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프랑스 작가들에게 미국의 역사학자 로버트 단턴이 쓴 흥미로운 역사서 <고양이 대학살>을 건네준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들은 중세의 마녀사냥을 연상시키는 그 제목에서부터 분명 기겁할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이 끔찍한 사건이 그들이 살았던(또는 살고 있는) 시기로부터 길게는 250년 전, 짧게는 불과 100년 전인 18세기 중반에, 다름 아닌 그들의 조국인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해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들의 경악은 어쩌면 수치로 돌변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로버트 단턴의 관심은 프랑스인들의 고양이에 대한 취향의 급속한 변모나 프랑스 작가들의 고양이 애호벽에 대한 신랄한 조롱에 있지 않으니, 프랑스 작가들과 싸움이 일어날 일은 없겠다.
사실, 로버트 단턴이 <고양이 대학살>에서 보여준 야심은 그보다 훨씬 더 큰 것이었다. 1984년에 처음 출간된 이 책은 농민에서 계몽사상가에 이르기까지 18세기 프랑스 사회의 거의 모든 계층을 망라하는 거대한 벽화를 그려내려고 하는 하나의 시도였기 때문이다.
그가 이 책의 서론 첫머리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것은 18세기 프랑스의 사고방식(그의 용어를 빌리자면 '망텔리테')에 대한 연구인데 이 연구가 야심적인 이유는 18세기 프랑스인들이 무엇을 생각했는지 뿐만 아니라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즉 어떻게 세계를 해석했고 세계에 의미를 부과했으며 감정을 불어넣었는지까지도 보여주려 했기 때문이다.
한편 이 연구가 하나의 시도인 이유는, 지금까지 역사학계 내에서 공인된 역사 연구 방법론과는 다른 방식을 채택해 역사를 다룬 최초의 사례였기 때문이다. 로버트 단턴이 채택한 방식은 기존 방식과는 다른 새로움을 보여주는데, 우선 그는 그동안 사료로서의 가치를 거의 인정받지 못했던 새로운 사료들에 주목했다.
구전되어 내려오는 농민들의 민담, 파리의 한 인쇄공이 남긴 고양이 죽이기 소동에 대한 기록, 몽펠리에 주민의 도시 설명서, 파리의 문필가들을 감시한 한 경찰관의 보고서, 계몽사상가들의 저작인 <백과전서>의 서문, 한 시민의 서적 주문 편지 등이 바로 그러한 사료들이었다.
사료로서의 가치가 의심스러운 이런 글들에서 역사를 읽어내는 작업이 가능한 것은 아무리 개별적이고 특이한 글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상징의 체계 속에서 표출된 것이기 때문이다.
즉 하나의 텍스트는 언제나 그 텍스트가 쓰인 당대의 컨텍스트 안에 놓여있기에 우리는 텍스트로부터 컨텍스트를 구성해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로버트 단턴은 인류학에서 그 방법론을 빌려왔다.
그런데 그 구성이 좀더 정확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그 역으로의 작업, 즉 컨텍스트로 텍스트를 해석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특히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뿐만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 문화를 다루는 경우에는 이러한 양방향 작업이 필수적이다. 이 책에서 농민들의 민담을 다루고 있는 제1장과 고양이 죽이기 소동을 다루고 있는 제2장에서 이러한 작업이 비교문화 방식으로 잘 나타나 있다.
로버트 단턴이 <고양이 대학살>에서 처음 선보인 이러한 시도는 매우 성공적이어서 이 책의 발간 이후 그동안 역사학계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문화사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으며, 정치나 경제, 사회 등 거대 역사담론으로는 담아내지 못하는 미시사를 다루는 역사 서적들의 발간이 엄청나게 늘었다고 한다.
이렇듯 기존 방식과는 다른 방법론을 따랐으며 그동안 덜 주목받았던 문화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 이 책의 새로움이 있겠지만, 이 책의 미덕은 그 무엇보다도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역사 서적이라는 사실에 있을 것이다. 서로 절묘하게 연결되는 에피소드별 구성을 취하고 있는 긴밀한 구성도 독자의 흥미를 돋우는 한 요소가 되고 있다.
3.
자, 이쯤에서 다시 고양이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프랑스의 농민들 사이에 전해져 내려오는 민담에서 고양이는 왜 항상 꾀 많은 동물로 등장하며 고양이의 기발한 사기술에 농민들은 왜 그다지도 환호했는가? 파리의 한 인쇄소의 인쇄공들은 왜 고양이를 잡아다가 모의재판을 하고 목매달아 죽이고 나중에 그 장면을 반복해서 재현해내면서 그토록 즐거워했는가?
고양이처럼 은밀하게 파리의 문필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그들이 펴낸 책들을 꼼꼼하게 읽고 검열한 한 경찰관은 당대의 가장 유명한 계몽사상가인 볼테르에게 왜 '대단히 나쁜 용의자'라는 꼬리표를 달아놓았는가? 사람과 그토록 오랫동안 함께 살아왔으면서도 좀처럼 야성을 잃지 않는 고양이처럼 문명에 길들지 않은 자연을 찬미했던 자연주의 철학자 루소가 왜 도시의 세련된 대중들을 위한 통속소설 <신엘로이즈>를 써내야만 했는가?
어떤 역사 서적을 들춰보아도 그 답을 얻을 수 없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이 책 <고양이 대학살>에 담겨 있다. 그래도 이 책을 펼쳐보아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그런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로버트 단턴의 마지막 충고는 이렇다.
의식(儀式)적으로 고양이를 살해한 것처럼 재미없는 일의 경우에 들어 있는 농담을 이해한다는 것은 문화의 '포착'을 향한 첫 발자국이다.(374쪽, '결론;에서)
덧붙이는 글 | 고양이 대학살 (The Great Cat Massacre)
― 프랑스 문화사 속의 다른 이야기들 (And Other Episodes in French Cultural History)
ㅇ 로버트 단턴 (Robert Darnton) 지음
ㅇ 조한욱 옮김
ㅇ (주)문학과지성사 펴냄
ㅇ 2005년 10월 12일 12쇄
ㅇ 가격 1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