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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숙 사무국장
정은숙 사무국장 ⓒ 유경
"어르신들 건강상태는 나이와 상관없어요. 얼마 전에 100세 넘으신 분이 이 나이 넘어서까지 살고 싶지 않다고 하시면서 스스로 곡기 끊어서 돌아가셨어요. 직원들은 책임감에 어떻게든 보살펴 드리려고 미음을 떠먹이고 별짓 다했는데 본인이 끝까지 거부하셨지요."

정은숙 사무국장이 들려준 많은 이야기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말이다. 그 분은 곡기를 끊으신 지 보름 정도 지나서 소천하셨다고 한다.

농약을 잘못 먹어 식도가 협착된 어르신이 있었다고 한다. 음식을 먹으면 자꾸 세면대에 뱉어내다 보니 영양실조가 되어 병원에 입원하셨다. 병원에서는 경관급식(입으로 음식물을 섭취하지 못할 때 코를 통해 위에까지 직접 도달하도록 삽입한 관을 통해 영양을 공급하는 것)을 해야 한단다.

내 집으로 알고 생활하던 요양원, 지지고 볶으며 살아온 동료 어르신들이 있는 곳에서 마지막을 보내시도록 하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은 단칼에 무시되고 어르신은 튜브를 꽂은 채 병원 중환자실에 남겨진다. 그리고는 20일 후 아무도 없는 방에서 홀로 세상을 떠나신다. 노인에게 있어 의료적 관점과 복지적 관점이 상충될 경우 사회복지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노인복지관에 복지사로 첫발을 내디딘 지 17년.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을 노인들과 울고 웃으며 보낸 정은숙 사무국장을 만나 같은 노인복지를 하는 입장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어르신 돌보는 것 한순간의 동정이나 연민으론 불가능"

정은숙 서울시립중랑요양원 사무국장은

노인복지관에서 시작해 노인요양시설 근무로 잔뼈가 굵은 17년 경력의 사회복지사다. 젊은 직원들의 능력 개발에 특히 관심이 많아 요양원에서 치매와 뇌졸중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꽃꽂이, 시조 읽기, 일본어, NIE, 종이접기 등 직원들이 1인 1강좌를 진행하도록 이끌고 있다.

또 다른 노인요양시설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인 남편과의 사이에 두 아이를 두고 있는 주부이기도 하다. 오마이뉴스 블로그 <노인요양원에 살다>를 통해 노인이야기를 잔잔하게 알리고 있다.
- 무료노인전문요양원은 돈 없고, 돌봐줄 가족 없고, 몸까지 아픈 어르신들이 와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곳이다. 어떤 생각을 하며 어르신들을 돌보는가?
"입소 어르신들은 건강이 좋아져서 양로원으로 가시거나 아주 드물게 가족이 모셔가는 경우를 빼고는 거의 대부분 이곳에서 생을 마치신다. 어제 돌아가신 분이 지하층에 있는 장례식장에 모셔져있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자리보전하고 누워서 지내거나 다른 사람 도움 없이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다 해도, 마음속에 '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어려운 상황이지만 직원들을 독려해 영화관 나들이, 마트에 쇼핑하러 가기, 박물관 구경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내가 영화 보고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담에 늙고 몸 아프다고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가만있으라고 하면 지레 병이 날거다. (웃음)"

- 치매와 중풍 어르신들이 모여 계신 곳이니 하루하루가 어려움의 연속일 텐데, 제일 어려운 일을 묻기도 민망하다.
"몸이 힘든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어르신들을 부축하고 이동하고 씻겨드리려면 엄청 많은 힘이 필요하다. 아무래도 남자 직원들이 애를 많이 쓰게 된다. 그러나 보다 더 심각한 것은 '감정의 소진'이다. 정성껏 보살펴드렸는데도 순식간에 돌변해 뒤통수에 대고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퍼붓거나, 직원 전부를 도둑으로 취급하며 의심할 때는 병이려니 하면서도 맥이 빠지고 회의를 느끼게 된다.

수집벽이 있는 분들이 있으니까 다른 분들은 또 자기 물건 간수하느라고 사물함 꽁꽁 잠그는 것이 일이다. 특히 치매의 경우는 문제 행동이 돌발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두 어르신이 멀쩡하게 같이 마주앉았다가도 한 분이 다른 한 분을 때리는 일도 벌어진다.

또 다른 어려움은 면회 온 가족들이 마지막 소원이라면서 드시고 싶다는 것을 다 드린다. 가족들이 돌아간 뒤 결국 생활지도원들은 탈이 난 어르신 곁에서 밤새 기저귀 갈고 이불 치우느라 생고생을 하게 된다. 어르신을 돌보는 것은 한 순간의 선의나 동정이나 연민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 무연고 어르신들뿐만이 아니라 자식이 있어도 부양 능력이 없으면 요양원 입소가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럴 경우 입소 어르신들 가족의 태도는 어떤가?
"솔직히 보호자들 때문에 힘든 일이 많다. 차가운 방에서 겨우 끼니를 잇던 분들이 이제는 먹고사는 것과 치료 받는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게 된 것은 분명 인정한다. 그러나 가족들이 당치 않은 요구를 하며 사사건건 시비를 걸 때는 정해진 예산을 사용하는 공공복지의 수준이 과연 어디까지인가 고민하게 된다."

- 24시간 어르신들과 생활한다. 어르신들의 일상을 지나치게 자세히 알기 때문에 이 다음에 나이 들면 어떻게 살겠다는 계획이 뚜렷할 것 같다.
"스스로 휠체어에 옮겨 앉을 만한 힘만 팔에 남아있어도 독립적으로 살고 싶다. 그 후에는 요양원으로 옮겨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가족이기 때문에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런 것들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가족들은 어르신의 심리적인 안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돌보는 것은 전문가들이 아무래도 잘한다. 물론 그 전문가들도 집에 가면 자기 부모한테 그렇게 잘 하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정말 자식은 못한다(웃음). 그러나 심리적인 돌봄은 자녀들과 가족이 훨씬 잘 할 수 있다."

"치매와 뇌졸중은 사회가 공동으로 책임져야"

집에 가야 한다며 옷을 곱게 차려입고 배낭을 꾸려 앉아 계신 할머니. 할머니의 집은 재개발로 없어졌다고 한다.
집에 가야 한다며 옷을 곱게 차려입고 배낭을 꾸려 앉아 계신 할머니. 할머니의 집은 재개발로 없어졌다고 한다. ⓒ 유경
- 노인복지 현장에 몸담은 지 17년, 우리들 노년기의 삶은 어때야 할까?
"우리 모두는 노인 상태로 최소 20년에서 길게는 30년을 산다. 만만찮다. 건강이 나빠지면 자신 뿐 아니라 여러 사람 고생을 시키게 되고 결국은 시설 입소로 이어진다. 나도 나중에 스스로를 돌볼 수 없게 되면 요양원에 입소하겠지만, 그 때까지는 정말 잘 관리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 어린아이를 돌보게 되면 성장을 지켜보는 기쁨이 있지만, 노인복지의 끝은 죽음인데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을 나도 많이 받는다. 어르신들 마지막 가시는 길까지 다 감당해야 하는 어려운 일을 포기하지 않고 17년이나 할 수 있게 한 힘은?
"다른 것을 할 줄 몰라서다(웃음). 왜 고비가 없었겠는가. 그러나 돌봄도 좀 더 창의적으로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 계속 그 길을 찾으려 애써온 것이 버티는 힘이 되었던 것 같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이해하며 돌본다는 것이 내 인생을 들여다보게 해준다. 사회복지사가 천직인 것 같다.

아주 오래 전 치매주간보호소(치매 어르신들을 낮 시간 동안 돌봐드리는 곳)에 근무할 때 체크 목도리를 하고 갔는데 어르신이 당신 목도리를 훔쳐갔다며 하루 종일 따라 다녀 엄청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그런 일이 생기면 어르신의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거나, 직접 당사자인 직원이 그 자리를 피할 수 있도록 돕는 요령도 좀 생겨났다. 이런 걸 배워가면서 인생도 배워가는 거 아닌가."

- 힘쓸 일이 많아 젊은 남자 직원들이 많이 필요할 것 같다. 현실은 어떤가?
"전문성과 헌신성을 갖추고 이 일에 뛰어들었다가도 노인요양원의 생활지도원을 낮춰보는 바깥의 시선에 힘들어하거나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사회복지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 할머니나 할아버지와의 좋은 추억, 애틋한 정, 모셔본 경험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뜻이다. 어떤 과거를 가졌든, 살아온 배경과 경험이 어떠하든 지금 여기서 편하게 사시도록 해주는 것이 제일 첫째가는 목표인데, 이것이 개인의 경험이나 추억의 힘만으로는 어렵기 때문이다."

- 이미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우리에게 노인부양과 수발의 문제는 가장 커다란 부담이다. 시설의 증가와 확대가 그 해법이 된다고 보는가?
"노년기가 길어지고 건강 상태가 나빠지면서 나의 부모 혹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의 폭이 넓어져야 한다. 시설의 서비스 질이 높아진다면 그 선택 폭이 넓어지는 것 아닌가. 아직도 시설 입소에 대해 부정적이고, 자녀가 죄책감을 느끼도록 은근히 압력을 가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특히 치매나 뇌졸중은 사회가 공동으로 책임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노인의 문제가 결국 가족 해체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한 집안의 가장인 남편이 치매에 걸린 어머니 수발을 전적으로 아내에게 맡겼다고 치자. 남편은 아내가 집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속속들이 알 수 없다. 견디다 못한 아내가 집을 나가버리면 결국 남편과 치매 어머니와 아이들만 남게 된다. 이제 치매 어머니와 아이들은 누가 돌볼 건가. 다른 이유도 있지만 실제로 이렇게 가족이 해체되는 경우도 많다. 제대로 된 시설에서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으면서 가족들과 정서적인 끈이 이어져있다면 시설은 충분히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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