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케리 미 상원의원은 지난해 11월 미 중간 선거 때 지원 유세에 나섰다가 말 실수로 곤욕을 치렀다.
캘리포니아주에서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 연설 중 "숙제를 열심히 하고 현명해지기 위해 노력하라,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이라크에서 고생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라크 참전 군인에 대한 모욕이라고 공화당과 조지 부시 대통령이 벌떼처럼 일어났다.
공화당의 존 매캐인 상원의원은 "그들은 교육을 못받아서가 아니라 애국심 때문에 나라의 부름에 응했다"고 반박했고 부시 대통령은 "군인들이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는 발언은 모욕적이고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주장했다.
파문이 커지자 케리 의원은 "내 발언이 군인들이 아닌 부시와 측근들의 잘못을 지목한 농담이라는 것을 백악관이 더 잘 알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2004년 대통령 선거 때 민주당 후보로 나서기도 했던 케리 의원은 결국 지원 유세를 중단해야 했다.
그러나 인터넷 상에서는 "민주당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케리 의원의 발언이 꼭 틀린 것만도 아니다"라는 말이 많이 나왔다. 못배우고 가난한 자들이 보너스와 제대 뒤 혜택을 받기 위해 이라크 전쟁에 갔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AP통신이 19일(현지 시각) 보도한 기사도 이를 어느 정도 보여준다.
'미국의 작은 마을들이 이라크 전쟁으로 상처를 입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는 2월19일 현재 3146명에 이르는 미군 사망자들 대부분이 가난한 농촌마을 출신이라는 내용이다.
2004년 3월 미군이 이라크를 공격했을 때 70%가 넘던 지지율은 이제 30% 선으로 떨어졌고 베트남 전쟁의 복사판이 되면서 결국 전쟁터에서 직접 게릴라들과 사투를 벌이는 참상은 농촌출신의 가난한 자들에게 떠 넘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농촌 탈출구를 군대에서 찾아
@BRI@AP통신이 미군 사망자 3100여명의 출신 지역을 조사한 결과 절반 이상이 인구 2만5000명 이하의 작은 마을 출신이었다. 20%는 인구 5000명 이하의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
AP통신은 "이 마을들은 단지 작은 것만 아니었다, 그들은 가난하다"고 지적했다. 사망 미군의 3분의2는 개인의 연간 소득이 미국 평균 이하의 마을 출신이었다. 사망 미군의 절반은 개인 소득이 미국 안에서 꼴찌를 다투는 지역 출신이었다.
(CIA 자료에 따르면 2006년 현재 미국의 1인당 GDP는 구매력으로 환산했을 때 4만3500달러다.)
미국 각 주별로 인구 50만명당 미군 사망자 수를 비교해보면 농촌 지역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버몬트 14.8, 사우스 다코다 11.3, 앨라스카 10.4, 노스 다코타 10.1, 네브라스카 9.3, 와이오밍 9.1 등이 수위를 다툰다. 바로 뒤 이어 델라웨어, 몬태나, 루이지애나, 오레곤, 아리조나, 미시시피, 아칸소 등이다.
이에 비해 뉴욕은 3.7, 유타 3.4, 코네티컷 3.2, 뉴저지 3.0, 콜롬비아 특별구 2.6 명 등이다. AP통신은 "농촌 인구가 많은 주가 이라크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를 냈다"고 지적했다.
왜 이런일이 벌어졌을까?
뉴햄프셔 대학의 윌리엄 오해어 교수는 "도시와 농촌 사이에 근본적인 불평등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지난 1997년부터 2003년 사이 미국 산업구조가 변하면서 농촌 지역에서 15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농촌에서 기회가 줄어들자 탈출구로 이라크 전쟁에 참전하는 비율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농촌의 보수적 전통도 한몫
AP통신 기사에 나오는 몇몇 사례들은 이를 보여준다.
피츠버그 인근 매키스 포트에서 이동식 차량 주택에서 홀어머니의 손에서 성장했던 에드워드 카먼은 '농촌을 벗어나는 차표'를 구하기 위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군대에 지원했다. 그의 제대가 가까워졌을 때 9·11테러가 일어났고 그는 군 복무를 연장했다. 우선 1만달러의 보너스를 받아 빚도 갚고 2005년 제대하면 대학에 가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는 2004년 이라크에서 자신이 타고 있던 탱크가 전복되면서 사망했다.
매키스포트는 한 때 8000명을 고용했던 철강회사 덕분에 번창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주민들의 평균 소득은 미국 전체 평균의 60% 수준이다. 주민 8명 가운데 1명은 미 연방정부가 정한 빈곤선 이하에서 생활하고 있다.
오해어 교수는 "농촌 지역은 이 군사적 모험(이라크 전쟁)에서 도시 지역보다 훨씬 더 많은 대가를 치렀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이유는 보수적인 농촌에서는 아직도 건국 초기의 민병대에서 비롯된 군사적 전통과 애국주의가 강하게 남아있는 점이다. 일부의 경우 이런 이데올로기가 경제적 이유를 압도하기도 한다.
라이언 코바치첵은 군대 가기 직전 성조기를 펴놓고 "이것이 내가 참전하는 이유"
라고 선언했다. 그는 이라크 전쟁 참전을 조국에 대한 봉사로 생각했으며 나중에 보너스로 CIA나 FBI에 취직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결국 코바치첵의 시신을 담은 관은 이 성조기 옆을 지나갔다. 코바치첵의 장례 행렬에는 300대가 넘는 마을 사람들이 차량행렬이 뒤를 따랐다.
그러나 이런 농촌의 애국주의 열기도 결국 이라크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사그라들고 있다. AP통신-입소스 여론 조사에 따르면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농촌지역의 전쟁 찬성률은 73%였지만 지금은 39%로 낮아졌다. 도시 지역은 2004년에는 43%였지만 지금은 30%에 불과하다.
농촌전략연구소의 마티 뉴얼은 "농촌 지역에서 전쟁 초기 찬성률이 높았던 것은 그들의 젊은 아들·딸들이 전쟁에 많이 참전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