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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 두번 쯤 찾아오는 생선장수 아줌마입니다. 이 엄동에도 하루 쉬는 날이 없답니다.
한 달에 한 두번 쯤 찾아오는 생선장수 아줌마입니다. 이 엄동에도 하루 쉬는 날이 없답니다. ⓒ 이승숙
"있수? 아무도 없수?"

바람이 많이 불어서 날이 추웠던 어제 낮이었다. 마당에서 누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흘깃 창 밖을 내다보았더니 머리에 함지를 인 생선장수 아줌마가 야트막한 우리 집 담장 안을 넘겨다보고 있었다. 이 추운 날에도 장사하러 나왔나 보다. 나는 얼른 문을 열며 아줌마를 불렀다.

"아줌마, 이 추운데도 장사하러 다니세요? 안 추우세요?"
"설 대목인데 부지런히 다녀야지. 애기엄마, 동태 포 안 뜰라오? 이거 떨이인데 싸게 줄테니 전부 다 사요."

아줌마가 이고 온 함지에는 동태 몇 마리가 누런 종이에 둘둘 말린 채 담겨 있었다. 아줌마는 내 대답도 듣지 않고 물건을 풀기 시작했다.

"이거 개 끓여 줘요. 내, 이 집 줄려고 이거 모아왔지."

"이거 싸게 줄테니까 떨이 해 줘"

아줌마는 생선 대가리랑 꽁지 같은, 팔고 남은 생선 부스러기들을 한 쪽으로 밀어주면서 개밥 줄 때 끓여주라고 했다.

"아유, 아줌마. 우린 설 쇠러 시골 내려가는데요? 그래서 동태포 안 떠도 되는데…. 그래요 아줌마, 다 주세요. 우리 애들 부쳐주지요 뭐."

함지를 이고 다닐 때 머리 위에 얹는 '따벵이'입니다.
함지를 이고 다닐 때 머리 위에 얹는 '따벵이'입니다. ⓒ 이승숙
선선하게 대답하는 내 말에 아줌마는 동태포를 뜰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아줌마는 익숙한 솜씨로 동태포를 뜨기 시작했다. 춥다고 안으로 들어와서 뜨라고 해도 그러면 집 안에 생선 냄새 난다면서 한사코 밖에서 일을 했다. 아줌마의 손을 보니 끼고 있는 면장갑이 다 젖어 있었다.

"아줌마, 손 시렵겠다. 따뜻한 커피 한 잔 타 드릴까요?"

커피 한 잔을 타다 드리고 나는 동태포를 뜨는 아줌마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아줌마, 장사한 지 오래 됐어요?"
"응, 한 삼십 년 더 됐지? 이제는 차가 많아서 이거도 재미가 없어. 차 없는 할머니들이나 찾지, 젊은 사람들은 다 차 몰고 장 보러 다니는데 누가 이고 다니는 거 사주겠어?"

대형 마트에 가면 없는 게 없는 세상인데

아닌 게 아니라 요즘은 다 차를 몰고 다니며 쇼핑을 하는 시대이다. 대형 마트에 가면 없는 게 없는 세상인데 누가 이고 다니며 파는 생선을 사주겠는가.

예전 어릴 때 일이 생각났다. 그때, 1960년대 끝에서 70년대 초반에는 물건을 이고 다니며 장사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우리 집에는 그런 사람들이 잘 찾아왔다. 우리 엄마가 재워주고 밥 먹여주는 거를 잘 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날 저물면 꼭 우리 집으로 왔다.

물기있는 생선을 만지니까 목장갑이 다 젖어 있더군요.
물기있는 생선을 만지니까 목장갑이 다 젖어 있더군요. ⓒ 이승숙
보따리장수 아줌마들은 머리에 자기 몸보다 더 큰 보퉁이들을 이고 다녔다. 목이 꺾여질 정도로 보따리들은 컸다. 그 장사꾼들은 하룻밤 자고 날이 밝아서 길 떠날 때가 되면 재워주고 밥 먹여줘서 고맙다며 작은 것이라도 하나 주고 가려고 그랬다. 그때마다 우리 엄마는 극구 손사래를 치며 그 물건들을 다시 보따리 속에 넣어주곤 했다. 힘들게 장사하는데 한 푼이라도 더 벌라고 그랬던 거 같다.

옛날 생각이 나서 아줌마에게 이것 저것 물어보았다. 아줌마는 남편을 일찍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고 혼자서 자녀 셋을 키웠다고 한다. 머리에 생선을 이고 이 동네 저 동네 발품 팔아 다니며 장사를 해서 자녀 셋을 먹이고 입혔지만 남들처럼 공부를 많이 시키지는 못했다고 한다.

"잘 키우지도 못 했어. 그냥 저들끼리 큰 거지 뭐."
"지금은 내 혼자 입이니까 그냥저냥 살아도 돼."

손끝이 뭉툭하고 손톱이 다 닳은 아줌마의 손입니다.
손끝이 뭉툭하고 손톱이 다 닳은 아줌마의 손입니다. ⓒ 이승숙
여자 혼자 몸으로 어린 자식들을 키우면서 살아왔을 아줌마의 간난신고의 세월이 안 봐도 눈에 그려졌다. 생선을 다루는 아줌마의 손을 봤다. 손가락들은 다 뭉툭했다.

"아줌마, 고생 많이 하셨네요. 사진 한 장 찍어도 돼요?"
"아유 찍지 마. 보기 싫은 거 뭐 할려고 찍을려고 그래? 예쁜 것들 찍어야지 나 같은 거 찍으면 추접스러워 안 돼. 예쁜 옷 입고 오면 그때 찍어."

사진 찍기를 마다하는 아줌마를 나는 달랬다.

여자 혼자 몸으로 세 자식 거둬 키우느라 고생한 생선 장수 아줌마

"아줌마 모습이 뭐가 추접하다고 그러세요? 열심히 사신 모습이 아름다우면 아름답지 추접하지 않아요. 자식 거두고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 많이 했어요. 그러니 마디 굵은 그 손은 오히려 자랑이면 자랑이지 부끄러운 게 아니에요."
"애기 엄마 말 들으니 그렇기도 하지만 그래도 보기 싫어. 뭐 하러 추접한 거 찍을라고 그래? 고운 것도 얼마든지 많은데."

읍내로 나가서 생선을 받아와서 또 한 차례 더 장사를 해야 한다며 총총히 일어났습니다.
읍내로 나가서 생선을 받아와서 또 한 차례 더 장사를 해야 한다며 총총히 일어났습니다. ⓒ 이승숙
아줌마는 말은 그리 하면서도 옷 매무새를 고쳐 잡는 시늉을 했다. 요새는 설 대목 밑이라서 장사가 잘 된다고 그랬다.

"설 대목이니까 잘 팔리는 거지 보통 때는 잘 안 돼. 이제 이거도 그만해야지 뭐. 그래도 차 없는 할머니들이 나를 기다리는데 그거 때문에 그만두지도 못 해."

어쩌면 집집마다 이고 다니며 파는 장사꾼으로는 이 시대의 마지막 장사꾼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편리한 시대에 누가 이고 다니며 장사를 하겠는가? 모두 다 차를 몰고 다니며 편리하게 사는 시대인데…. 아직도 발품을 팔고 다니며 한 집 한 집 대문을 두드리는 생선장수 아줌마를 보니 새삼 잊고 살아가는 옛 인정이 느껴졌다.

아줌마는 떨이 해줘서 고맙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느즈막한 점심 때였는데도 또 물건 받아와서 한 차례 더 장사를 해야겠다며 총총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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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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