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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님 생신축하 상을 같이 받으신 아버지.
마나님 생신축하 상을 같이 받으신 아버지. ⓒ 조명자
마나님 성화에 양복에 공작 깃털까지 꽂힌 멋진 중절모 차림으로 아버지가 지팡이를 집어드셨다. 남이 보면 어디 근사한 데 초대라도 받은 줄 알겠지만 마나님 명령대로 점심을 위해 천안까지 가시기 위한 차림새다. 같이 갈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천안 구경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점심 한 끼 때우기 위해 그 먼 길을 나서다니. 걸음걸이조차 어눌한 아버지 뒷모습이 유난히 처량해 보였다.

아버지를 바라보는 딸의 눈초리가 마음에 걸리셨던지 엄마가 재빠르게 사족을 다셨다.

"느이 아부진 게으른 양반이라 억지로 내쫓지 않으면 꼼짝할 생각을 안 한다니깐. 그래서 내가 일부로 천안 가시라고 한다. 요 가까운 데서 홀짝 잡숫고 들어오면 그게 어디 운동이 되냐? 천안까지 가면 오며 가며 운동도 되고 바람도 쐬고 하루 반나절 나들이론 거기만 한 곳이 없지."

마나님과 큰딸 앞에서 어린 아이 같이 바이바이까지 하며 현관문을 나서는 아버지. 하긴 얼마나 다행인가. 처자식 손 안 빌리고 당신 스스로 맛 기행 다니실 수 있다는 것이. 아버지보다 더 몸이 불편하셔서, 몸이 성하더라도 맛난 것 마음대로 사 잡수실 돈이 부족해서 오늘도 빈집에 홀로 남은 할아버지들이 또 얼마나 많으시겠는가.

나이 들수록 공동체 생활에 익숙한 할머니들. 노인정에 출퇴근하며 같이 밥 해먹고, 같이 나들이하고. 오늘은 외식하고 내일은 어디 견학 가고 또 시시때때로 순진한 할머니들 꼬셔 온천이다, 선물이다 떠안기며 고가의 엉터리 물건 파는 사기꾼들 찾아다니는 것까지. 매일 심심할 새 없이 꽉 짜인 일정표가 있는 이가 할머니들이다.

반면에 오라는 곳도, 갈 곳도 없는 쓸쓸한 할아버지들, 이 양반들의 노후는 정말 외롭고도 지루한 나날일 것 같다.

노인정 시설과 최소한의 운영경비가 보조되는 지금의 복지수준만 해도 감지덕지지만 하나 더 배려한다면 할아버지를 위한 도우미 제도가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노인정에서 점심 준비해 주고 간단한 청소를 도맡아 주는 도우미가 있다면 지금처럼 할아버지들이 길바닥에서 우왕좌왕 안 하셔도 될 것 같건만.

옛말에 홀어미는 은이 서 말이고 홀아비는 이가 서 말이라더니 연세 드신 할아버지들의 외로움을 생각하면 딱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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