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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쑤성의 농촌 풍경입니다. 장쑤성은 차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려도 산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장쑤성의 농촌 풍경입니다. 장쑤성은 차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려도 산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 이승숙
@BRI@우리 옆집 최옥자(59) 아줌마는 나더러 늘 그랬다.

"나는 65살 될 때까지 원 없이 여행 다닐란다. 늙으면 다리에 힘 빠져서 여행 다니고 싶어도 못 다녀. 그러니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열심히 여행 다녀야지."

그 아줌마는 실제로 일 년에 두 번 이상 해외여행을 다닌다. 특별히 여유가 많아서 그리 하는 것도 아니다. 아줌마 말에 의하면 집 꾸미는 데, 옷 사는 데 돈 안 쓰고 그 돈으로 해외여행 다닌다고 했다.

아줌마는 나에게도 여행을 다니라고 권했다. 큰 돈 안 든다며 한 달에 몇 만원이라도 모아서 여행 다니라고 그랬다. 아줌마가 해주는 말을 들으면서 나는 나와는 그다지 상관없는 이야기로 치부해 버렸다. 우리 집엔 한창 공부하는 아이들이 있어서 돈 들어갈 일이 까마득한데 무슨 여행씩이나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다리에 힘 빠지면 여행도 못 다닌다

마음만 있으면 누구라도 다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시대가 되었다. 예전에 일본 여행객들이 인솔자의 인도 아래 해외를 휩쓸던 시대처럼 지금은 우리나라 여행객들이 세계 곳곳을 누비고 있다.

세계 유명 관광지에서는 한국말이 심심찮게 들려올 정도로 우리나라의 경제력이 높아졌다. 그래서 지금은 누구나 국내여행 다녀오는 기분으로 해외여행을 하는 시대다.

나도 해외여행 할 기회가 몇 번 있긴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흐지부지하게 중동무이가 되고 말았다. 구체적인 여행 계획도 없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여행을 해야겠다는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늘 유야무야 넘어가 버리곤 했다.

2006년 3월부터 <오마이뉴스>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글을 한 편 올리면 대개 1만 원 정도의 원고료를 받는다. 사실 어떻게 보면 들인 공에 비해서 원고료가 형편없이 적다. 기사 한 편을 올리기까지 들이는 시간과 공력에 비한다면 원고료는 턱없이 적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고료를 바라고 글을 쓰진 않을 것이다. 돈보다는 다른 것들, 이를테면 자기 만족감이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기사거리를 찾고 글을 쓰는 것이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돈을 바라고 글을 쓴 건 아니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돈이 꽤 모여 있었다.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고 일만 원밖에 안 되는 그 돈들이 모여서 꽤 큰돈이 되어 있었다. 지난 5월쯤에 나는 호기롭게 외쳤다.

"여보, 내가 당신 중국여행 시켜줄게. 비행기 표는 내가 책임진다."

그때 내 누적원고료는 10여만원 가까이 적립되어 있었다.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원고료가 몇 달 모이니까 제법 돈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말로만이라도 한 번 크게 인심 써본 것이었다.

벼 수매를 하는지 사람들이 모여서 볏가마를 옮기고 있었습니다. 동네를 따라서 수로가 다 있었는데, 그 수로는 지금도 유용하게 쓰이는 것 같았습니다.
벼 수매를 하는지 사람들이 모여서 볏가마를 옮기고 있었습니다. 동네를 따라서 수로가 다 있었는데, 그 수로는 지금도 유용하게 쓰이는 것 같았습니다. ⓒ 이승숙
말을 해놓고 보니까 그럴 듯했다. 글 써서 번 돈으로 중국 여행을 하면 더없이 괜찮을 것 같았다. 마음 한 편으로 늘 동경하고 있던 중국을 내가 글 쓰서 번 돈으로 여행한다니, 생각할수록 근사했고 멋있어 보였다.

"당신 비행기표 내가 끊어줄게"

지난 1월 중순 경에 중국에 살고 있는 내 외사촌 오라비로부터 연락이 왔다. 나보다 생일이 다섯 달 빠른 내 외사촌 오라비는 나랑 중학교 동창생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 둘은 사촌간이기도 하지만 친구이기도 하다.

몸속에 흐르는 피의 절반이 같기 때문인지 우리 둘은 닮은 부분이 참 많다. 서로 말을 안 해도 원하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취향도 비슷하다. 내 외사촌에게 나는 단 하나뿐인 여동생이어서 그는 항상 특별한 마음을 내게 주곤 한다.

그 전부터 우리 둘은 같이 중국여행을 하자는 말을 농담 삼아하곤 했다. 하지만 기회는 잘 오지 않았다. 때가 덜 익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시기적으로 무르익어서 그랬는지 서로 맞추지도 않았는데 중국여행을 같이 할 기회가 생겼다.

어쩌다가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오갔고 그리고 바로 일이 진행되었다. 마침 내 수중에는 여분의 돈이 있었다. 우리 부부가 아쉽지 않게 중국여행을 할 수 있을 만큼의 돈이 내겐 있었던 것이다. 그 돈은 내가 <오마이뉴스>에 글을 올려서 번 돈이었다. 그래서 여행 말이 나오자 바로 추진해 버렸다.

내 외사촌 오라비는 중국에서 오랫동안 지냈다. 석사와 박사 과정을 중국에서 다했고 지금은 장쑤성(江蘇省)의 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거의 중국 사람이 다 된 내 외사촌 오라비가 시켜주는 여행이라면 중국을 속속들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여행을 결심하자 오라비는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하나뿐인 사촌 여동생을 위한 최대한의 배려를 위해서 밤잠을 줄여가며 궁리하고 또 궁리했다.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으면서 알차게 중국을 보여주기 위해서 하나에서 열까지 준비해 나가기 시작했다.

마음을 먹을 때부터 여행은 시작된다. 우리의 여행도 시작되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월 30일부터 2월 5일까지 중국 장쑤성(江蘇省)을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대장정의 역사를 기록한 <중국의 붉은 별>이라는 책을 본 후로 저는 중국을 동경했습니다. 늘 마음 속에 담고있던 중국 땅을 이번에 밟고 다니면서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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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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