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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길게 꼬리를 남기며 배가 앞으로 나아갑니다. 바다 물빛은 파란색이 아니라 검은색이었습니다.
뒤로 길게 꼬리를 남기며 배가 앞으로 나아갑니다. 바다 물빛은 파란색이 아니라 검은색이었습니다. ⓒ 이승숙
초등학교 다니던 어린 시절엔 '소풍 가는 날'이 일 년 중에 제일 기다려지는 날이었다. 소풍 날짜가 잡히면 그때부터 소풍은 이미 시작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설레는 가슴으로 손꼽아가며 소풍 가는 날을 기다렸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여행 갈 마음을 먹을 때부터 여행은 시작된다. 미지의 곳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으로 마음속 여행은 이미 시작된다.

중국에서 오랫동안 살고 있는 내 외사촌은 중국을 보려면 꼭 배를 타고 오라고 그랬다. 인천국제부두에서 중국 장쑤성(江蘇省) 연운항까지 가자면 꼬박 24시간이 걸리지만, 비행기 타고 오면 느끼지 못할 것들을 많이 느낄 수 있을 거라며, 중국 여행의 첫 출발은 반드시 배를 타고 와야 하는 거라며 힘주어 말했다.

준비하는 순간부터 여행은 시작된다

하지만 24시간이라는 시간이 문제였다. 배 안에서 뭘 하면서 24시간을 보낼지 고민 아닌 고민에 빠진 남편은 심적 압박을 느꼈다. 그래서 처남이 되는 내 외사촌에게 전화를 했다. 배 대신 비행기를 타고 가면 안 되냐고 했더니 외사촌은 한 마디로 딱 잘라버리더라고 한다.

"김서방, 중국을 알려면 반드시 배를 타고 와야 돼. 방학이고 하니 시간 내서 배 타고 와."

구구한 설명도 없이 외사촌은 단칼에 내 남편의 말을 끊어버렸다. 그 기세에 눌려서 남편은 비행기를 타고 가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말았다.

요즘 중국에서는 한국 상품들이 엄청 인기가 있단다. 특히 한국 화장품이 아주 인기가 좋다며 여성용 영양크림을 몇 개 사오라고 그랬다. 보아하니 내 외사촌이 알고 지내는 중국 사람들이 우리 부부를 식사에 초대할 모양이었다. 그래서 우리더러 중국 지인들에게 선물할 화장품을 좀 사오라고 그랬다.

"비싼 거 아니어도 괜찮다. 그런데 꼭 'made in korea'이어야 돼. 알았지?"
"그리고 샤프 좀 사와라. 까만색 샤프 있잖아 왜. 그리고 샤프심도 한 50개 정도만 사와라."


까만색 샤프라면 샤프의 원조가 아니던가. 그런데 왜 그 샤프를 찾는 걸까? 그래서 외사촌에게 물어봤더니 중국 학생들이 한국의 문구류를 또 엄청 좋아한다는 거였다. 마치 예전 우리나라 학생들이 일제 문구류를 좋아했던 것처럼 중국 학생들은 한국제라면 다 좋아한다는 거였다.

우리 부부가 둘 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니 중국의 학교도 방문해 보자고 했다. 그때 학생들에게 나눠줄 선물로 샤프를 준비하면 좋을 거 같다고 그랬다.

우리가 방문할 중학교는 내 외사촌의 아들이 2년간 다녔던 중국 학교이다. 조카 아이는 한국에서 중학교에 다니다가 중국 학교로 전학을 했다. 그때 내 외사촌은 이왕 중국을 배울 거라면 진짜배기로 배우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며 중국의 현지 중학교에 조카를 보냈다.

조카는 그 중학교에 다니다가 지금은 아빠가 있는 도시의 다른 중학교로 전학을 갔다. 외사촌은 이번 기회에 그 학교에 찾아가서 조카애랑 같이 공부했던 그 반 학생들에게 샤프를 선물하자고 그랬다.

중국의 중학교는 한 학급당 학생 수가 약 50명 가까이 된다. 샤프를 학생 수에 맞게 50개 가까이 장만하려니 은근히 부담이 되었다. 화장품에다가 샤프, 그리고 샤프심까지 다 장만하려니 돈이 꽤 들 거 같았다.

그래서 궁리 끝에 문구류는 대형 할인마트에 가서 두 개 들이 세트 상품으로 골랐다. 샤프 두 개에 1500원 정도밖에 하지 않았다. 샤프심도 4개 한 묶음에 천 원 정도 하는 것이 있기에 그것으로 골랐다.

"반드시 'made in korea' 여야 해"

외사촌에게 줄 선물로는 김장김치와 밑반찬을 좀 챙겼다. 외국에서 오랫동안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김치가 가장 좋은 선물일 것 같았다. 그래서 김장김치를 몇 포기 꺼내 와서 국물이 새지 않도록 김치 통에 담았다. 그렇게 이런저런 준비를 하다 보니 여행을 떠날 날이 되었다.

떠나기 전날인 1월 29일 밤에 인천국제터미널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더니 바다에 바람이 불어서 5시간 가까이 배가 늦게 출발한단다. 1월 30일 화요일 저녁 7시에 출발할 배가 밤 12시에 출항한다는 거였다.

출발 시각에 맞춰서 일정을 다 짜놓았는데 배가 5시간이나 늦게 출발한다니 갑자기 시간이 남아 버렸다. 그래도 우리는 그냥 그 시간에 맞춰서 출발하기로 하였다. 일찍 가서 기다리면서 이것저것 구경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오후 2시 좀 지나서 집을 나섰다.

그날따라 날이 추웠다. 늘 봄 날씨 같더니만 그날은 바람이 불고 날이 추웠다. 그런데도 인천국제터미널에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가만 살펴보니 우리처럼 여행객으로 보이는 사람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사람들이 대부분 짐을 산더미만큼 챙기고 있었다. 그들이 바로 말로만 듣던 '보따리상'들이었다.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장사를 하는 그들은 보통내기같이 보이지는 않았다.

보따리상들은 한국인보다 중국인이 더 많아 보였다. 그들은 잘 아는 사이들인지 서로 아는 체를 하면서 연방 뭐라고 뭐라고 말들을 했다. 모두 눈알을 데록데록 굴리면서 여기저기를 연방 쳐다봤다.

낯선 풍경 앞에서 나는 약간 기가 죽었다. 그래서 한쪽 구석에서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자 남편이 그러는 거였다.

"여보, 사진 좀 찍어. 저기 저 보따리상들 좀 찍어 봐. 열심히 사는 모습에서 뭔가가 떠오르지 않아?"

하지만 나는 사진기를 꺼낼 생각도 못한 채로 그냥 그들을 바라만 봤다. 그들에게서는 차돌맹이 같은 단단함이 느껴졌다.

이제 떠나면 며칠간은 한국 음식을 못 먹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식당으로 갔다. 그리고 얼큰하면서도 뜨끈뜨끈한 내장탕을 시켰다. 벌건 기름기가 도는 뜨거운 내장탕이 한 사람 앞에 한 그릇씩 놓였다. 우리 부부는 땀을 흘리면서 그릇 바닥이 보이도록 내장탕을 긁어먹었다.

30시간 동안 뭐 하며 보낸다지?

밤 12시에 배가 뜬다고 하였지만 승선은 오후 6시부터 시작되었다. 그래서 배를 타기 위하여 셔틀버스를 탔다. 그런데 벌써부터 중국 분위기가 느껴지는 거였다. 중국 인구가 많다더니 역시 버스 안도 만원이었다. 주변에서는 온통 중국말밖에 들리지 않았다. 외로운 섬처럼 오똑하니 우리 둘만 한국 사람이었다.

중국 연운항까지 타고 갈 배는 매우 컸다. 그 배 이름은 '자옥단호'였는데 배 높이가 장장 7층이라 했다. '자옥단호'는 한때 유럽의 바다를 누비던 호화유람선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모든 선실이 2인실 아니면 4인실이었다. 하지만 연식이 오래되어서 그런지 배는 좀 낡아 보였고 그리고 사우나를 비롯한 여러 부대시설은 운영이 미흡한 것으로 보였다.

'자옥단호'가 중국 배였으니 당연히 승무원들도 모두 중국 사람이었다. 그리고 승객들도 중국인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야기를 나눌 사람도 없는데다가 선실에 있는 텔레비전은 중국 방송만 나왔다. 그것도 딱 한 채널밖에 나오지 않았다. 배 타고 떠나는 해외여행은 처음이었던 우리는 책도 한 권 가져오지 않았다. 그래서 할 것도 볼 것도 없었다.

우리 앞에 놓인 시간은 장장 30시간이었다. 1월 30일 오후 6시에 배에 올랐는데 밤 12시에 배가 뜬다고 하였다. 그리고 연운항까지 24시간 가야한다고 하니 우리한테 놓인 시간은 30시간 가까이 되었다.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낸다지? 할 일도 없고 할 것도 없는데 시간은 무한정 많았다. 뭐하며 시간을 보낼지 고민 아닌 고민을 했다. 이렇게 대책 없이 시간이 많았든 적이 없었든 우리는 시간 보낼 일을 걱정했다.

"여보, 영현이가 우리를 고문하네, 고문해. 이 시간을 다 어떻게 보낸다지?"

배 타고 오라고 한 내 외사촌을 은근히 원망하면서 처음 몇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조금 지나자 외사촌의 심중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왜 빠르고 편리한 비행기를 놔두고 굳이 배를 타고 중국으로 오라고 했는지 알 수가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월 30일부터 2월 5일까지 중국 장쑤성(江蘇省)을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대장정의 역사를 기록한 <중국의 붉은 별>이라는 책을 본 후로 저는 중국을 동경했습니다. 늘 마음 속에 담고있던 중국 땅을 이번에 밟고 다니면서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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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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