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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의 2월 26일 칼럼.
ⓒ 조선일보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이 26일 칼럼을 통해 "2·13 6자회담 합의로 우리는 북핵에 알몸으로 서있는 꼴이다, 부시에게 배신당한 기분"이라며 "이제 한국은 안보에 관한 한 미국을 신뢰하거나 의지하기보다 새로운 진로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한민국이 살아남는 길은 우리도 핵에 대응하는 길을 찾는 것 뿐"이라며 "우리 주변에 우리의 진정한 친구는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미국의 핵우산이 어떻고 누가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는 등의 허상에 안주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BRI@평소 미국과 약간이라도 입장이 다르면 '어설픈 자주', '반미 친북'이라고 비판했던 보수진영의 논리대로라면 김 고문은 이날 칼럼을 통해 '반미 자주국방론자'로 변신한 셈이다.

이날 김 고문이 쓴 칼럼의 제목은 '언제까지 북핵에 끌려다닐 것인가'다. 부제가 '2·13 합의로 한국은 핵 앞에 알몸으로 선 꼴…미국에 의존하지 말고 독자적으로 핵 대응 나서야'로 뽑혀있어 '반미 자주'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김 고문은 "2·13합의로 북한의 기존 핵과 핵물질은 여전히 남아있고 미국은 한국을 핵 위협에 방치하는 결과로 가고 있다"며 "우리의 안보는 공중에 떠있게 된다. 미국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우리는 부시에게 배신당한 기분"이라며 칼럼을 시작했다.

그는 북한 핵무기의 위협에 대한 대한민국과 미국의 인식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대한민국 입장에서 볼 때 북핵은 실질적인 무기가 될 수 있고, 남쪽의 안보를 인질로 잡는 협박수단이다. 즉 북핵은 대한민국에게 직접적 안보 위협이다. 그러나 미국에게 있어 북핵은 그 성능이나 운반수단 등에서 미국을 위협할 수준이 아닌 '딱총'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김 고문은 "한국에 대한 핵 위협은 (부시의) 관심 밖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부시 대통령이 입장을 바꾼 이유에 대해 김 고문은 "지난 11월 중간선거에서 진 부시로서는 이란 문제에 전념하면서 동시에 '호전적 이미지'를 '협상 이미지'로 전환하기 위해 2·13 합의가 필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과거의 핵'은 접어두고 현존의 핵프로그램 폐기라는 가시적 성과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 피해자는 한국이고 일본"이라고 덧붙였다.

"우리도 핵에 대응하는 길을 찾아야"

한국을 북핵 위협 앞에 내팽개친 부시 정부에 대한 배신감 때문인지 김 고문은 파격적인 주장을 했다.

그는 "2·13 합의는 미국이 한국과의 관계를 새로운 시각에서 재정립하는 계기로 삼는 것 같다"며 "미국은 한국의 보호에 형식적으로 매여 있을 뿐 실질적으로 어떤 의무도 지고 싶지 않다는 것을 노골화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한반도의 지속적인 안정이 필요하다면 미국은 중국을 지렛대로 삼아 북한과 직접 상대하면 됐지 굳이 골치 아픈 한국을 매개로 하거나 경유할 필요가 없다는 완곡한 의사 표시로 봐야 한다"며 "이제 한반도 문제의 중심 축은 기존의 한국·미국·일본의 3각구도에서 미국·중국·북한의 또 다른 3각구도로 옮겨가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 고문은 이른바 '시대착오적인 자주파'들 입에서나 나올만한 말을 했다.

"이제 한국은 자신의 안보에 관한 한 미국을 신뢰하거나 의지하기보다 새로운 진로를 모색해야 한다. 미국이 한국의 목을 조르는 북핵을 그냥 남겨둔 채 (어쩌면 애써 모르는 척) 자기들의 이해만 추구하기로 한 이상 우리는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대한민국이 살아남는 길은 우리도 핵에 대응하는 길을 찾는 것뿐이다. 우리는 이제 북핵 앞에 알몸으로 서있는 꼴이다. 우리 주변에 우리의 진정한 친구는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미국의 핵우산이 어떻고 누가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는 등의 허상에 안주해서는 안된다."

김 고문은 "올 대선에서는 북핵과 안보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고 중요한 과제로 제기되고 논의되어야 한다"며 "그런데 어느 주자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북핵과 안보 위기를 최우선적 과제로 거론하는 일이 없으니 우리 국민이 외롭고 불쌍할 따름"이라고 한탄하면서 칼럼을 끝맺었다.

일단 김 고문의 입장은 미국 네오콘들의 그것과 비슷하다.

김 고문 스스로가 이날 칼럼에서 예를 들었듯이 존 볼턴 전 유엔주재 미국대사는 2·13 합의가 이란과 같은 나라에 북한처럼 버티기만 하면 되는 선례를 보여줬다고 비판했었다. 네오콘인 엘리엇 에이브럼스 미 국가안보회의 부보좌관도 2·13 합의를 비난하는 이메일을 보냈었고 로버트 조지프 국무부 군축담당 차관의 전격 사임도 합의에 대한 반발로 보인다.

<조선>과 김대중 고문의 엇갈린 입장

▲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그러나 "부시에게 배신당했다"는 식의 표현은 이른바 '친북좌파' 진영의 길거리 집회에 뿌려진 찌라시에서나 볼 수 있었던 표현이다. 그만큼 배신감이 컸다는 반증일까?

부자지간에도 의견이 다른 법인데 그동안 국내 보수진영은 미국과 약간의 이견을 보이면 '반미·친북·좌파'로 공격했다. 전 세계는 미국을 중심으로 움직이며 특히 대한민국은 한국전쟁 때부터 미국 없이는 생존할 수 없으며, 이 대열에서 이탈하는 것은 국제적 고립이며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이었다.

이제 안보에 관한한 미국을 신뢰하지도 말고 의존하지도 말며 새로운 진로를 모색해야 한다는 김 고문은 이제 '정체성'도 상당히 의심스럽게 됐다. 비록 '안보'로 한정하기는 했지만 한미 관계의 핵심은 안보다. 한미 교역규모는 이미 한중 교역규모에 추월당한지 오래다.

"미국의 핵우산 제공이라는 허상에 안주하지 말고 한국의 독자적인 핵 대응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은 그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관심거리다. 이것이 북한 핵시설에 대한 한국군의 단독 폭격을 의미하는 것인지, 과거 박정희 대통령처럼 독자 핵개발을 해야 한다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아니면 한미 군사 동맹의 해체를 말하는 것인가?

그러나 이런 행동의 전제 조건 가운데 하나는 전시작전통제권의 환수일 것이다. 전작권이 미군에게 있는 한 한국의 독자적인 대응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24일 한미 양국 국방장관 회담에서 전작권을 2012년 4월 17일 이양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김 고문의 칼럼이 실린 날 <조선>에는 '노무현 정권이 한미연합사 해체에 성공한 날'이라는 사설이 실렸다.

사설은 "세계에서 가장 신속하고 효율적이며 강력한 전쟁 억지 체제(한미연합사)가 사라지고, 한반도의 운명이 이유 없이 실험대에 올랐다"면서 "한·미 연합방위의 상징성은 파괴됐고, 김정일이 오판할 확률은 無(무)에서 有(유)가 됐다. 안보의 기축이 흔들렸다"고 평했다.

기자의 기명 칼럼이 반드시 소속사의 평소 논조와 일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불일치의 한계가 있는 법인데 같은 날 실린 사설과 한때 <조선> 대표 기자의 칼럼이 묘하게 어긋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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