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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설'이면 강원도 고향집에서는 어머니가 손수 두부를 만드신다. 어릴 적 노르스름한 두부콩이 물과 함께 가득 담긴 함지박을 보면 "드디어 설이 다가왔구나! 내일이면 두부를 만들겠네" 생각하며 두부 만드는 구경거리에 마음이 설레기도 하였다.

수원에 살고 있는 내가 고향집을 일찍 찾는 이유도 두부 만드는 연례행사를 설빔처럼 차려입고 싶어서이다.

장작불하고 며느리는 쑤셔대는 게 아녀!

▲ 물에 불린 콩을 갈아놓은 반죽.. 생콩내음이 밤꽃향처럼 담백하다.
ⓒ 이철원
두부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콩을 하루정도 물에 불려 맷돌로 갈아준다. 콩을 갈을 때는 맷돌로 갈아야 알갱이가 굵어서 두부의 부산물인 비지 씹히는 맛이 제법인데 요즘에는 방앗간에서도 굵게 갈아준다고 한다. 가정에서 소량을 만들 때는 믹서기를 사용하기도 한다.

▲ 끓는 물에 갈은콩 넣기.. 조금씩 조심스럽게 넣어야 한다.
ⓒ 이철원
가마솥에 물이 끓으면 갈은 콩-'콩죽'이라 부르는 게 편하겠군요-을 조금씩 넣어준다. 한꺼번에 많은 양을 넣으면 온도가 급히 내려가서 제대로 익지 않는다. 끓을만하면 또 넣고 기다렸다가 살짝 또 넣고…. 가마솥에서 무언가 버글버글 끓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뿌듯해진다.

▲ 콩죽이 잘 끓어야 두부의 끈기가 있다. 넘치지 않도록 잘 저어주어야...
ⓒ 이철원
불은 충분히 때주어야 한다. 콩죽이 잘 끓어야 두부가 끈기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아궁이불을 마구 쑤셔대었다. 대뜸 어머니가 한 말씀 하신다.

"장작불은 쑤셔대면 더 안 타야. 장작불하고 며느리는 쑤셔대는 게 아녀!"

처음 콩죽이 끓어넘칠 땐 찬 물을 조금씩 뿌리며 달래줘야 한다. 콩죽이 어느 정도 익으면 넘치지 않는다. 구경하는 입장에선 그것도 신기하다.

비지는 끓여먹고, 순두부는 바로 먹고

콩죽이 다 익었으면 무명천이나 베 같은 비지자루에 옮겨 붓고 원액을 짜낸다. 나무주걱으로 꾸~욱 누르니까 샘 솟듯이 빠져나오는 뽀오얀 물이 탐스럽다. 콩젖(豆乳)이라고 해야 할까? 막걸리 같기도 하고.

▲ 콩죽을 비지자루에 담아 원액을 짜내는 일부터는 혼자서가 어렵다. 이웃과 함께 공동작업을 해야 한다.
ⓒ 이철원
최후의 한 방울까지… 어렸을 적에는 받아낸 두유는 버리고 자루 안에 있는 찌꺼기로 두부를 만드는 줄 알았다.

실은, 비지맛을 좋게 하기위해서 그리 꼭 짜내지는 않는다. 우리집에서 두부를 만드는 더 큰 이유는 비지 때문이다. 비지를 구들장 위 온돌방 아랫목에 놓고 이불을 덮어씌워 청국장처럼 발효를 시킨 다음 퀘퀘한 냄새의 비지를 가득 넣어 찌개를 끓이면 뭉글뭉글하고도 깊은 맛이 일품이다. 지금은 구들장 대신 미니 전기장판을 사용하고 있지만.

▲ 원액 붓고 간수 풀기.. 순두부가 탄생되는 과정이다.
ⓒ 이철원
받아 낸 원액을 다시 가마솥에 붓는다. 두부작업의 포인트는 간수(응고제) 맞추기다. 간수를 푸는 양이 적으면 응고가 덜되고 많으면 두부가 쓴 맛이 나며 딱딱해진다. 어르신들은 "염(鹽)한다"고도 표현을 한다. 주성분이 염화마그네슘이라는 간수는 바닷물을 농축시켜서 소금을 채취하고 난 나머지 덩어리라고 한다. 시장에 가면 쉽게 구입할 수 있다.

간수를 풀고 기다리니 서서히 응고가 된다. 순두부가 되고 있는 것이다. 뿌연 두부물은 응고가 되면서 점차 맑아진다. 응고를 할 때의 불은 약하게 해야 한다. 뜸들이는 정도로.

▲ 뜸불 들이기.. 어릴 적엔 저 불에 고구마나 감자, 국수반죽의 쪼가리 등을 구어 먹는 재미에 어른들을 성가시게 하기도...
ⓒ 이철원
▲ 몽글몽글... 구름인가! 두부인가!
ⓒ 이철원
이제 순두부로 모두부를 만들 차례. 두부판에 천을 깔고 순두부를 부으면 물이 밑으로 빠지면서 두부가 남게 된다. 나무로 만든 목판으로 해야 제격이지만 요즘에는 목판구경이 쉽지 않다. 두부는 보통의 가정집에서 소량으로 만들 수도 있는데 그 때는 빈 우유곽에 구멍을 뜷어서 두부틀로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 두부틀 위의 천을 덮고 나무판으로 누른 다음 무거운 것을 올려놓아 모두부의 모양새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 이철원
두부틀 위에 양동이의 물을 담아서 짓눌러놓고 모두부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바로 미리 퍼놓은 순두부를 먹는 시간이다. 갓 만들어낸 따끈한 순두부를 먹는 맛이야말로 두부를 만드는 또 하나의 진미다.

원칙과 과정에 충실해야 제대로 만들어져

두부(豆腐)의 腐(썩을 부)는 썩는다는 뜻이 아니라, 고체이며 말랑하고 탄력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콩죽을 끓여서 만드는 두부를 보니 이해가 갈 법하다. 단백질이 응고되어 만들어지는 두부는 영양이 풍부하고 소화가 잘되며 칼슘성분은 뼈의 밀도까지 높여준다고 한다.

▲ 물을 삔 다음 베옷을 벗기니 두부의 하얀 속살이 드러난다. 모락모락~~
ⓒ 이철원
교도소에서 나올 때 두부를 먹는 일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다. 이는 순백의 두부처럼 새출발을 의미하는 액땜의 뜻이 담겨 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영양보충이라는 지혜가 들어있다.

예전에는 감옥안의 먹거리가 형편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모자란 영양을 보충해야 하는데 나오자마자 그동안 못 먹었던 갖은 음식을 한꺼번에 먹으면 몸에 탈이 생기므로 영양도 있고 소화도 잘되며 포만감도 있는 두부를 1차로 먹게 하였다고 한다.

▲ 한바가지 퍼놓은 순두부가 어느 새 식어버렸다. 뒤에 보이는 두릅나무가 봄순을 기다리고 있다.
ⓒ 이철원
한번 만들어진 두부가 다시 콩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순간과 기다림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두부라는 결과물을 볼 수가 없다. 두부처럼 원칙에 바르고 담백하며 정갈한 새해가 되기를 기원해본다.

이가없는 아이노인, 술술먹는 순두부
막걸러서 막두부, 베에걸러 베두부
명주걸러 비단두부, 기름발라 산초두부
그냥먹세 생두부, 얼려먹세 동두부
구워먹세 군두부, 태워먹세 탄두부
속살같은 연두부, 쑥들어간 쑥두부
고추넣은 홍두부, 알들어간 계란두부
녹의홍상 미인두부, 얇게누른 포두부
세게누른 만두두부, 장에박아 장두부
미꾸라지 약두부, 검은콩에 서리두부
푸른콩에 청두부, 야채넣은 야채두부
싸서먹세 보쌈두부, 쪄서먹세 찜두부
넣어먹세 두부소박, 아이주세 과자두부
혼자먹세 팔보두부, 삭혀먹세 곤두부
달아먹세 되두부, 살짝먹세 두부피
튀겨먹세 유부, 콩물먹세 콩국수
어른주면 장수두부, 서방주면 힘센두부
내 먹으면 사랑두부, 아이주면 박사두부
두부없다 투정말고, 약오른다 울지말고
에라먹세 막비지, 끓여먹세 비지탕

-'두부노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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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중부일보 기자 -경기민주언론시민연합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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