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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늦은 나이지만 대학원 진학을 할까 고민 중이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시민운동 위기론이 확산되더니만, 바야흐로 활동가의 전문성이 없으면 인정해주기 힘들다는 상황이 찾아온 듯하고, 제도교육이 인정하는 '라이센스'가 전문성의 잣대가 되어버린 세태 때문에 머뭇거리다가는 이판에서도 뒤쳐지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뒤꼭지를 불안하게 하기도 한다.
노골적으로 내걸린 대학의 신세
@BRI@한때 현장을 떠나 대학원을 찾아가는 것이 민중에 대한 배신으로 읽혀지는 바람에 진학을 하지 않는 것이 하나의 징표처럼 비쳐지던 시절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운동의 전문성이 필요하다면, 그래서 지속적으로 사회운동에 기여할 수 있고, 보다 충실한 삶이 가능하다면 나이 따질 것 없이 그 이상 노력이라도 못할 것이 없다. 다만 시류에 연연하려 가방끈 길게 하려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못내 의심스러워 줄곧 마음을 결정하지 못하다 학교를 찾아갔다.
"도서관이 경쟁력이다!"
중앙도서관 꼭대기를 가득 채운 글귀가 어떤 계시처럼 선명히 눈에 들어왔다.
사실, 학교 다닐 때부터 도서관과 담을 쌓은지라 도서관이 경쟁력인지 아닌지 나는 잘 모른다. 오히려 내가 다녔던 학교 중앙도서관은 교문 바로 옆에 있어 허구헌날 최루탄에 몸살을 앓았고 나도 적잖이 기여를 한 사실이 있어 늘 미안할 따름이다. 그래서 지금도 그 앞을 지날 때면 괜히 주눅들기도 한다.
정녕 나는 요즘 20여 년 전 사회는 넓고 풍부하며 내 진로 또한 참으로 다양해서 도서관에서 불을 밝히는 것도 당연하다는 점을 인정하기보다 군사정권의 반대편에서만 도서관 계단과 광장을 이해하려 했던 짧은 시야를 회한으로 바라보려 했다.
어쩌면 한때 나는 '시장' '경쟁력' '효율성' 등과 같은 용어들에 대해 깊이 이해하지 못하면서 편협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는지 모른다. 더구나 이미 세상은 삶을 꾸려가는 데 경쟁력이 매우 중요하다는 교훈이 평범하게 다가올 만큼 한참이나 바뀌어 있지 않은가.
나는 연구와 인재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대학이 비판적 지식인을 양성하는 것 못지않게 사회가 지탱 할 수 있는 훈련받은 인재를 배출하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시장효율성을 다른 가치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시대 추세에 부응하는 것이고, 지방대학이라는 불리한 조건과 사회적 멍에를 외면하고 한가롭게 "도서관은 상아탑이다"라고 여유를 부리는 것이 사치 아니냐는 절박한 주장을 반대할 만큼 물정 모르지는 않다.
무엇보다 사회가 시장중심으로 급격히 재편되고 정부가 교육을 '산업'으로 바라보며 경쟁으로 내몰고 있는데 일개 지방 국립대가 어쩌지 못한다는 것쯤은 이미 눈치 채고 있다. 그렇지만 오래 전에 땅에 떨어진 대학의 신세를 꼭 그렇게 구호로 내걸어 확인해야만 하는지는 궁금하다.
또한 성인이 된 학생들을 경쟁력의 대상으로만 여기고 학교가 정한 규범의 틀 안에 가두어 놓고 통제하면 '경쟁력'이 높아질까 하는 의심도 든다. 사회와 국가가 대학에게 기업형 인간만을 뽑아내기를 원하는 것이 또 다른 획일주의는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 우리는 경쟁력을 이렇게밖에 이해를 못할까 하는 회의가 자꾸 고개를 치민다.
대학까지 '획일주의' 조장해서야
내가 과문한 탓에 '글로벌 스탠다드'의 원조인 미국의 유명한 대학들이 도서관에 펼침막을 걸어두고 오로지 기업형 인간을 찍어내는 일에만 몰두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회의 다양한 가치를 접하게 하고 타자에 대한 연대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교육하는 것이 경쟁력의 다른 측면을 키우는 것 이라는 점만은 시민의 상식으로도 쉽게 이해가 된다.
내 배움의 짧음이 의심을 억누르려 하지만 반 시장적인 선입견과 유전자가 몸속 깊이 뿌리박혔는지 세상 돌아가는 사정과는 동떨어진, 구닥다리 양심의 소리가 자꾸 나를 괴롭힌다.
아주 오래전 도서관에서 밧줄에 의존해 시위를 하며 외쳐대던 절규가 낯익은 양심의 울림이 되어 그 때처럼 다시 내 영혼을 흔들어 깨우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유정배 국장은 '참여와 자치를 위한 춘천시민연대'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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