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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쿤둔>의 달라이라마 즉위식의 모습 캡쳐
영화 <쿤둔>의 달라이라마 즉위식의 모습 캡쳐 ⓒ 김대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쿤둔>(Kundun, 1997년)은 달라이라마 14세의 유년시절 모습을 생생히 보여준다. 티베트(시짱西藏자치구) 주도 라싸(拉薩)에서 1600km 떨어진 마을에서, 다리에는 호랑이 줄무늬가 있고 손바닥에는 조가비 문양이 있는 한 아이가 태어나는데, 그가 바로 텐진 가쵸(Tenzin Gyatso)이다.

이 아이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라싸말을 할 줄 알고, 두 살 때 달라이라마 13세가 사용하던 염주와 지팡이, 북을 자신의 것이라고 골라낸다. 그리고 1940년 2월 22일, 다섯 살 나이에 달라이라마 14세에 즉위한다.

‘달라이라마 그리고 티베트!’ 이는 세계인들의 가슴속에 자리 잡은 영원한 마음의 고향으로, 그리움과 동시에 역사적 비극에 대한 안타까움과 동정이 묻어나는 이름이고, 또 냉혹한 외교적 현실의 현주소를 가름하게 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라지브 메흐로트라가 펴낸 <달라이라마>(문이당출판사)에는 오늘날 티베트의 상황을 ‘비극이자 승리이며 변화를 거부하는 전통사회를 윽박지르는 전체주의의 잔인한 전형이다’라고 적고 있다.

@BRI@1959년 티베트에서 발생한 소요사태로 전체 인구의 20%인 120만 명이 학살을 당하고, 망명길에 오른 8만 7천여 명은 살해당하고, 2만 5천명은 투옥되고, 10만여 명만이 달라이라마를 따라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 다람살라의 2500평 주거지역에 정착해 망명정부를 수립할 수 있었다.

이후 티베트에서는 장족 민족에 대한 인종, 종교, 문화 탄압이 더욱 기승을 부렸다. 문화대혁명을 거치며 6천 개의 사원은 45개만 남겨졌고, 50만 명이던 승려는 1천1백 명으로 줄었다. 지금도 티베트에서 승려가 되려면 당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사회주의에 대한 교육을 이수해야만 한다.

티베트에는 달라이라마의 망명정부를 겨냥한 핵무기 기지가 설치되고 ‘서부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한족의 강제이주로 티베트의 전통 문화는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작년 7월 1일 개통한 칭짱(靑藏)철도가 이 같은 추세를 급진전시킬 강력한 매개체가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중국과 티베트 망명정부의 국기
중국과 티베트 망명정부의 국기 ⓒ 김대오
중국정부는 여전히 타이완이나 티베트의 독립 움직임이 도미노처럼 다른 소수민족의 독립 요구로 이어질 것을 경계하면서 달라이라마를 분리주의자라며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급성장한 경제력과 제고된 국제적 위상을 바탕으로 소수민족의 분열문제에 다소 자신감을 갖는 모습이다.

무한한 발전 잠재력을 가진 중국에서 독립하는 것이 소수민족들에게 이로울 것이 없고, 소수 민족들도 심리적으로 중국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받으며 낙후된 삶을 벗어나 발전을 꿈꾸고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달라이 라마가 최근 한 강연에서 “중국의 막강한 경제력을 고려할 때 티베트의 문화적 정신, 환경만 보장된다면 중국의 일부로 남아 있는 것이 티베트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 한다”고 말한 것도 이 같은 현실인식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89년, 달라이라마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던 그해! 중국 베이징에서는 6.4톈안먼사건으로 정치권에도 역풍이 거셌고, 티베트에서도 독립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당시 티베트자치구 당서기로서 계엄령을 선포하고 시위대를 유혈 진압하는 데 선봉에 섰던 것이 현재 중국의 최고지도자인 후진타오(胡錦濤) 라는 점이다. 톈안먼사건 이후 정치적 회오리 속에서도 후진타오는 덩샤오핑(鄧小平)으로부터 먼 변방에서 티베트의 독립요구 시위를 신속하게 진압한 공을 인정받아 정치적 출세가도를 달리게 된다.

미국은 티베트망명정부를 지원하고 작년에는 달라이라마에게 민간인 최고의 영예인 의회 골드메달을 수여했다. 달라이라마가 살아있는 신으로서 세계 만민의 스승이자 세계적인 석학이자 위대한 종교지도자고, 철학자이자 작가인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미국이 수여한 그 금메달은 자신들의 유일한 라이벌이 될 중국을 견제하려는 외교적인 의도 때문에 그 순도가 의심스러운 측면이 많다. 그래도 중국의 압력에 굴복하여 달라이라마의 입국을 허용할 수 없는 우리나라의 미약한 국력에 비교하면 그나마 은근히 부러운 일이지만 말이다.

달라이라마의 공식사이트 중문판의 모습이다.
달라이라마의 공식사이트 중문판의 모습이다. ⓒ 달라이라마공식사이트

자신들을 학살한 중국을 껴안으며 ‘용서는 상대방이 아니라 자신에게 베푸는 자비’라고 말하는 달라이라마, 티베트자치구 당서기로서 ‘티베트의 문화를 존중하고 티베트의 경제적 발전을 이뤄내겠다’고 약속했던 후진타오가 미국을 사이에 두고 앞으로 어떤 외교적 타협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매일 티베트를 위해 기도하며 이미 고희를 넘긴 달라이라마 14세의 애끓는 티베트 사랑이 티베트의 완전한 자치와 행복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중국이 티베트의 역사까지 왜곡하며 자치구로 지배하고 또 티베트인을 자신들의 소수민족으로 완전 통치하는 현 상황에서 티베트가 중국에서 완전히 독립되기는 현실적으로 대단히 어려워 보인다. ‘독립이냐 동화냐’의 이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나 앞으로 티베트인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입지를 확보하고 얼마만큼의 문화적 자치를 이뤄내는가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그것이 바로 거룩한 수도자로서 달라이라마가 뿌린 비폭력 평화의 씨앗에 대한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국정브리핑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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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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