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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Sina에 마련된 덩샤오핑 사망 10주년 추모 사이트
인터넷 Sina에 마련된 덩샤오핑 사망 10주년 추모 사이트 ⓒ 인터넷 Sina
지난 2월 19일은 덩샤오핑(鄧小平, 1904. 8. 22∼1997. 2. 19) 사망 1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사로서 오늘날 부강한 중국을 가능하게 했던 덩샤오핑에 대한 중국인들의 남다른 존경과 애정이 모든 언론매체를 동원한 중국공산당의 기획과 어우러져 다시 한 번 대륙을 덩샤오핑 추모 열기로 달아오르게 했다.

자신들을 잘 먹고 잘 살게 해준 덩샤오핑에 대한 중국인의 사랑에 변함이 없고, 또 후진타오(胡錦濤) 등 중국공산당도 덩샤오핑을 위대한 영도자로 평가하는 데에는 추호의 흔들림이 없다. 하지만 중국사회를 움직이게 하는 중심 화두에서는 왠지 모르게 덩샤오핑의 선부론(先富論)과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이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BRI@일찍이 공자는 '적은 것을 걱정하지 말고 고르지 못함을 근심하라(不患寡而患不均)'고 설파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중국이 가장 걱정하고 있는 것은 극심한 빈부격차이고 현재 중국사회의 가장 큰 화두는 '허시에(和諧)'가 되고 있다. '허시에'를 흔히 '조화 속의 발전'으로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성장보다는 아무래도 분배에 더 방점이 찍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덩샤오핑시대와는 국가적 발전단계가 달라진 측면도 있지만 덩샤오핑이 주창한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실용주의 노선과 과감한 시장경제의 도입을 통한 '일부 사람들이라도 먼저 부자가 되자'는 선부론의 부작용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권력 장악과 유지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키아벨리즘을 만들었다면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은 원천적으로 부정부패와 모랄헤저드, 극심한 빈부격차를 내재한, 위험한 중국식 마키아벨리즘인 셈이었다.

중국에 '돈 없는 거지는 비웃어도 돈 있는 창녀는 비웃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중국에서 몸을 파는 창녀는 이렇게 당당히 말한다. "내가 돈을 목적으로 몸을 좀 판다는데 뭐가 문제인가?" 또 부정부패를 일삼는 공산당원이나 공무원들도 "국가발전을 위해 헌신했는데 이 정도의 비리가 뭐 그리 대단한가?"라고 항변하는 사회적 분위기이다.

최근 중국사회과학원 사회학연구소가 발표한 중국의 지니계수는 0.496으로 사회적 동란이 우려되는 수준이고, 상위 20%의 1인당 재산은 하위 20%의 70배를 넘어섰다. 부유층은 60%가 축첩을 일삼고 극단적인 금전만능주의와 향락적인 사회분위기 속에서 섹스용품산업은 연간 12조가 넘는 시장규모를 자랑한다.

사회적 생산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덩샤오핑은 '발전이야말로 확고한 원칙이다(發展才是硬道理)'는 논리로 경제중심의 발전 위주의 정책을 폈고, 중국이라는 거대한 기차는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며 철로 위에 놓인 숱한 사회적 난제들을 거침없이 헤치고, 또는 아무렇지 않게 깔아뭉개고 달려왔다.

그 결과 중국경제의 파이는 40배 가까이 커졌고 중국 인민들은 어느 정도 절대빈곤의 터널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허쉬만의 터널효과처럼 '분배'의 차선은 가로막고 '발전'의 차선만 질주를 계속하던 터널 안의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고, 커진 파이의 곳곳에 곰팡이가 생겨나며 도처에 지독한 악취가 풍겨지고 있음도 감지된다. 철로 위의 난제들은 이제 부딪쳐 지나갈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 기차를 전복시킬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위에서 아래로' 지상명령처럼 쏟아져 내린 이데올로기가 바로 '허시에'이다. 한족과 소수민족, 부유층과 빈곤층, 동부와 서부 등 사회적 구성원 상호 간에 차이와 모순 혹은 대립이 존재하더라도 전체적으로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조화롭게 어울리며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뤄가자는 것이다.

'위인은 영원하다'는 말과 함께 덩샤오핑의 어록을 소개하고 있는 덩샤오핑 추모사이트
'위인은 영원하다'는 말과 함께 덩샤오핑의 어록을 소개하고 있는 덩샤오핑 추모사이트 ⓒ 인터넷 Sina
덩샤오핑이 마오쩌둥을 인정하면서 자기만의 색깔을 가졌던 것처럼 중국공산당 독재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누워서 침을 뱉을 수 없는' 후진타오 또한 '허시에'를 통해 덩샤오핑과는 차별화된 국가전략을 선택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행간에는 분명 중국식 마키아벨리즘에 대한 고뇌에 찬 반성과 성찰이 있었을 것이다.

중국에 '위에 정책이 있으면 아래에는 대책이 있다'는 말이 있다.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이 비록 표면적인 중국정부의 정책에서는 '허시에'에 자리를 내주고 유통기한이 지난 퇴물이론 취급을 받겠지만 실제적으로는 '발전'과 '돈'을 갈망하는 중국인민들의 뇌리에 뿌리 깊게 남아 여전히 그 맹위를 떨치며 존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인들의 덩샤오핑에 대한 사랑은 당분간 아주 견고해 보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국정브리핑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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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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