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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나 일터에서나 꼭 한두 사람은 지각하는 사람이 있지요. 희한한 건 언제나 지각하던 사람이 꼭 늦게 오는 거예요. 내가 다니는 일터에도 이런 사람이 하나 있어요. 나이로 치자면 가장 막내이고, 일터에 들어온 걸로 치자면 고참인 식구인데, 바로 우리 사무실에서 일한 지 올해 들어와 삼 년째 되는 최용우(26)씨지요.
어쩌다가(?) 제시간에 오는 때도 있지만, 거의 지각할 때가 많아요. 아침 출근 시간이 오전 8시 30분인데 늦어봐야 꼭 5∼10분쯤 늦곤 해요.
이런 최용우씨를 보고 "아마 넌 학교 다닐 때도 늘 지각은 맡아 놓고 했을 거야. 집도 가장 가까운데 왜 날마다 늦는 거야?" 하고 다른 식구들이 핀잔을 주어도 다음날 보면 늘 마찬가지에요.
생각다 못해 식구 가운데 한 사람이 아주 좋은 생각을 냈어요. 그건 바로 돼지 저금통을 하나 사놓고, 누구든지 지각을 하면 5분 늦을 때마다 1천원씩 넣기로 했어요. 모두 참 좋은 생각이라고 맞장구를 치며 그렇게 하기로 했죠.
벌금 총무를 맡은 박진모(38)씨가 바로 빨간 돼지 저금통을 사서 아무나 함부로 뜯지 못하도록 테이프까지 발라서 책상 위에 붙여 놓았어요.
다음날부터 지각하는 사람들은 늦게 온 시간만큼 벌금을 내기 시작했어요. 우리 일터 지각쟁이는 어김없이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5분쯤 늦었고, 1천원을 빨간 돼지한테 먹이로 주어야 했지요. 이 일이 지금부터 두어 달 앞서 생긴 일이에요.
벌금을 내자고 하면, 푼돈 같지만 늦으면 늦을수록 벌금 낼 돈이 많아지니까 지각하는 걸 얼마만큼 막을 수 있으리라 믿었어요. 어떤 때에는 20분이나 늦게 와서 4천원을 넣을 때도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돈이 문제가 아니라 늦은 사람은 벌금을 낼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가릴 것 없이 자꾸만 지각을 하더군요. 이 친구뿐 아니라 다른 식구들도 여러 번 돼지 저금통의 배를 불릴 때가 많았어요.
그렇게 벌금을 모은 지 보름쯤 되자, 누군가가 '벌금제도'를 없애자고 하는 이야기도 나왔어요. 그러자 그건 안 된다며 총무를 맡은 박진모씨가 손사래를 치더군요. 약속은 지켜야 한다고 하면서요.
그러면서 이제 설날도 곧 다가오는데, 이 벌금을 모아서 우리 마을에서 못 쓰는 종이를 주워서 살아가는 '윤식이네' 집에 쌀이라도 한 포대 사 주자고 얘기했어요. 그랬더니 벌금을 없애자고 했던 친구도 그것 참 좋은 생각이라고 하면서 반대하지 않더군요. ('윤식이네' 이야기는 내가 지난해 쓴 기사를 보면 잘 알 수 있어요.)
그렇게 한 푼 두 푼 벌금을 모았고, 며칠 앞서 설날을 이틀 앞두고 돼지 저금통 배를 갈랐어요. 생각보다 꽤 많이 모았더군요. 꼬깃꼬깃 접어서 넣은 1천원짜리 종이돈이 수북이 쏟아졌어요. 더러 500원짜리 동전도 있고요. 모두 세어보니, 10만원과 동전 몇 개가 더 있었지요. 사무실 식구들은 모두 깜짝 놀랐어요. 한 푼 두 푼 모은 게 그렇게나 많을 줄은 몰랐지요.
"아니, 그새 이만큼이나 모았나?"
"이거 우리 날마다 지각했나봐!"
"사장님이 아시면 지각쟁이들만 있다고 혼나겠는걸!"
저마다 한마디씩 하면서 한바탕 크게 웃었어요.
좁은 구멍으로 종이돈을 넣느라고 구겨진 걸 모두 깨끗한 새 돈으로 바꾸고, 흰 봉투에 담아서 식구들 가운데 지각을 가장 많이 했던 최용우씨 이름을 먼저 적었어요. 돈이 생각보다 훨씬 많이 모여서 윤식이네 쌀이라도 한 포대 사서 주려고 했던 애초 계획과 달리 아무래도 윤식이네가 설을 쇠려면 돈으로 주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을 모았어요.
그날, 어김없이 사무실 앞에 오셔서 종이도 줍고 말끔히 청소를 하던 윤식이 어머님을 들어오시라고 했어요. 돈이 든 봉투를 드리면서 그동안 있었던 얘기를 해 드렸어요. 이야기를 들은 윤식이 어머니는 그렇게 따로 모은 돈을 어떻게 나한테 주느냐고 하시며 무척 고마워했지요.
"명절 때마다 이 집 사장님이 쌀 팔아 주시는 것만 해도 그렇게 고마울 데가 없는데, 어쩌면 일하는 식구들도 이렇게 고마울 수가 있대요" 하시며 윤식이 어머니가 칭찬을 하세요. 직원들이 스스로 지각하는 걸 막으려고 벌금을 모으기 시작했지만 그렇게 모인 돈을 이렇게 좋은 데 쓸 수 있어 모두 흐뭇하게 여겼답니다.
또 이번 설날에도 우리 사장님은 여느 명절 때처럼 이 마을에서 못 쓰는 종이를 주워서 살아가는 할머니들께 쌀 한 포대씩 나눠드렸어요. 윤식이 어머니는 이 모두가 마음씨 착한 사장님 덕분에 일하는 사람들도 좋은 분들이라고 칭찬하시며, "복 받을 거예요, 틀림없이 복 받을 거예요!" 하고 말씀하셨지요.
아 참, 그 뒤로 우리 일터에서 '지각쟁이'는 사라졌냐고요? 글쎄요. 이렇게 말하면 답이 될까요? 그 뒤로 사무실 책상에는 또 다른 황금돼지 한 마리가 환하게 웃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