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샬롯의 거미줄'
'샬롯의 거미줄' ⓒ 시공주니어
최근 개봉한 다코타 페닝 주연의 영화 <샬롯의 거미줄>에는 원작이 있다. 원작의 저자인 엘윈 브룩스 화이트는 <스튜어트 리틀>로도 유명한 미국의 동화작가다. 올해가 돼지해고 마침 돼지가 주인공이라 해서 설 연휴를 이용해 그 영화를 보고 싶었다.

그러나 결국 시간을 핑계로 영화관에 가지 못했고 대신 이 원작동화를 샀다. 어린이용 동화가 흔히 그렇듯 <샬롯의 거미줄> 또한 농장에 살고 있는 동물들과 어린 여자아이의 우정이 주테마다. 그러나 샬롯의 거미줄은 단순히 동물을 의인화시키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안에는 생명에 대한 존귀함 그리고 약자에 대한 배려와 성찰이 숨어있다.

여주인공 펀은 어느 날 아침, 도끼를 들고 나가는 아버지를 보고 깜짝 놀란다. 아버지는 돼지가 새끼를 낳았는데 그 중 너무 약해서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녀석을 죽이러 간다는 것이다. 펀은 다른 것들보다 작다는 이유로 죽이는 것이 옳지 못하다고 항변한다.

"만약 제가 태어날 때 몸집이 아주 작았다면 저를 죽이셨겠어요?"

아버지는 '작은 아이와 약해빠진 돼지는 다르다'고 말하지만 펀은 이렇게 말한다. "다르지 않아요. 이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하고 나쁜 일이에요." 인간과 동물은 다르게 취급받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생각은 현재 인간에게 통용되어 있는 상식이다. 그러나 펀은 여기에 문제를 제기한다. 동물이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함부로 대할 수 있는 것일까. 약자라는 이유로 소외시키고 차별하는 사회는 얼마나 비윤리적인가.

@BRI@겨우 살아난 새끼돼지의 이름은 윌버. 그러나 겨울이 오면 햄이나 베이컨을 만들기 위해 죽을지 모른다는 말에 윌버는 절망한다. 희망이 사라진 윌버 앞에 나타난 친구는 거미 샬롯. 윌버는 거미줄을 쳐 놓고 파리를 잡아먹는 샬롯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샬롯은 8년이라는 시간이나 걸려 퀸즈버리 다리를 짓는 인간과 달리 단 하루 저녁만에 거미줄을 만들어내는 훌륭한 건축가였다. 무엇보다 윌버를 감동시킨 것은 샬롯의 먹이 다루는 방식이다. 언제나 먹이를 먹기 전에 그것을 잠들게 하는 샬롯은 이렇게 말한다.

"난 언제나 벌레들이 고통스럽지 않도록 마취를 시켜. 내가 무료로 베풀 수 있는 작은 호의거든."

나의 삶을 이어가기 위해 다른 생명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것은 삶의 가장 큰 모순이다. 그러나 상대방의 죽음 앞에 적어도 고통을 최소한으로 하는 것이 마지막 예의가 아닌가. 2006년과 2007년에 걸쳐 벌써 6번이나 AI(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했다. 예산과 인력의 한계, 신속한 처리를 위해서라며 아직 숨이 붙어있는 닭들을 자루에 넣고 땅에 파 묶으면서 심지어 살고자 발버둥치며 구덩이에서 올라오는 닭들을 몽둥이로 쳐 떨어뜨리는 장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과연 인간이 작은 거미보다 더 윤리적인 존재인가. 다리 하나 건물 하나 제대로 짓지 못해 일시에 무너져 내리게 하는 형편없는 건축기술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과연 거미보다 훌륭한 존재인가.

샬롯은 한 줌의 고깃감으로 전락할 윌버를 빛나는 소중한 돼지로 만들기 위해 거미줄을 짠다. 샬롯이 밤새 짠 거미줄 위에 새겨진 글자. "대단한 돼지", "근사해". 샬롯의 거미줄은 한낱 베이컨 조각이 될 위험에 빠진 윌버를 대단하고 근사한 돼지로 변모시켰다.

황금돼지해라고 여기저기서....하지만 정작 진짜 돼지들은?
황금돼지해라고 여기저기서....하지만 정작 진짜 돼지들은? ⓒ 전경옥
황금돼지해라 어딜 가든 돼지 그림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인간에게 복을 선사한다는 돼지지만 실상 돼지들은 근사하고 대단한 존재로 취급받지 못한다. 지난 2월 초 AI가 발생한 지역을 둘러보았다. 3km 반경 내의 닭과 돼지를 모두 살처분했다고 하는데 소들은 멀쩡하다. 동물로 태어나더라도 비싼 동물로 태어나는 것이 유리할 것 같다.

그 지역에서 조금 벗어나 한 돼지농장을 방문했다. '그나마 이곳은 발생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하는 직원의 말을 들으며 돼지들의 우리로 들어가 보니 살처분 대상에서 벗어나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도대체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죽음보다 못한 삶이 이러할진대...

어미돼지들은 보육우리 스톨이라고 하는 틀에 들어가 있었다. 몸을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곳에 누워 그저 먹고 싸고 하는 일 외에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태어난 새끼들은 25kg 가량 살이 붙으면 육성돈사로 옮겨진다. 새끼를 낳은 후 그 어미는 다시 새끼를 배고, 낳고 평생 스톨 안에 누워 지내야 한다.

육성돈사라고 하는 곳은 그저 오줌과 똥으로 범벅이 된 곳이다. 코로 흙을 파헤치는 습성을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 지능이 높아 대변을 볼 곳과 잘 곳을 명확히 구분하는 돼지들에게 시멘트바닥, 그것도 자신들의 배설물이 가득한 곳에서 살라고 한다면 어떨까. 악취가 가득하고 더러운 그곳이 돼지들의 세상 전부이다.

어미 돼지는 이 '스톨'이라는 틀에 평생 누워 지내야 합니다.
어미 돼지는 이 '스톨'이라는 틀에 평생 누워 지내야 합니다. ⓒ 전경옥
이 더러운 곳이 돼지들이 살아가는 곳이지만 돼지는 정작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동물입니다.
이 더러운 곳이 돼지들이 살아가는 곳이지만 돼지는 정작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동물입니다. ⓒ 전경옥
AI가 발생하자 철새가 원인이라고 말한다. 발생현황만을 놓고 보면 그렇다. 철새가 원인이라는 기사 밑에 '철새도 몰살하자'는 댓글이 섬뜩하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안타까운 이의 홈피에도 악성댓글을 다는 사회이니 그깟 철새, 그깟 닭, 돼지를 인도적으로 대우하는 것을 어찌 기대할 것인가. 그러나 철새들은 AI에 걸리지 않는다. 나름의 면역력이 있기 때문이다.

AI가 가축을 집단사육 하는 곳에서 발생한다는 것은 동물공장의 밀집된 공간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불결한 환경에서 가축들은 항시 병에 시달릴 수밖에 없고 항생제가 첨가된 사료를 일상적으로 복용한다.

닭의 경우 식용으로 만드는 데 30일, 돼지는 160일가량의 시간이 걸린다. 그 이상 가축을 기르는 것은 사료값, 약값, 인건비 등을 감안하면 경제적 낭비다. 이제 가축우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거의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아무도 그런 힘들고 더러운 일들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깨끗하게 포장되어 있는 정육점의 돼지고기를 보며 안심한다. 그리고 불결한 사육환경에서 일하는 외국인노동자들을 차별하며 그 똥더미 위에서 살고 있는 돼지와 윌버가 다른 돼지라고 생각한다. 살처분이 끝났다고 안심할 일이 아니다. 닭과 돼지의 생태적 조건을 고려하지 않는 한 매년 AI의 공포는 계속될 것이다. 불결한 사육환경은 바이러스의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샬롯의 거미줄은 평범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작은 생명이 놀랍고 근사하고 대단한 존재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나는 근사하지 않아 샬롯. 난 그냥 보통 돼지야"라는 윌버의 말에 샬롯은 이렇게 말한다. "나한테는 네가 근사한 돼지야. 바로 그게 중요한 거야. 너는 나의 가장 친한 벗이고 나한테는 네가 놀라워." 살아있는 모든 생명은 자연이 준 그대로의 생태적 환경에서 진화된 자신만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 생명력만큼 놀랍고 근사한 힘이 있을 것인가.

펀의 어머니는 동물들과 소통하는 딸이 걱정스러워 도리언 박사를 찾아간다. 박사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한다.

"동물들이 말하는 건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렇다고 그것이 모든 걸 설명해 주지는 않아요. 어떤 동물이 나한테 다정하게 말을 걸었을 수도 있고 내가 주의하지 않아서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을 수도 있지요. 아마 사람들이 말을 덜 하면 가축들이 말을 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인간은 동물들의 고통스러운 고백을, 듣기 거북해 귀를 막아버렸을지 모른다. 동물들에게 그들의 생태적 조건을 고려해 주는 것은 동물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황금돼지해. 돼지들의 복지는 안중에 없고 돼지를 이용한 상업적 광고만이 난무한 세상에, 평범한 돼지에게 보여준 거미의 따뜻한 우정이 그립다. 약자에게 베푸는 배려와 사랑,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그 능력은 어디로 갔을까.

샬롯의 거미줄

엘윈 브룩스 화이트 지음, 가스 윌리엄즈 그림, 김화곤 옮김, 시공주니어(2018)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동물을 위한 행동 Action for Animals(http://www.actionforanimals.or.kr)을 설립하였습니다. 동물을 위한 행동은 산업적으로 이용되는 감금된 동물(captive animals)의 복지를 위한 국내 최초의 전문단체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