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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를 모아 소장하는 걸로 그치지 않고 무명시인들의 작품을 재조명하는 것에 시간을 기울이고 싶다는 김경식 시인은 많은 시간 무명시인들의 시집을 읽는다고 한다
ⓒ 김현자
"유명시인과 무명시인은 시를 잘 쓰냐, 못 쓰냐에 따라서만 결정되는 걸까? 1970년대 이전에는 시를 발표할 지면도 많이 부족했고 책을 내는 것도 힘들었지 않은가. 이 시집(흑보석)은 1949년에 나온 것인데, 사진이 귀한 당시에 사진까지 찍어 넣는 등 한 개인에게는 일생에 무척 소중한 사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독자를 제대로 만나지 못하고 이렇게 묻혀 지고 말았다."

김경식(48·고양시 일산)시인은 이어 말한다. 1970년대 이전 무명시인들 중에는 "평론가에게 술 한 잔, 밥 한 끼 대접해 줄 돈이 없거나 연줄이 닿지 않아 제대로 된 평가 받지 못해 무명으로 묻혀 진 경우가 많았다"고.

과연 그럴까? 예전에는 '평론'이 붙은 문학작품들이 많았다. '평론가와 예술가의 돈과 명예만을 위한 순수하지 못한 공생'에 대한 비판이 심심찮게 불거졌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독자들도 많으리라. 비단 문학부문에서만 그랬을까?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을 보면, 지난날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러고 보면 김경식씨의 무명시인에 대한 변호(?)에 공감이 간다.

▲ 김경식시인
ⓒ 김현자
지난 2월 24일. 희귀시집 600여권을 만나기 위해 김경식 시인 자택을 찾았다. 1월 어느 날 순수 봉사단체인 '사색의 향기' 주부백일장 시상식장 뒤풀이에서 "김경식 시인 집에 희귀 시집 600권이 있다더라"는 이야길 우연히 들었었다. 그는 지난해부터 메일링 회원 73만을 웃도는 이 사이트(사색의 향기)에서 문학기행을 이끌고 있다.

'희귀시집? 유명시인들의 초판본 시집들? 구경 가보자!'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여간 솔깃한 것이 아니었다. 집에 들어서자 물씬 풍기는 책 냄새의 반가움을 느끼고 싶었다.

그도 그럴밖에! 화장실을 제외한 모든 공간, 즉 안방을 비롯한 방 3개, 거실, 주방, 베란다 등 공간마다 튼튼한 책장이 턱 버티고 있었다. 게다가 언뜻 보면 잘 정리 된 걸로만 보이지만, 책 한 권을 빼면 그 뒤에 또 다른 한 권이 보인다. 책들이 두 줄로 꽂혀있는 것이다. 이 집에 있는 책은 도대체 몇 권일까?

그가 희귀시집을 모으는 까닭

▲ 세월의 더께가 가득한 이 책들은 국문학사에도 기록되지 않은 무명시인들을 만날 수 있는 귀한 자료들이다.( 이집의 모든 책장들은 이처럼 책뒤에 또 다른 책이 꽂혀있다.)
ⓒ 김현자
- 몇 권의 책을 가지고 있나?
"이 집에 있는 것만 1만 2천권정도. 이중 시집은 7천여권인데 그중 희귀시집은 600권 가량이다. 얼마 전 고향에 8천권 정도를 내려 보냈으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2만권가량이다. 국내 개인소장 최대 권수는 5만권 정도인걸로 안다."

- 주로 시집을 수집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시를 쓰다 보니 시집을 좋아하는 것 같다. 청소년기부터 이태준이나 홍명희 같은 분들에게 관심이 많아 이분들에 대한 자료를 찾으면서 1988년 고서연구회 회원이 되었다. 처음에는 오래되고 비싼 책만 소중한 줄 알고 모았다. 그러나 누구나 관심 보이는 것을 수집하기보다는 사람들의 관심밖에 있지만 꼭 필요한 무명시인들의 시집에 애정이 가더라. 먹고 살기 힘든 지난 날 시를 좋아하고 시집까지 낸 무명시인들도 한국 국문학사에 기록돼야 하는 당당한 작가들이다. 하지만 무명이라는 이유로 그들은 거의 묻혀진 상태다. 이들에 대한 어떤 통계나 자료가 없는 현실이 안타깝고 아쉽다."

- 시집을 모으는 특별한 규칙이 있나?
"2000년 이후 시집은 거의 없다. 가급이면 1970년대나 1950년대 이전 시집에 관심이 많다. 일제와 해방, 6·25전쟁이라는 굴곡 많은 역사 속에서 시를 붙잡고 살았던 그들이기 때문에 더욱 애착이 간다."

▲ 무명인이 1927년 동아일보에 실린 문예관련 뉴스를 일일히 오려 붙여 스크랩하여 묶은 이책은 국내 스크랩의 시작이자 유일본 일 가능성이 많다. 위는 전체적인 모습, 아래는 책 속
ⓒ 김현자
- 희귀시집 600여 권 중 가장 아끼는 책은?
"무명의 한 개인이 스크랩한 이 책(위 사진)에 가장 애정이 간다. 1927년 <동아일보> 문예관련 기사를 모두 스크랩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한국 스크랩의 역사가 될지도 모르겠다. 아주 꼼꼼하게 기사를 오려, 줄 하나 어긋남 없이 붙인 것으로 보아 문학에도 애정이 많았던 사람으로 추측된다. 1927년 국내 크고 작은 사건들과 맞춤법은 어땠으며 문예관련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알 수 있다. 한 개인이 일일이 오려 스크랩한 것이니 만큼 유일하지 않겠는가!"(내용은 멀쩡했지만 바탕이 되고 있는 여백의 종이는 만질 때마다 바스러졌다. 바탕이 되는 종이에는 무언가를 계산한 숫자들이 적혀있었다.)

▲ 수많은 사연을 담고 있는 1950년대 이전 시집들과(위 2매) 또 다른 시인을 만들어 낸 이용악, 한하운 시집(아래 왼쪽).국문학사 자료가치가 많은 1937년생 시집(아래 오른쪽)
ⓒ 김현자
- 한 권만 더 소개해 달라.
"여러 사람의 시를 모은 이 시집은 1937년생으로 과거 국문학사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이 책 이전에 1927년생 한 권이 있는 것으로 안다. 이 시집 속에 실린 분들 중에는 지금 유명한 분들도 많고 월북한 사람들도 많으며 주목받지 못하고 묻힌 사람들도 많다. 가끔 발굴·재조명 되는 사람들 관련, 책에 들어갈 사진이 필요해 자료요청을 해오는 경우도 많다. 이 시집 속 사진들이 그 사람이 남긴 유일한 사진인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위사진)

- 소장시집 관련 에피소드는 없나?
"이용악 시인이 1949년에 낸 이 시집을 읽고 감동받은 사람이 시인이 되었다. 그분이 바로 신경림 시인이다. 한하운 시인이 1953년에 낸 이 시집을 길에서 어떤 사람이 주워 읽고 감동받은 나머지 그때부터 습작, 시인이 되었는데 그분이 바로 고은 시인이다. 이 시집(황금찬 시인의 사인이 있는 황금찬 시인의 첫 시집)은 황금찬 시인도 우여곡절로 인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라며 반색하더라."(위사진)

- 희귀 시집과 시 관련 책에 주력해 수집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일본만 해도 출판되는 순간 자동 등록, 누가 어떤 책을 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무명 예술가들의 흔적이 남는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체계가 없다보니 지금도 유명한 사람들의 작품은 알려지지만 무명인들의 출판물은 국립도서관에조차 남지 않는 실정이다. 시가 좋아 평생 시를 썼고 자신이 쓴 시를 자비출판까지 했지만 아무도 사주지 않는 것. 심지어 관속에 넣을 시집 한 권 변변히 없는 시인들이 많다. 그분들의 시집을 최대한 모을 것이다. 그리하여 자료를 충분히 모으고 시 관련 자료관을 개설할 수 있는 여건이 되면 비치하여 시와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공유할 계획이다."

- 이렇게 많은 책을 모으면서 겪은 사연도 많을텐데.
"집사람도 책을 좋아하여 많은 도움과 이해를 해주는 편인데, 누나나 친구들은 처음 몇 년 동안은 나보고 멍청하다거나 미쳤다고 했다. 전공(경영학)을 살려 아파트평수를 늘리는 등 재산증식에 힘쓸 것이지 돈도 안 되는 책이나 사들인다고. 하지만 2~3년 전부터는 다들 그런다. 잘했다고. 가치 있는 소중한 일을 해주어서 고맙다고."

- 책값도 많이 들 텐데. 혹시 출판사에서 기증받기도 하나?
"지난해까지 모회사의 중간간부직에 있었다. 매달 월급의 30%는 책값으로 썼는데 월급이 많아 도움이 많이 됐다. 지금은 개인 사업을 하는데 경제가 좋지 않아 어려운 점이 있다. 하지만 계속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출판사 기증은 거의 없다. 가끔 아는 사람들이 보내주는 정도다."

"잊혀진 사람들 작품 재조명 하고 싶어"

ⓒ 김현자
- <새벽길 떠나며> <논둑길 걸으며> <괴산에서>란 시집을 낸 걸로 아는데 언제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으며 무엇이 시의 주제가 되는가?
"중학교 2학년 때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 충격과 슬픔이 무척 컸다. 괴산이 고향인데, 중학교 2학년 가을, 60리를 걸어 충주에 있는 서점에 가게 되었고 그때 내생에 처음으로 산 책이 김소월의 포켓 시집이었다. 60리를 걸어오면서 그 시집의 시를 암송하며 시에는 슬픔을 치유해줄 수 있는 힘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때부터 시를 습작, 어머니를 보낸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다. 내 시의 주제는 농촌과 자연, 민중과 함께 나누는 삶이다."

-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사업 틈틈이 허균이나 벽초 홍명희, 이태준 같은 분들에 대한 관심과 집중탐구, 재조명에 관심 두고 있으며 20여 년째 해오고 있는 문학기행 관련 자료수집과 이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시는 계속 쓰지만 내 시에 대한 욕심은 잠시 접고 국문학적인 자료가 부족한 1950년대 이전 무명시인들의 시를 재조명하는 일에 신경 쓰고 싶다. 국문학사에 꼭 필요한,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후일 시집관련 자료관 개설 때 시화액자 제작하여 전시할 계획으로 고 연령 시인들의 육필시와 사진을 수집, 인터뷰중이다."

- '사색의 향기'라는 봉사단체를 비롯해 문화원이나 일간지 등에서 문학기행을 이끌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주로 어떤 사람들의 흔적을 찾나?
"벽초 홍명희나 허균, 이태준처럼 민중과 가까웠던 사람들이 우선이다. 이름이 유명한데 비해 자료가 많이 부족하거나 알릴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 우선이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틈틈이 무명시인들의 시집을 읽을 때가 많다. 우리는 무명이라는 이유로 잊혀진 그분들의 시속에서 '아, 시란 이런 것이구나!'의 감동을 받을 때가 많다. 중요 일간지나 평론가들이 유명인들의 작품을 우선 소개하다보니 독자들은 유명한 사람들만 있는 것으로 알고 무명인들은 잘 모른다. 유명한 분들은 유명하기 때문에 자료도 많이 남아 있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이제는 무명인들을 발굴, 능력을 평가하는 것도 언론이나 관련 단체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 주방에도 이렇게 많은 책들이?!
ⓒ 김현자
▲ 사진 왼쪽 보이지 않는 벽면에도, 베란다 마주하는 정반대 부분도 벽면 가득 책만 보인다.
ⓒ 김현자

덧붙이는 글 | 1960년 괴산을 고향으로 태어난 김경식 시인은 <새벽길 떠나며> <논둑길을 걸으며> <괴산에서>라는 시집을 냈으며, <한국현역 대표시인육필 시집>이란 제목으로 70시인의 시를 묶어내 인기를 얻었다. 

현재 문학관련 모임 10여개 활동중이며 그가 관심두고 있는 홍명희, 이태준, 허균 등에 대해 문화원이나 문학모임에서 발표를 할 때도 많다. 문학기행관련 글들은 '사색의 향기(http://www.iloveletter.or.kr/)나 네이버 블로그 '김경식시인과 새벽길 떠나기'에서 만날 수 있다.


태그:#김경식, #시, #무명, #시집, #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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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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