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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저항세력에게 공격당해 불타고 있는 미군 험비 차량.
이라크 저항세력에게 공격당해 불타고 있는 미군 험비 차량. ⓒ 연합=AP

일요일인 지난 11일 이라크 바그다드에 있는 미군 당국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런데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촬영과 녹음이 금지됐다. 브리핑을 하는 사람들의 신분도 익명을 전제로 했다. 미군 당국은 기자들에게 파워포인트로 만든 슬라이드를 보여줬다.

내용은 시아파 국가인 이란이 이라크 안의 시아파 무장 세력들에게 정밀한 무기를 공급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브리핑에서 한 미군 장교는 "이란의 최고위급 수준의 지도자들이 이라크의 시아파 저항세력들에게 장갑을 관통할 수 있는 아주 정밀한 도로 매설용 폭탄을 공급하고 있다"며 "지난 2004년 6월 이후 이 무기 때문에 미군 170명이 사망하고 620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비난했다.

이란의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과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 지도자를 거명한 것이다.

미군 당국은 이란이 공급했다는 최신 무기를 EFP(explosively formed penetrators·폭발형 관통체)라고 불렀다. AP통신에 따르면 파워포인트 자료에 나타난 EFP는 길이 25.4㎝, 직경 15.24㎝ 정도의 파이프였다. EFP 안에는 어른 주먹만한 크기의 구리 구슬이 들어있는데 그 위력이 미군 M1-A1 에이브럼즈 탱크의 장갑을 관통할 수 있을 정도였다.

에이브럼즈 탱크는 장갑이 워낙 두꺼워 최신형 대(對)전차 미사일만이 파괴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AP통신 기사에 등장한 한 미군 장교는 "보통의 도로매설 폭탄이 권총 수준이라면 EFP는 소총 수준"이라며 "터지면 앞에 있는 모든 것을 쓸어버린다, 장갑의 한 쪽면으로 뚫고 들어가 반대 쪽으로 나온다"고 말했다.

이라크 저항세력이 기존에 사용했던 도로 매설 폭탄은 155㎜ 곡사포탄이나 120㎜ 박격포탄, 또는 TNT 등을 이용한 것으로 탱크 장갑을 관통할 정도는 아니었다. 미군 당국은 EFP는 이라크 안에서는 만들 수 없으며 제작 공정을 추적해본 결과 이란이었다고 주장했다.

EFP는 대단히 정밀한 금속 가공기술과 장비를 필요로 하는데 이라크 안에서는 이를 구할 수 없지만 레바논에서는 가능하다. 레바논은 이란이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는 헤즈볼라가 지배하는 곳이다.

이날 브리핑에서 미군 당국은 이란이 만들거나 공급했다는 TNT·박격포탄·대전차 로켓포인 RPG-7·휴대용 대공 미사일·도로매설 폭탄을 작동시키는 적외선 장비 등을 공개했다.

"이라크 공격 빌미를 만들던 방식과 똑같다"

미군 당국에 따르면 EFP 등의 무기를 이라크에 공급하는 쪽은 이란의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하메네이 휘하에 있는 혁명수비대와 혁명수비대의 산하 부대인 콰드 여단이다. 지난 1월 이라크 북부 아르빌에서 미군은 6명의 이란인을 체포했다.

이 가운데 한 명이 모신 치자리라는 사람이었는데 그가 콰드 여단의 작전 사령관이다는 것이다. 치자리는 10개월간 행방이 모연했는데 이라크에 갑자기 나타났다. EFP는 반미 시아파 군사조직인 마흐디 여단 안에 있는 이란 협력자들의 손을 거쳐 아말라와 바스라 등 이란과의 국경지대를 통해 이라크에 반입된다는 게 미군 당국의 추정이다.

이날 미군 당국이 심혈을 기울여 브리핑을 했지만 언론은 아직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특히 미 민주당 의원들은 시큰둥하다.

지난 2003년 미국은 이라크 공격 전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고 발표했고 당시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유엔 연설에서도 이를 강조했다. 그러나 결국 아무 근거가 없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크리스토퍼 도드 미 상원 의원은 "부시 행정부가 이란을 공격하기 위한 명분을 만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게 우려스럽다. 그게 바로 우리가 '손질된 문서'에 따라 이라크라는 혼란 속으로 빠져들어갔던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론 와이든 상원 의원은 "부시 행정부가 지금 이란을 두들기는 방식은 과거 이라크를 두들겼던 방식과 똑같다"고 비난했다.

예를 들어 미국은 이라크가 고강도 알루미늄관을 수입했다는 사실을 들어 사담 후세인이 핵무기 제조를 위한 원심분리기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나중에 이 알루미늄관은 포탄 제조용으로 밝혀졌다.

과거 실패한 전례가 있는데 왜 미 정부가 이렇게 나설까?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최신호는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이란-페르시아만국 힐러리 만 전 국장의 말을 인용해 "부시 정부는 이란에 대한 무력 공격 빌미를 잡기 위해 이란에 도발적인 언동을 계속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드러지 리포트>는 "미국은 이란이 끝내 핵프그램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이란 핵시설 공습을 감행할 것이며, 이르면 오는 5월 이전에 실제 결행에 옮길 수도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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