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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이형모 전 사장의 성희롱에서 촉발된 시민의신문 경영공백 사태가 최근 이사회 전원이 사퇴하면서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이 전 사장이 시민의신문 편집국장, 노조위원장, 기자 등 6명을 상대로 1억8천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고 지난 1월15일자를 끝으로 4주째 신문 발행이 중단되는 등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이형모 전 사장의 성희롱에서 촉발된 시민의신문 경영공백 사태가 최근 이사회 전원이 사퇴하면서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이 전 사장이 시민의신문 편집국장, 노조위원장, 기자 등 6명을 상대로 1억8천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고 지난 1월15일자를 끝으로 4주째 신문 발행이 중단되는 등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시사저널> 거리 문화제(1월 19일)에 가보니 '시사모'가 두 개더라. 하나는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고, 다른 하나는 '<시민의 신문>을 외면한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이준희 <시민의 신문> 노조위원장은 텅 빈 편집국을 둘러보며 허탈하게 말했다. 주간지 마감을 맞추기 위해 전화벨 소리와 컴퓨터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가득해야 할 목요일(8일) 오후 편집국은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소리만이 냉기를 대신하고 있었다.

<시사저널> 기자들은 사주의 삼성 기사 삭제 사건으로 편집국이 폐쇄되고 갈 곳이 없어지는 파행을 거듭했지만, <시민의 신문>에 비하면 '등 따신' 경우라 할 수 있다.

<시사저널>은 독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임을 만들어 거리 문화제를 열고, 국제기자연맹(IFJ)까지 합세해 편집권 독립 투쟁에 힘을 보태고 있는 반면 <시민의 신문>은 편집국이 열려있음에도 취재기자 21명 중 7명만이 남아있는 상태다.

지난 1993년 창간 이후 한국 시민운동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과거의 업적에 비해 <시민의 신문>의 오늘은 참담했다.

얽힌 실타래... <시민의 신문> 파행 전말

<시민의 신문>이 이 같은 파행을 겪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지난해 9월 발생한 이형모 전 사장의 성추행 사건에 있다.

이 전 사장이 자신이 대표로 있는 한 시민단체의 여성 간사를 수 차례 성희롱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고, <시민의 신문> 편집국은 이 사건을 인터넷판과 주간지에 상세히 보도했다. 이 전 사장은 "개인의 잘못으로 시민운동 전체가 '도매금'으로 매도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히며 사직함은 물론 관여하고 있는 여러 시민단체의 직함에서도 물러날 뜻을 피력한 바 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오래 가지 않았다. 석달 뒤인 12월 이 전 사장이 임시주주총회장에 최대주주 자격으로 참석해 신임 사장 후보인 남영진 전 한국방송광고공사 감사 임용을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사주에서는 물러났지만, 최대 주주 자격은 고수한 셈이다.

이 전 사장에 대항해 '전열'을 정비해야 했던 시민의 신문 이사회와 기자들은 되레 서로를 원망하는 상황이 됐다. 사주의 성희롱 사건 대처를 둘러싸고 서로 엇갈린 견해를 가졌던 것이다. 기자들은 "여성 인권 보호와 성폭력 추방의지를 사수하겠다"며 이 전 사장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반면, 이사회는 "<시민의 신문>을 존속시켜야 한다"며 사건의 확대를 원치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이 전 사장이 사퇴한 이후 회사의 부채가 5억원이 넘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이같은 부실을 해결할만한 새로운 사주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 전 사장은 또 성희롱 사건을 보도한 기자들을 상대로 1억8000만원의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1월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시민운동연합 등 27개 시민단체는 이번 사태의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만드는 등 안팎의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시민의 신문은 683호(1월 15일∼21일자) 이후 발행이 중단됐다.

지난 6일에는 송보경 이사회 임시이사 등 이사 전원(10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판단했다"며 사퇴했다.

이사회와 기자들, 성희롱을 둘러싼 엇갈린 시각

이준희 <시민의신문> 노조위원장
이준희 <시민의신문> 노조위원장 ⓒ 오마이뉴스 남소연
이준희 노조위원장은 성희롱 사건 보도에 대해 "기사가 나가기 전후에 피해자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며 "사주라고 해도, 10여개 이상의 시민단체 대표이자 언론사 사장이 저지른 성희롱 사건이었기 때문에 보도에 예외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 노조위원장은 이사회에 대해 "회사를 위한다는 본심은 믿지만, 성희롱 사건에 대해 처음부터 시각이 달랐다"며 "대다수는 '그 정도가 문제가 되는 것이냐'고 물었고, 심지어 사주가 사퇴할만한 사항도 아니라는 주장도 있었다"고 불쾌한 심정을 드러냈다.

이어 "우리가 보도하기 전인 지난해 9월 이미 일부 이사들이 배석한 가운데 피해 여성과 합의가 이뤄졌었다"며 "이 전 사장과의 개인적 친분으로 인한 성희롱 사건 감싸기가 아니고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사회를 향해 "NGO(비정부기구) 마피아"라고 강한 어조로 비난하기도 했다.

그는 특히 여성연합 공동대표인 정현백 성균관대 교수를 지목하며 "성희롱 사건에 엄중하고 원칙적으로 대처해야 할 여성단체 대표가 어떻게 이번 사건을 이렇게 처리할 수 있느냐"고 따져 물었다.

정현백 교수는 이에 대해 "(피해 여성과 이 전 사장간의 합의를 두고) 각각 속한 그룹과 세대별로 입장을 달리해 볼 수 있다"며 "이사회 측면에서는 이번 사건에 대해 입장을 내기보다는 어떻게 <시민의 신문>을 존속시킬지에 중점을 뒀다"고 해명했다.

또 정 교수는 "이번 사건은 이 전 사장 개인에 대한 타격이 아니라 시민운동의 도덕성에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며 "올해는 대선까지 있는 해인데, 이 사건이 자꾸 쟁점화되면 그 부분(시민운동)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사회를 향한 노조의 비난에 대해 "우리도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할만큼 했다, 일방적으로 해석하지 말아달라"며 "이 전 사장이 사과하고,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것도 이사회의 끈질긴 설득 덕분"이라고 항변했다.

<시민의 신문>은 시끄러운데 시민사회는 잠잠

'시민단체 공동신문'이란 수식어를 달고 있는 <시민의 신문>이 이렇듯 노조와 이사회간 공방전으로 시끄럽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민사회는 조용하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녹색연합, 참여연대 등 60개 시민단체가 <시민의 신문> 연대협력단체이지만 공대위 참석 단체는 그 절반인 30여개에 불과하다.

이번 사태에 대해 입장을 표명한 단체도 여성민우회를 포함한 여성단체들과 일부 인권단체 뿐이다.

<시민의 신문> 관계자는 이에 대해 "모든 시민단체가 주인이라는 뜻은 곧 '주인이 없다'는 뜻"이라며 "누구도 주인 의식을 갖고 <시민의 신문>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있다"고 시민단체의 무관심을 질타했다.

<시민의 신문>은 이 전 사장이 직원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2월 28일), 밀린 급여를 포함한 부채 등 해결해야 할 현안이 산적해있지만 그 앞날은 막막하기만 하다.

지난해 9월 이형모 전 사장의 성희롱에서 촉발된 시민의신문 경영공백 사태가 최근 이사회 전원이 사퇴하면서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이 전 사장이 시민의신문 편집국장, 노조위원장, 기자 등 6명을 상대로 1억8천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고 지난 1월15일자를 끝으로 4주째 신문 발행이 중단되는 등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이형모 전 사장의 성희롱에서 촉발된 시민의신문 경영공백 사태가 최근 이사회 전원이 사퇴하면서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이 전 사장이 시민의신문 편집국장, 노조위원장, 기자 등 6명을 상대로 1억8천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고 지난 1월15일자를 끝으로 4주째 신문 발행이 중단되는 등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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