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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권우성
지난 24일자 <조선일보>와 오늘(26일) 나온 <조선일보> 지면을 꼼꼼하게 챙겨 보았다. <조선일보>가 어떻게 보도할지 궁금했다. <월간중앙>에 실린 전군표 국세청장과의 인터뷰 내용을….

하지만 <조선일보> 지면에서는 토요일에도, 오늘도 관련 기사를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역시 그런 건가? <조선일보>의 수준은 그것밖에는 안 되는 건가? <조선일보> 편집진과 기자들은 결국 '자신들의 이야기'는 보도하지 못하는가?

최근 발매된 <월간중앙> 3월호 전군표 국세청장 인터뷰(이슈인터뷰 전군표 국세청장-'2007 대선에 기업 비자금 유입 철저히 차단하겠다', 한기홍 객원기자)에는 전군표 청장의 '충격적인 증언'이 하나 실렸다.

"언론사가 세무조사와 관련해 기자들을 동원해 국세청의 동향을 취재하고 간접적으로 압력을 넣고 있으며, 심지어 국세청장의 뒷조사까지 하고 있다"는 고발이었다. 사주의 상속 증여세 문제로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 한 언론사를 지칭해 "사주 개인에 대한 조사인데, 왜 편집진 쪽에서 국세청을 압력을 넣는가, 그것은 사주에 대한 과잉충성 아니냐"고 언론사 편집진의 태도를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이 인터뷰와 관련 <조선일보>에 주목한 이유는 국세청장 뒷조사를 했다는 신문으로 <조선일보>가 유력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이 '침묵'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한겨레>는 24일자 1면 머리기사("세무조사 언론사, 국세청 뒷조사"…조선일보 "그런 사실 없다", 최우성 기자)에서 이 같은 인터뷰 내용을 소개하면서 해당 언론사는 "조선일보사인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현재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 언론사 3개사 가운데 국세청이 조선일보사에 대해 고 방일영 회장의 상속 증여세 부분을 조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겨레>는 조선일보사 경영기획실 고위인사에게 전군표 국세청장의 이 같은 인터뷰 내용에 대한 확인을 요청했고, 이 조선일보사 고위인사는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조선일보>도 어떤 식으로라도 이 내용을 다룰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주요 전국지에 해당 언론사가 '조선일보사'라고 적시된 마당에 그냥 피해갈 수는 없으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 반응이 어떻게 나올지가 궁금했다. 전군표 국세청장의 <월간중앙> 인터뷰 내용을 가감 없이 전하는 수준으로 다룰지, 아니면 '언론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고 나설지, 그것도 아니라면 전군표 국세청장과 관련된 '의혹'들을 정면으로 제기하고 나설지가 궁금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조선일보>에 대한 시민사회단체의 '비판' 혹은 '비난'일지라도 짤막하게나마 그 소식을 전해왔던 <조선일보>의 기존 보도 태도와도 전혀 다른 모습이다. 왜 그런 걸까? 중요하지 않아서? 아니면, 말 못할 속사정이 있는 걸까?

자신의 치부 숨김없이 드러내는 외국 언론들

@BRI@이 소식을 다루지 않은 신문은 비단 <조선일보>만은 아니다. <월간중앙>의 모회사라고 할 수 있는 <중앙일보>도 철저하게 외면했다. <한겨레>(24일자, 1면 머리기사)와 <경향신문>(26일자)만 이 소식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전군표 국세청장이 말한 것처럼 사주나 경영진의 문제를 놓고 편집진이 국세청에 압력을 넣거나 하는 일은 비난받아 마땅할 일이다. 언론의 신뢰성과 직결되는 사안인 만큼 다른 언론사들로서도 '중요한 쟁점'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대다수 신문들은 '없는 일'인 양 이를 외면하고 있다.

한국 신문의 이 같은 태도는 외국 언론과 아주 대조적이다. <뉴욕타임스>의 신뢰성에 큰 타격을 준 2003년 제이슨 블레어의 '기사조작 파문' 때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이 문제를 중요 사건으로 크게 보도했다. 그 중 가장 돋보였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뉴욕타임스>였다. 그들은 드러내고 싶지 않은 자신들의 치부를 숨김없이 드러냈다.

무엇보다 그들의 보도방식이 독특했다. 블레어의 조작 사건에 대해 편집국장을 비롯해 편집국 고위간부들을 '기자'가 취재해 그들의 말을 하나하나 인용해 보도하는 식이었다. 발행인도 취재 대상에선 예외가 아니었다.

<뉴욕타임스> 기자들의 사주나 경영진, 혹은 편집간부들에 대한 '반란'은 오래된 전통이기도 하다. 2002년 12월 <뉴욕타임스>의 지역 내 경쟁지 <뉴욕데일리뉴스>는 데이브 앤더슨과 하비 애러튼 두 <뉴욕타임스> 기자의 칼럼이 <뉴욕타임스>의 '편집방침'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게재되지 않고 있다고 대서특필하고 나섰다.

여성 골퍼의 참여를 배제하고 있는 마스터스 대회에 대해서 <뉴욕타임스>가 반대캠페인을 벌이고 있는데 이 두 기자 칼럼이 <뉴욕타임스>의 이같은 방침에 반기를 드는 내용이라서 킬(kill)돼 있다는 것이었다.

<뉴욕데일리뉴스>에는 "담당 부장이 신문사 논지와 배치돼 실을 수 없다고 말했지만 결정은 그 윗선에서 이뤄진 것 같다, 매우 실망스럽지만 내가 몸담고 있는 곳이니 어쩌겠느냐"는 데이브 앤더슨 <뉴욕타임스> 기자의 인터뷰 내용이 버젓이 실렸다.

<뉴욕타임스>는 재빨리 수습에 나섰다. 자사 지면에 미디어담당 기자가 그동안의 쟁점과 논의 내용을 '취재형식'을 빌어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그 직후 "2주전에 유보됐던 두 편의 칼럼을 일부 내용을 수정해 싣는다"고 발표했다. <뉴욕데일리뉴스>에는 "<뉴욕타임스> 간부들이 뒤늦게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은 것은 다행"이라는 데이브 기자의 촌평이 실린 것은 물론이다.

관행이 돼버린 한국 언론사들의 '보복성 취재'

사실 한국 언론사들의 '보복성 취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세무조사 등 정부와 불편한 관계였을 때는 물론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간의 '판매전쟁' 때를 비롯해 언론사간 대립과 마찰이 있을 때도 '보복성 취재와 보도'는 어김없이 등장하곤 했다.

보복성(해당 언론사와 기자들은 '방어성'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취재 관행은 의외로 언론사와 기자들에게는 상당히 '익숙한 문화'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권력의 언론 통제에 맞설 수 있었던 최후의 방어수단이란 '명분'이 있었고, 부당한 외부공격에 대한 '자구수단'이란 '합리화'가 가능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기자들 개인적으로도 불친절한 취재원이나 물을 먹인 취재원을 대상으로 한 보복성 취재 유혹을 떨치기가 쉽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언론사들의 이런 관행은 이제 막을 내려야 할 때다. 다른 언론사의 일이라고 해서 '침묵'하는 관행 역시 그대로여서는 곤란하다. 언론사 모두의 신뢰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왜 모두가 같이 죽으려 하는가?

누구보다 <조선일보>가, <조선일보> 기자들이 '전군표 국세청장 발언'에 대해 보도해야 할 이유다. 그들이 '1등 신문'임을 자임한다면 더더구나 그렇다.

태그:#백병규의 미디어워치, #백병규, #미디어워치, #조선일보, #전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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