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나뭇결과 조각이 그대로 살아있는 1921년도의 한옥
나뭇결과 조각이 그대로 살아있는 1921년도의 한옥 ⓒ 이재은
미리 알고 가보면 그만큼 재미있는 것이 문화재 탐방일 것입니다. 사진은 지리산골 남사 한옥마을의 어떤 사랑채 누마루를 찍은 것입니다. 1919년 기미 독립선언이 온 국토를 휩쓸고 지나간 2년 후에 지어진 집입니다. 나뭇결하며 조각의 흔적들이 바로 엊그제 지어진 집처럼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BRI@이 집을 짓기 위해 나무를 소금물에 쪄서 3년 동안 말렸다고 하는데 당시 일제의 학정에 시달리던 우리네 보통 사람들은 언감생심 엄두도 못 낼 법 하지만 집 하나는 정말로 잘 지었습니다.

계자난간(鷄子欄干)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평난간과 대치되는 말로써 누각이나 정자, 또는 양반집 사랑채에 있는 누마루의 가장자리에 설치한 것입니다. 이는 건물을 아름답게 꾸미거나 좁은 내부의 공간을 좀 더 넓게 쓰기위해 바깥으로 약간 튀어나가도록 한 것이지요.

계자각은 생긴 모양을 따서 닭다리 또는 개다리라고 불리며 바깥으로 휘어지게 만든 것입니다. 또 위의 사진과 같이 계자다리의 맨 밑부분에 붙는 치마널(치마판). 그 위의 판재를 궁판이라고 하며 궁판의 가운데 부분에는 구멍을 내고 외부의 바람이 통하게 하여 시야를 넓게 하는데 이를 풍혈(風穴), 즉 바람구멍이라고 합니다. 이 풍혈은 보통 눈(眼)과 같이 생겼다하여 그 모양 또는 그 테두리의 문양을 안상(眼象)이라고 부른답니다.

궁판 위에 댄 부재는 보통 사람이 걸터앉을 수 있도록 하는데 이를 상방(上枋)이라 하고 맨 위에 가로 댄 부재를 돌란대라고 합니다. 또 이 돌란대를 난간두겁대 또는 손스침이라는 순우리말을 쓰기도 한답니다. 손스침과 계자각을 고정하는 부재로는 하엽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연꽃 모양으로 장식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또한 이 사진에는 없지만 궁판과 치마널 사이에 지방(地枋)이라는 각목을 대기도 합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