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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우리, 동영상 한 번 찍어볼까? 오마이뉴스에서 창간 기념 동영상을 공모한다는데, 응모해 보라고 쪽지가 왔네."

"누구한테서?"

"박아무개 기자. 동영상은 엄마 취향이 아니잖아. 얼굴 내밀고 말하는 거 쑥스러워 하는데.""그럼 찍으려고 했어?"

"캠코더가 선물이라잖아. 구미가 당기지 않니? 캠코더가 있으면 너희들 연주회도 마음껏 찍을 수 있을 텐데. 디카로는 조금밖에 못 찍잖아. 그리고 동영상이 '보물상자'에 들어가면 이 다음에 다시 봐도 추억이 될 테고. 그러니 이참에 맘먹고…."

"보물상자 좋아하시네. 됐어."

"박 기자의 권유가 실은 강요라는데 우리 한 번 찍어볼까?"

"우리? 흥!"

 

2% 부족한 콘티... 그리고 '안티 오마이뉴스' 큰딸 설득하기

 

2% 부족한 동영상 콘티동영상 공모에 대한 제안을 받고 나름대로 머릿속으로 밑그림을 그려보았다.

 

▲ 시작 : 취재원으로부터 오마이뉴스 창간 7주년 축하 인사 받기.

▲ 본문 :

- 시민 기자로서 어떻게 생활하는가.

- 기사 소재를 어디에서 찾는가.

- 기사로 소개되었던 취재원들을 다시 만나, 기사 후 반응 들어 보기.

▲ 끝 : 오마이뉴스는 내게 어떤 의미인가.

 

대충 이렇게 콘티를 짜고 보니 그런대로 괜찮은 동영상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뭔가 2% 부족한 콘티였다. 부족한 2%를 채울 맛깔스러운 양념이 필요했다. 뭘로 채우지?

 

'그렇지. 바로 그거야!'

 

평소 엄마의 글쓰기에 불만이 많은 딸아이 이야기를 넣으면 부족한 2%가 채워질 것 같았다.

 

엄마가 너무 빠져 있어서 <오마이뉴스>에 불만이 많고, 이번 동영상 제작에 대해서도 삐딱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큰딸을 설득하기로 했다.

 

"너 엄마에게 불만 많잖아."

"응."

"오마이뉴스에도 할 말 많잖아."

"많아."

"이참에 한 번 쏟아봐. 캠코더 준다잖아."

"흥. 캠코더 아무나 주나, 그 실력에 무슨 캠코더? 됐어."

 

하지만 곁에 있던 작은딸은 동영상 제작에 우호적이었던 만큼 시키지도 않은 발언을 해서 나를 기쁘게 했다.

 

"원고료 좀 올려달라고 말할까?"

 

원고료에 대한 불만을 내 입으로 말한 적이 없건만 신통했다.

 

"오마이뉴스가 망하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 "우리 엄마를 돌려주세요" 오마이뉴스에 빼앗긴 "우리 엄마를 돌려주세요"라고 외치는 귀여운 딸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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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이 지난 뒤 큰딸은 웬일로 자신이 직접 동영상을 만들어 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음모'가 숨어 있었다.

 

"캠코더가 탐나는 것도 아니고, 오마이뉴스가 예쁜 건 더욱 아니고, 다만 엄마의 비리(?)를 세상에 알리고 싶어서."

 

일단 그런 반응만으로도 성공적이라는 생각에 그날은 아무 말도 안했다. 그리고 다시 하루가 지났다. 다음 날 저녁, '반스 앤 노블' 서점에서 숙제를 마치고 늦게 온 아이에게 한마디 해보라고 넌지시 말을 건넸다. 그런데 해가 서쪽에서 뜨려는지 큰딸이 순한 양처럼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었다. 여러 사람 앞에 공개될 동영상인 만큼 무슨 말을 어떻게 할지 연습이라도 해보자고 했다.

 

하지만 "연습 따윈 필요 없어"라며 곧장 발언에 들어간 큰딸, 그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나도 궁금했다.

 

"저는 잘난(?) 이주연이라고 합니다. 엄마가 제 사진을 기사에 실으려고 하면 빼라고, 빼라고 만날 화를 내면서 얼굴을 공개하기를 거부해 왔던 제가 이렇게 동영상을 찍는 이유는 딱 한 가지입니다. 제발 우리 엄마를 돌려주세요. 오마이뉴스. 엄마가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시느라고 우리 엄마가 아닙니다. 오마이뉴스가 망하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오마이뉴스 좋아해요, 하지만 엄마가 글 좀 그만 썼으면 좋겠어요. 사진도 그만 찍었으면 좋겠어요. 엄마가 제발 카메라를 버리고 어딜 가도 카메라 없이 자유롭게 다니면 좋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진심인지, 죄송할 건 또 뭔지... 갑자기 쏟아낸 큰딸의 솔직한 발언은 그런 대로 괜찮았다. 딱 한 가지만 빼고는 말이다.

 

"얘야, 동영상 우수작은 창간 7주년 기념식장에서 공개된다는데 그 좋은 날, '오마이뉴스가 망하기를 바라'는 말을 하면 되겠니? 이건 무조건 탈락이야, 탈락. 다시 찍어야겠다."

 

그래서 두 번째로 찍은 게 이번에 올라간 이른바 '폭탄선언'이다. 처음 발언에서 많이 순화되어 "오마이뉴스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으로 바뀐 것이다.

 

이런 게 바로 NG?

 

▲ 작은 딸, 촬영하다 넘어지다 작은 딸이 촬영 도중에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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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그동안 272건의 기사를 올렸는데요. (우당탕) 어, 푸핫…."

"아, 다리야. 다리 아파."

 

얼굴이 공개되는 걸 원치 않았지만 혹시 편집에 필요할지 몰라 나를 찍기로 했다. 누군가 카메라 셔터를 눌러줘야 했는데 큰딸은 아예 기대를 안 했고 작은딸이 몇 번 셔터를 눌러줬다.

 

그런데 찍는 도중에 그만 불상사가 생기고 말았다. 셔터를 눌러주느라 주방 앞에 서 있던 작은딸이 갑자기 아래로 고꾸라진 것이었다.'에엥. 무슨 일이야?'벽인 줄 알고 기댔는데 벽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만 바닥으로 쓰러졌단다. 처음엔 깜짝 놀라고 이내 웃음을 참지 못하는 내 얼굴이 그대로 카메라에 잡혔다. 이런 게 바로 NG라고 하는걸까?

 

선생님 복장이 그게 뭐냐고?

 

하인즈 워드가 속한 '피츠버그 스틸러스' 티셔츠에 풋볼 선수 같은 모자를 쓴 후버 선생님을 보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고등학교 선생님 복장이 그게 뭐야?"

 

하긴 동영상을 찍으러 간 날, 나 역시 선생님의 놀라운 변신에 깜짝 놀랐다. 그래서 후버 선생님이 아닌 줄 알고 이렇게 묻기까지 했다.

 

"후버 선생님 어디 계세요?"

"제가 후버인데요."

"에엥?"

▲ "나는 하인즈 워드의 왕팬입니다" 평소와는 다른 스타일로 옷을 입고 와 우리를 놀라게 한 후버 선생님의 모습.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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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학생들이 학교에 나오지 않는 '티쳐 워크데이(teacher workday)'였다. 그래서 평소와는 다른 간소한 복장이었는데 선생님은 내가 찍을 동영상을 의식해서인지 하인즈가 연상되는 피츠버그 티셔츠를 입었다.

 

후버 선생님은 '피츠버그 스틸러스'의 빅 팬이다. 그래서 이번 동영상에서도 하인즈 워드를 많이 칭찬했는데, 하인즈가 표지모델로 나온 잡지를 액자로 만들어 들어 보이기도 했다. 공모 동영상에서 잘린 그 화면을 다시 보시라.

 

시민기자는 기회를 놓치지 않아

 

▲ "1, 2, 3! Congratulations OhmyNews!" 슈퍼볼 데이에 모인 이들에게 동영상 촬영을 부탁했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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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초반에 나오는 많은 청소년들의 합창 "축하합니다! 오마이뉴스(Congratulations! Ohmynews)"를 보고 어디에서 누구를 찍은 것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 누가: 애날리아네 가족이 다니는 교회 청소년들.

▲ 언제: 슈퍼볼(인디애나폴리스 콜츠 Vs. 시카고 베어스)이 있던 지난 2월 4일.

▲ 어디: 입양 여대생 애날리아네 집.

 

해마다 슈퍼볼이 열리는 '슈퍼 선데이'가 되면 애날리아네 교회 청소년들은 애날리아네 집에 모인다. 왜냐하면 프로젝터로 연결된 대형화면으로 슈퍼볼 경기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연례행사가 되어버린 애날리아네 슈퍼볼 관람, 바로 그 이벤트에 우리 가족이 초대를 받았다.

 


그때 문득 '동영상'이 떠올랐다.

 

'그래, 그 자리에 20여 명이 모인다던데 모두가 한 목소리로 <오마이이뉴스>를 외치면 멋진 화면이 되지 않을까.'

 

"엄마, 슈퍼볼에 빠져 있는 애들 분위기 깨지 마."

"아무 때나 카메라 들이대는 거 아냐. 중간에 광고 나올 때 취지를 설명하고 부탁할 거야."

"슈퍼볼은 광고도 재미있어. 일부러 슈퍼볼 광고도 만든다는 데 제발 중간에 그러지 마."

"이런 기회를 가리켜 바로 '천재일우'라고 하는 거야. 일부러 모으려 해도 어려울 판인데 저절로 모인 그 많은 애들을 그냥 내버려 둬? 안될 말이지."

 

'…(오마이뉴스에 미쳤군.)'

'…(이게 바로 시민기자의 열정!)'

 

공모 동영상에 들어간 축하 화면은, 실은 이들 청소년들이 제임스(애날리아 아버지)의 지휘 아래 "축하합니다. 오마이뉴스"를 외치는 '연습장면'이었다. 연습을 마친 뒤 즐거운 표정으로 "오마이뉴스"를 외치는 제대로 된 화면을 감상해 보시라.

 

가장 길게 말했는데 한 컷도 안 나온 데브라

 

▲ 길게 말했는데 다 잘려나간 데브라 동영상 촬영에서 제일 길게 말했는데, 편집 과정에서 다 잘려나간 데브라... 그의 이야기를 다시 담아본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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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볼 경기가 있던 날, 애날리아 엄마인 데브라는 가장 바빴다. 왜냐하면 집에 온 손님들을 접대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바쁜 와중에도 내 요청에 응해 카메라 앞에 섰다. 그리고 가장 길게 말을 했는데 동영상에서는 한 장면도 안 나왔다.

 

하긴 데브라의 말이 좀 중언부언이어서 잘릴 만도 했다. 하지만 잘 들어보면 건질 만한 이야기도 있었는데 냉정한(?) 동영상 편집팀이 그만 삭둑 잘라버리고 말았다. 서운한 마음에 데브라가 나온 장면을 다시 살리니 한 번 보시라. 비화를 밝히는 까닭은 사실 취재원들의 동영상을 찍기 위해 많은 이메일과 전화가 오갔다. 서로의 시간을 맞추는 일이 쉽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취재원들을 '다시' 만나 오마이뉴스 창간 기념 축하 멘트를 날리게 하고, 기사 후일담을 듣는 건 나로서도 즐거운 일이었다. 다시 장황하게 그 숨은 이야기를 소개하는 이유는 편집 때문에 잘린 소중한 장면이 아쉬워서다. 취재원들이 정성껏 들려준 이야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그러니 이번 동영상 제작의 숨은 이야기를 다시 쓰게 된 것을 이해해 주시길.

 

그나저나 큰딸은 이번에 공개된 동영상을 보고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저거 왜 찍었지? X 팔리게. 엄청 후회돼."

덧붙이는 글 | 동영상 편집팀에게 감사드립니다.


태그:#오마이뉴스, #창간기념,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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