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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라큐즈 대학 정치학과 한종우 교수가 보내온 글입니다. <편집자주>
베이징의 6자회담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면서 북한 핵을 둘러싼 국내외 정세가 급류를 탈 전망이다. 그러나 당장 북한 핵이 제거되고 통일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통일에 이르기까지 넘어야 할 산과 건너야 할 강은 너무도 많다. 멀리 보는 눈과 깊은 호흡이 필요하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 내부에 있지 않나 싶다. 외국에서 매체를 통해 듣던 것에 비해 방문하여 실제로 전문가나 일반인으로부터 직접듣는 대북정책에 대한 우리사회의 양극화는 훨씬 더 심각한 것 같다.

절반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통치

▲ 지난 2002년 대통령 선거일이었던 12월 19일 밤 당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와 부인 권양숙씨, 유시민 개혁국민정당 대표, 김원웅 의원 등이 개혁당 당사에서 만세를 부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정보통신기술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필자가 보기에 이런 양극화 이념대립 현상은 지난 대선 때 승자와 패자의 표차이가 박빙이었음에 기인한다. 거의 정확히 양분된 상황에서 나머지 반의 의사가 대북정책 수립에 통합되지 않은 결과다.

필자가 지켜본 2000년대 이후 한국과 미국의 대선결과는 놀라울 정도의 유사점을 갖고 있다. 한국에서 직선에 의한 6번의 대통령 선거의 평균 투표율은 80.5%이며 승자와 패자의 득표율 차이는 평균 6.4%P을 기록했다.

그러나 지난 2002년의 대선에선 투표율 70.8%와 득표율 차이 2.3%P를 기록하게 된다. 선거참여율이 급락하면서 전체 국민의 2.3%, 즉 총 투표자수 약 2480만명 중 불과 57만여명의 표를 더 얻은 후보가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로 정해진 것이다.

총 선거인수 약 3500여만명을 고려하면 당선자를 결정한 투표율은 고작 1.6%P에 그치고 만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정치권력의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숫자들이다.

미국 또한 예외는 아니다. 2004년 대통령 선거에서 부시는 총 2.4%P의 득표율 차이로 전 세계인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상 최고의 권력자의 자리를 차지했다. 총 투표인 1억2천여만명중 약 3백만표의 차이로 당선된 것이다. 세계 민주주의의 대명사로 불리우는 미국 역시 민주주의의 취약성의 관점에서 우리와 비교할 때 막상막하다.

이념 대립의 양극화... 공동체 신뢰기반 잃어


@BRI@이러한 상황은 다수에 의해 옹립되는 권력과 행사된 표에 대한 책임성을 근간으로 하는 민주주의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킨다. 특히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해야 하는 국면에서 정치공동체는 큰 시련을 맞게된다. 미국의 이라크 개전과 수습과정 그리고 한국의 대북정책이 그 좋은 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중대사를 해결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양분된 이념대립으로 정치공동체의 신뢰기반을 잃게되는 막대한 기회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2003년 이라크 개전 당시 미국 사회가 양분되어 있었고 후세인이 처형당한 지금 이라크전을 수습하는 미국사회가 여전히 크게 다르지 않다. 대통령과 집권엘리트에 대한 신뢰도는 사상 최저를 기록하고 있으며 이라크로부터의 철군에 대한 대책도 실종된 상황이다. 미군 이라크인 모두 포함하여 백만 가까이되는 사상자를 양산했고, 전세계에 확산된 반미감정은 후대의 미국인들이 지불해야 할 엄청난 기회비용이다.

한국은 어떠한가? 정확히 양분된 선거의 결과, 대북문제에 있어서는 단순한 이념대립의 정도가 아니라 한 공동체 내에서 서로의 존재와 생존을 부인하는 지경에 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인류 정치공동체 발전사에 있어서의 지대한 역할에도 불구하고 좌우의 이념분화와 그 지향성은 항상 상대적이고 가변적이며 권력 회귀적이다.

좌에 가깝다고 평가되는 참여정부가 신자유주의노선을 취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일방적으로 옳지않다고 비난할 근거가 우리에겐 처음부터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옳을 것이다. 오히려 이념분화와 대립은 그 결정주의적 또는 일방주의적인 경향에서 비롯되는 경직성과 소모주의적 파괴성향의 폐해를 낳는다. 대북정책에 대한 우리 사회의 양분화에 있어서 이 점이 극명해진다.

심지어는 종교까지 좌우의 유니폼을 입고 광기의 분열을 조장하고 있지 않은가? 좌우 이념대립으로 말미암아 한 때 예수는 한반도에서 새로운 이름으로까지 불리우게 되지않았던가, 빨갱이?

어느 것도 이념 대립으로는 풀 수 없다

▲ 북핵저지시민연대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방한한 지난 해 1월 19일 오후 외교통상부 청사 앞에서 UN의 대북제재를 지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햇볕정책은 반세기 동안 단절되었던 의사소통의 회복이며 신뢰형성을 위한 외통수이다. 전쟁 가능성 상존과 북한 동포들의 인권과 생존권 문제는 남북교류에 심겨진 올무이다. 그 어느 것도 소홀히 되어서는 안되는 것인데, 그 어느 것도 이념대립과 양분화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데에 동의하는가?

주위를 돌아볼자. 고질적인 주일미군기지 문제를 완전히 해결한 후 공동 미사일 방어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미일의 군사동맹은 한반도를 넘어 중국을 겨냥하고 있고, 한반도를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중국은 미국의 위성을 격추시킬 수 있는 미사일 기술을 발표하고 있으며, 과거의 영화를 회복하고자 미국이 지명한 악의 축 생존자, 이란과 북한의 우라늄 재처리 문제에 개입하는 러시아를 놓고 우리가 좌우 이념 대립으로 무엇을 해결할 수 있겠는가?

실사구시의 입장에서 대북교류의 긴 호흡을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북한과 제대로 대화하기 시작한 것은 만 6년에 지나지 않는다. 신뢰형성을 위한 우리의 호흡은 너무도 짧다못해 자살적이기조차 하다.

핵문제와 분단을 해결한 역사의 선례를 보자. 10년에 걸친 미-소간의 1, 2차 전략무기제한 협정(SALT I, II) 과정도 미 공화당의 베이커 전 국무장관이 근래의 한 청문회에서 밝혔듯이 "소련이 미국을 지구상에서 지워버리려 한 40년 동안 우리는 소련과 대화했다. 그러니 우리는 친구 뿐만 아니라 적과 대화해야 한다"는 긴 호흡속에서 이루어 낸 성과물이다.

1961년 세워진 베를린 장벽, 1963년 브란트의 동방정책 이후 동독과의 지속적인 교류와 대화가 있었고, 1970년 독일이 소련과 폴란드와 각각 체결한 실용적인 두개의 조약이 있었기에 27년 후 그 장벽을 허물 수 있었다. 실사구시와 잠수 전 고래의 긴 호흡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북핵 해결책으로 한편에서 제시되고 있는 리비아 모델도 1988년 팬암기 폭발사고 이후 지속된 대화와 퀴드 프로 쿠오(quid pro quo), 즉 상응하는 대가의 쌍무적인 교환을 전제로 하는 리비아-미국 간의 단계적 협상절차를 영국이 중재해온 끝에 형성된 신뢰 속에서 2003년 리비아의 대량살상무기 포기가 이루어진 것이다.

대화하고 교류하다보면 끊어진 허리 이어질 것

1993년 비핵확산 조약을 탈퇴한 북한이 2003년 다시 탈퇴를 선언하며 6자회담이 공전하는 듯 해도 제대로 협상한 지 10년이 채 안된 남북간의 교류가 53년 된 분단의 간극을 채우기에는 더 긴 호흡과 실용의 눈이 필요하다. 리비아 모델의 궁극적 교훈이 무엇인가? 상대국 정권교체를 포기하고 대화하라는 것 아닌가? 대화하고 교류하다 보면 분명 끊겨진 허리는 이어질 것이다.

6자회담의 성과에 일비일희해서는 안된다. 어떤 암초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지 알 수없다. 문제는 우리의 호흡이다. 통일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우리가 북한은커녕 우리끼리의 존재인정도 허락지 않는 풍토병에 허덕거리고 있음을 자각하자. 종교적이기까지 한 좌우 이념대립의 담론구조를 용도폐기하고 한반도에 던져진 원죄에 긴 호흡으로 인내하며 중단없이 도전하는 프로메테우스가 되자.

대선을 9개월여 앞두고 다시 이렇게 위험천만한 2% 승리를 위한 전선구축에 정치권이 혈안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을 국민은 주목하고 48%를 통합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 통합의 리더십을 포착하자. 그래야만 긴 호흡이 가능해질 것이다, 적어도 대북정책에 있어서는….

태그:#한종오, #시라큐스, #새비지,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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