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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읍성의 정문인 진남문
해미읍성의 정문인 진남문 ⓒ 이재은
행정구역 상으로 충남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몇몇 친구와 함께 우리나라에 몇 남지 않은 읍성인 '해미읍성'을 찾았다. 제철답지 않게 촉촉히 겨울비가 내리는 가운데 성문을 지키는 두 사람의 마네킹 말고는 눈에 띄는 이가 별로 없어 고즈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BRI@올려다 본 성문 위의 문루는 측면2칸 정면3칸 팔작집이다. 이 집과 성곽이 최초로 건립된 것은 성종조 22년(1491년)인데 일제시대 때 우리나라 성곽철거 정책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원형 그대로 보존이 잘 되어있다. 외관이 화려해 보이는 것은 최근에 새로 단청을 칠했기 때문이다.

겨울비를 맞으며 성위를 산보 중인 탐방객들
겨울비를 맞으며 성위를 산보 중인 탐방객들 ⓒ 이재은
성 안쪽이 바깥의 견고한 수직 석성(石城)과는 달리 흙으로 완만하게 경사지게 축조된 연유는 유사 시에 성안의 어린이나 노약자들도 군관민 합동으로 외부에서 침입한 적과 손쉽게 전투를 하기 위하여 쌓은 전략적인 배려라 한다.

발굴 중인 유적들 - 진남문에서 내려다 본 발굴 현장이 겨울비로 인해 희미하게 보인다.
발굴 중인 유적들 - 진남문에서 내려다 본 발굴 현장이 겨울비로 인해 희미하게 보인다. ⓒ 이재은

최근에 새로 칠한 진남문의 단청
최근에 새로 칠한 진남문의 단청 ⓒ 이재은

탱자성이라 불렸던 성의 내부
탱자성이라 불렸던 성의 내부 ⓒ 이재은
축조 당시에는 성의 바깥, 즉 해자 주변에 탱자나무를 빽빽하게 심어 외적을 막았다고 하는데서 유래하여 탱자성이라고 했는데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산성과는 달리 평평한 지대에 돌을 쌓아 만든 평지성으로 유명하다.

진남문 옆의 치(雉)와 치루
진남문 옆의 치(雉)와 치루 ⓒ 이재은
또한 이 성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3년 전인 1579년에 이순신 장군께서 훈련원 봉사로 잠깐 근무한 적이 있었고 1866년 대원군의 병인박해 때에는 1000명이 넘는 천주교 신자들이 이 곳에서 목숨을 잃기도 한 성지(聖地)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 가는 길 : 서해안고속도로 - 해미IC - 해미읍 - 해미읍성(해미IC에서 1km)

- 이 기사는 SBS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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