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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수정 장편소설 <해월 1,2>
ⓒ 이종찬
아~ 해월, 우리 겨레와 이 세상의 위대한 지도자

1894년, 녹두장군 전봉준이 일으킨 동학농민혁명에 호응하여 10만 병력을 일으켰다가 원주에서 체포되어 억울하게 처형된 동학 2세 교조 해월 최시형(崔時亨, 1827~1898).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일자무식 까막눈으로 동학에 입도해 2년 만에 법통을 이어받아 제대로 된 교당 하나 없이 수십만의 동학조직을 이끈 해월 최시형.

40여 년을 하루도 쉴 틈 없이 도망다니며 새끼를 꼬고 나무를 심으면서도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써낸 우리 겨레의 위대한 지도자. 양반, 상놈으로 구분된 계급과 남녀노소의 차별을 없애고,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거룩한 하늘이라고 선언한 종교인이자 뛰어난 사상가.

늘상 쫓기는 삶 속에서도 제자가 옥에 들어가면 자신도 이불을 덮지 않고 냉방에서 잠을 잤던 실천가. 탐관오리의 숙청,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며 이 땅에서 우리 겨레가 자주적으로 살아가야 할 길을 활짝 열었고, 세계 인류가 어떻게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가를 조목조목 일러준 선구자.

예수, 석가모니, 마하트마 간디에 비유되는, 우리 겨레가 낳은 위대한 지도자 해월 최시형 선생의 거룩했던 삶과 탁월한 사상을 낱낱이 그려낸 장편소설이 나와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작가 허수정(44)이 이번에 펴낸 <해월 1-그대가 하늘이오>와 <해월 2-밥이 하늘이오>가 그것.

이제 해월의 사상을 주춧돌로 삼아 행동으로 옮겨야 할 때

"사람이 살아가면서 무언가의 행위를 한다는 건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거대담론이 생산되는 이유도 다를 바 없습니다./ 일백 년 전의 해월도 그러했을 것이라고 감히 상상합니다. 표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종국의 염원은 자신과 이웃의 행복이었다고 믿습니다" - '작가의 글' 몇 토막

작가 허수정은 장편소설 <해월 1,2>를 통해 지금으로부터 1백여 년 앞, '지행의 합일, 영성과 삶의 조화'를 통해 후천개벽의 이치를 조목조목 밝힌 해월의 큰 발자취를 따라간다. 그리고 제대로 된 교당 하나 없는 무형의 동학조직을 통해 권력을 억누르고, 바람 앞의 등불 같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는 해월의 열린 사상을 엿본다.

지지리도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부모를 여의고 제지소에서 일을 하는 한 사람으로서의 해월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양반의 착취에 울분을 금치 못하는 동지였던 흥선대원군 이하응과 해월은 언제부터 왜 서로 다른 길을 걸었을까. 해월은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에게 무슨 도를 이어받았으며, 왜 처형당할 수밖에 없었는가.

작가 허수정은 "근현대사를 통틀어 그만큼 영성과 삶을 조화시키며 산 인물은 없을 듯하다"고 말한다. 이어 그는 "지행의 합일을 그처럼 완벽하게 이룬 인물은 찾기 어려우며, 이제 우리는 그의 사상을 주춧돌로 삼아 행동으로 옮겨야 할 때"라며, "우리 겨레가 낳은 위대한 영혼을 우리가 기억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덧붙였다.

"새 임금이 옥좌에 앉았다고 해도 세상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 해월 최시형 선생
ⓒ 도솔오두막
"이런 세상이라면 글자를 알아서 무엇하랴 싶었다. 어차피 삶이 나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새 임금이 옥좌에 앉았다고 해도 세상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느는 것은 한숨뿐이었다./ 그런 생각이 꼬리를 물고 있노라니 다시 착찹해졌다. 경상(해월)으로서는 울적한 심사를 풀려고 산에 올라왔건만 결국 무거운 상념을 떨치지 못했다.

문득 이웃집에 사는 정한철이 생각났다. 어제 관아에 천주쟁이라고 해서 끌려갔었다. 말로만 듣던 천주쟁이를 처음 본 셈이었다. 많이 놀라웠다. 사람 좋은 정한철이 조상의 제사도 팽개치는 천주학에 깊이 빠져 있었다니. 더욱이 그것이 죽어서 극락에 가기 위해서란다. 아무리 극락에 가기 위해서라지만 조상도 나 몰라라 하다니." -1권, 46~7쪽 '만남' 몇 토막


이 소설은 제지소에서 일하는 청년 경상(해월 최시형의 본명)이 밀린 종이값을 받기 위해 경상도에 있는 기세등등한 유림의 흥해서원을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초라한 행색을 한 경상은 흥해서원 대문 앞에 멍석조차 깔지 않은 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고, 심상치 않은 광경에 사람들이 슬금슬금 몰려든다.

그때 조선 땅 곳곳을 떠돌던 청년 이하응(흥선대원군)이 흥해서원 앞을 지나다 이 모습을 보게 된다. 흥선대원군과 해월의 첫 만남은 그렇게 이루어지고, 첫 만남에서는 흥선대원군과 해월은 양반의 수탈에 맞서는 동지가 된다. 하지만 왕족과 평민이라는 신분의 차이는 둘을 서로 다른 길로 걷게 만들고...

반상의 차이는 인습일 뿐이다

"흥, 아무리 시대가 변해 간다 하나 자네 같은 아랫것이 나와 대좌한다는 자체가 하늘의 섭리를 거스르고 있다는 점만은 명심하게. 하기야 옛날에도 자넨 그랬었지. 사교의 교주가 될 만도 하이. 그러니 겁이 없는 게지."
"하늘의 섭리를 어떻게 받아들이냐 하는 문제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요."

"여전히 건방지군. 감히 훈계하려 하다니! 내 마음만 먹으면 지금 이 자리에서 자넬 포박할 수도 있어. 아직까진 수배중이 아니던가? 천방지축 날뛰지 말게. 감히 양반에게 말이야."
"반상의 차이야 인습일 뿐입니다. 나리나 저나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세상을 살아가야 할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모두가 다 귀한 존재들이지요." -2권, 242쪽 '무력은 길이 아니다' 몇 토막


게다가 이때 경상이 만난 흥해서원의 주인 김하원은 평생 해월의 뒤를 쫓아다니며, 해월이 이끄는 동학 교도들을 괴롭히는 인물로 그려진다. 해월이 고향을 떠나 동학에 입도하게 되는 것이나 김하원이 끝없이 해월의 뒤를 밟으며 동학을 와해시키는 과정도 어쩌면 해월과 김하원과의 첫 악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해월> 제2권 '밥이 하늘이오'는 동학의 창시자 수운 최제우가 참수 당한 뒤 2대 교조를 맡은 해월 최시형이 수배 중에서도 전국 곳곳을 누비며 펼치는 고된 포교활동이 그려진다. 이어 해월 최시형의 가르침을 받는 3대 교조 손병희와 전국 10만 동학 교도들이 동학농민전쟁에 참여하게 되는데...

겨레를 하늘처럼 섬기는 것이 곧 행복이자 개벽

"그런데 말이지, 자네는 여전히 열일곱 살이야. 허허허, 나는 늙어버렸다네. 허허허..."

크게 웃어대던 이하응의 뺨에 눈물이 떨어졌다. 흥해서원에서 호통치던 청년 선비의 모습이 아련하게 겹쳐졌다./ 이하응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몸조심하게나. 관군과 일본군이 도호가 바다와 달인 자네를, 불멸 같은 자네를 잡으려 눈에 불을 켜고 있으이." - 2권, 341~342쪽 '바다와 달' 몇 토막


▲ 작가 허수정
ⓒ 허수정
<해월 1,2>에는 우리 겨레가 낳은 위대한 사상가이자 종교 지도자 해월 최시형 선생의 고단한 삶과 탁월한 사상이 고스란이 담겨 있다. 작가 허수정은 해월 최시형을 통해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양극화 현상과 한미FTA 등으로 나라 안팎으로 혼란스러운 우리 시대의 행복과 개벽의 해법을 찾는다. 그 해법은 곧 겨레를 하늘처럼 섬기는 데 있다.

무위당 장일순은 해월 최시형 선생에 대해 "예수님이나 석가모니나 다 거룩한 모범이지만 해월 선생은 바로 우리 지척에서 삶의 가장 거룩한 모범을 보여주고 가셨다"고 말했으며, 도올 김용옥은 "내 인생에서 해월 이상의 위대한 분은 보지 못했다, 마하트마 간디보다 더 위대한 분이 해월 선생"이라고 평했다.

작가 허수정은 1963년 부산에서 태어나 1989년 <실천문학> 겨울호에 단편소설 '구사대와 봉투'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으로 <어느 날 내가 살해되다> <데 포르마시옹> <세라피네의 노래>가 있으며, 장편소설로는 <바늘귀에 갇힌 낙타> <필름느와르처럼> <8월의 크리스마스> 등이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해월 1 - 그대가 하늘이오

허수정 지음, 시골생활(도솔)(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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