회 뜨듯, 껍질을 벗기고 있다 ⓒ 맛객

통과메기를 손질 후 먹기 좋게 잘라놓았다. 자르지 않고 과메기 반쪽을 들고 먹기도 한다
통과메기를 손질 후 먹기 좋게 잘라놓았다. 자르지 않고 과메기 반쪽을 들고 먹기도 한다 ⓒ 맛객

손질한 과메기를 3등분으로 잘라 접시에 놓고 몇 마리를 더 손질했다. 사과와 마늘 양파 레몬을 갈아 만든 초장에 찍어 맛을 본다. 부드러운 식감은 마치 참치 뱃살이 입속에 들어온 듯하다. 차이라면, 참치뱃살이 살살 녹는다면 과메기는 쩐득 쩐득 이에 찰싹 달라붙는다.

땅콩버터처럼 고소한 맛

베진과메기와 통과메기, 육질의 느낌이 서로 다르다. 식감은 베진과메기, 진한 맛은 통과메기가 낫다
베진과메기와 통과메기, 육질의 느낌이 서로 다르다. 식감은 베진과메기, 진한 맛은 통과메기가 낫다 ⓒ 맛객

육질에 기름기가 좔좔 흐른다
육질에 기름기가 좔좔 흐른다 ⓒ 맛객

내장이 고스란히 살 속으로 스며든 까닭에 깊고도 깊은 맛과 함께 고소함이 넘쳐난다. 마치 땅콩버터 한 수저 떠먹는 느낌이다. 좀더 과장해 볼까? 참기름과 향기 빼고 맞장 뜨면 뒤지지 않겠다. 베진과메기보다 물릉한 육질로 인해 비릴 거란 예상도 비켜간다.

생선이란 손을 타면 탈수록 비린내가 강해진다. 비린내는 열이 가해지면 높아지기 때문이다. 베진과메기는 재빠르게 손질한다 해도 한번 손을 탄데다 햇빛에 의해 또 다시 열이 가해지니 아무래도 통과메기보다 비린내가 날 수밖에 없다.

이번엔 참기름과 간 마늘 넣은 된장에 찍어먹어 본다. 초장에 먹을 때보다 순간적인 맛은 떨어지지만 씹을수록 살아나는 구수한 맛은 배로 뛰어나다. 뒤에 남는 구수한 감칠맛도 좋다. 초장은 과메기와 힘을 합쳐 시너지효과를 일으킨 맛이라면, 된장은 과메기가 맛의 주체가 되는데 보조역할만 할 뿐이다. 재료 본연의 맛을 보고자 한다면 초장보다 된장이 좋다는 얘기다.

조금 더 색다르게 작년에 담근 김장김치와 함께 먹어본다. 마치 삶은 돼지고기를 묵은지와 함께 먹는 맛이다. 돼지의 지방이 우리 몸의 온도에서 녹을 정도로 불포화지방산에 가깝고, 꽁치 지방도 굳지 않은 불포화 지방산이라 비슷한 맛인가 보다. 함께 먹는 사람들도 이구동성으로 통과메기 손을 들어준다. 다만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씹는 맛은 베진과메기가 낫다.

점차 사라지는 토속음식, 먹거리의 위기

잘 익은 김장김치와 함께 먹는 맛도 특별하다
잘 익은 김장김치와 함께 먹는 맛도 특별하다 ⓒ 맛객

현재 우리의 토속음식은 위기다. 명맥도 끊어지고 있고 고유한 맛은 도시인의 입맛에 맞춰 특색을 잃어가고 있다. 도시에서 토속음식이란 간판 달고 음식 내는 집을 보시라. 무늬만 토속음식일 뿐, 퓨전스런 음식이라 불러도 할 말 없을 정도다.

몇 해 전 강남 어느 사람 많은 전라도 토속음식점에서 맛 본 고등어묵은지조림은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 묵은지의 깊은 맛은 온데간데없고, 달디 달기만한 음식. 세상에 초콜릿도 아니면서 단맛이 맛의 중심이라니. 이런 음식이 난무하고 그걸 찾는 사람들이 넘치는 현실 앞에서 토속음식 운운하는 건 공허한 메아리와 무엇이 다를까.

하지만 먹거리의 위기는 토속음식을 멀리 하면서부터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토속음식은 하나같이 자연에서 재료를 얻는다. 뿐만 아니라 시간과 세월이 맛을 만들어낸다. 정성이 가득하단 얘기다. 가공식품을 이용해 즉석에서 뚝딱 만든 맛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편리한 맛만 추구하고 철학 없는 입맛만 세상에 넘친다면 통과메기조차 통조림으로 시판될지도 모르는 일. 그런 일은 없기를 바란다. 지금처럼 음식이 사람의 입맛을 따라가지 말고, 사람이 음식에 맞춰간다면 토속음식은 살아나리라 믿는다. 물론 먹을거리도 더욱 안전해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메기가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게 되기를 바래본다. 우리 토속음식 아닌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주문정보는 blog.daum.net/cartoonist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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