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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자들의 요구에 가장 효율적으로 부응할 수 있는 교육부문은 분명히 사교육 부문이다. 공교육은 절대로 사교육을 따라갈 수도 없거니와, 따라가서도 안 된다.
수요자들의 요구에 가장 효율적으로 부응할 수 있는 교육부문은 분명히 사교육 부문이다. 공교육은 절대로 사교육을 따라갈 수도 없거니와, 따라가서도 안 된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서울 충암고가 국내 최초로 담임선택제를 실시한다고 한다. 일단 1학년 신입생을 대상으로 인터넷을 통해 담임교사를 선택할 수 있게 했다고 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김창록 충암고 교장은 "고교 평준화 틀을 깨지 않는 상태에서 교육수요자인 학생들을 배려하기 위해 도입했다. 담임교사 선택제에 대한 반응이 좋을 경우 2·3학년으로 확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교육청은 "학생들의 교육 효과가 높아지고 교사들 간에 선의의 경쟁이 벌어지는 등 학교 현장의 변화를 몰고 올 획기적인 실험"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중앙일보>는 사설을 통해 환영 입장을 밝히며 다른 학교로 확산시킬 것을 주문했다.

충암학원은 국정감사에서도 거론된 문제 사학이다. 그런 학교에서 혁명적인 수요자 중심 교육개혁안을 내놨다. 이를 어떻게 봐야할까? 서울시 교육청과 보수일간지는 거기에 동조하고 있다.

사학재단은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기득권 세력이다. 서울시 교육청은 고교평준화를 깨고 기득권 세력을 위한 특목고 설립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보수일간지는 일체의 개혁을 거부하며 기득권을 옹호하고 있다. 그들이 충암고 담임선택제로 다시 한번 뭉쳤다. 기득권 세력일수록 수요자 중심주의 교육개혁을 원한다는 기존의 구도가 확인된 셈이다.

일반 국민은 수요자 중심주의에서 수요자를 자기 자신인 것처럼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민주화 세력은 수요자 중심주의 교육개혁을 민주화 교육개혁으로 오인했다. 참여정부의 김신일 교육부총리도 수요자 중심주의 교육개혁을 표방하고 있다. 수요자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감행되는 교육정책은 교원평가, 성과급 차등지급, 서울시 학군단일화, 특목고, 개방형 자율학교 등이다.

먼저, 일반 국민에겐 수요자 중심주의의 수혜자가 결코 자기 자신이 될 수 없다는 자각이 필요하다. 일반 수요자들을 위해 수요자의 선택권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교육개혁의 논리는 거짓말이다. 수요자의 선택권이 향상될 경우 그 혜택은 부자들에게 돌아간다. 선택의 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 집단은 강자, 부자들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의 기득권세력과 중상층 학부모들이 선택권 확대를 요구하는 것이다.

원래 한국의 교육 수요자들은 학교선택권을 완전히 누렸었다. 그 폐해가 너무나 커서 수요자들로부터 국가가 선택권을 완전히 몰수한 것이 고교평준화다. 하지만 수요자들은 여전히 대학 선택권을 누리고 있고, 그 결과가 지금의 망국적인 입시경쟁이 생겼다. 즉, 한국 교육의 문제는 수요자 선택권의 과잉이지, 과소가 아니다.

수요자 중심주의는 부자들을 위한 것이다

@BRI@강자, 부자들이 수요자 선택권 확대를 요구하는 것은 고교평준화를 깨고 귀족교육 체제로 가기 위함이다. 고교평준화란 것은 지위고하, 재산다소를 막론하고 모든 국민이 평등한 공교육의 기회를 누려야 한다는 공화국의 이상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다.그 경우 부자들은 귀족학교를 선택할 권한을 박탈당하게 된다.

자신들에게 귀족학교를 달라고 하면 정당성이 없기 때문에 수요자 중심주의라는 구호를 만들어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 민주화 후 수요자 중심주의 교육개혁의 결과로 등장한 자립형사립고, 특목고는 수요자 선택권의 실체를 분명히 보여준다. 가난한 사람이 자립형사립고를 선택할 수 있을까?

지금 대한민국의 공교육은 파탄적 상황이다. 수요자들의 공교육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했다. 이 문제를 수요자들에게 평가권과 선택권을 주고, 성과급을 차등지급해 교원들의 경쟁을 자극하며, 자율학교, 공모교장제 등을 통해 학교 운영을 유연화하는 방식으로 돌파하자는 것이 교육부가 제출하고 있는 교육개혁안이다. 여기에 대해 기득권 세력은 큰 틀에서 동의하고 있다.

기존의 수요자 선택권 논의는 학교 선택권 수준이었으나, 담임선택제는 여기서 더 나아가 학교 내부에서까지 선택권의 소용돌이를 일으키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원하는 학교를 선택하기 위한 수요자들간의 목숨을 건 투쟁이 입시경쟁이다. 수요자들의 선택권이 향상된 결과 입시경쟁은 이제 고교입시까지 내려오고 있다. 중상층 학부모라면 특목고 진학을 꿈꾸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 수요자들이 특목고 선택을 원하는 것은 그것이 일류대 선택을 위한 발판이 되기 때문이다. 즉, 이 땅에서 교육 수요자 선택권의 기준은 오로지 입시다.

담임선택제를 통해 학교내부에까지 수요자 선택권이 잠식해 들어오면 아이들이 체감하는 입시지옥의 강도는 더욱 참혹해질 것이다. 수요자가 자신의 선택권 행사를 통해 결국 자기 자신의 인간성을 말살하는 것이 한국의 입시경쟁 구조다.

공교육이 사교육을 따라갈 수 없는 이유는 첫째, 공교육은 사교육보다 저렴하기 때문이고, 둘째, 공교육은 사교육처럼 입시교육을 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요자들이 원하는 건 입시교육이고 학교 내부에까지 들어온 수요자 선택권은 학교에서 교육을 말살할 것이다. 입시교육만 남게 된다. 그 결과 학교는 황폐해지고 수요자들은 공교육에 대한 불만을 더욱 격심하게 느낄 것이다.

담임선택제는 학교를 마치 단과학원처럼 만들게 된다. 이것은 말하자면 학교가 시장처럼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요자와 공급자 간에 자유로운 거래가 이루어지는 시장이 과연 우리가 추구할 학교의 모습인가? 시장엔 경제적 이익관계는 있어도 인성, 도덕성, 공동체성이라는 덕목은 없다. 문제는 후자야말로 진정 공교육이 지켜야 할 가치라는 점이다.

자유로운 시장거래를 위해선 객관적인 가격표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교원평가가 담당한다. 즉, 담임선택제는 필연적으로 교원평가와 연동되게 된다. 또 인기상품과 비인기상품간에 구분이 있어야 하므로 성과급은 더욱 크게 차등 지급된다. 성과급 차등지급은 과도기적인 것이다. 차등지급을 통한 구조개혁을 하려는 쪽은 연봉제와 교원 비정규직화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교사를 학원 강사처럼 만들려는 것이다. 결국 담임선택제는 교원구조조정과 교원체제유연화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지금 우리는 민주화 시대의 성찰을 요구받고 있다

수요자들의 요구에 가장 효율적으로 부응할 수 있는 교육부문은 분명히 사교육 부문이다. 공교육은 절대로 사교육을 따라갈 수도 없거니와, 따라가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입시교육이라는 수요자들의 요구는 공교육이 담당해선 안 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공교육에서 입시교육이 이루어지는 사태를 두고 '공교육 파탄'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수요자들은 입시교육을 원한다. 즉, 수요자들은 공교육 파탄을 원한다. 그러면서 공교육 파탄을 개탄한다.

수요자 중심주의는 이렇게 한국 교육을 정신분열증적인 혼돈에 빠뜨린다. 담임선택제는 그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파탄상을 심화한다. 파탄을 원하며 파탄을 개탄하는 정신분열증은 가중된다. 교육개혁은 지금까지 이런 수요자를 위하는 것이 지상선이라고 착각해왔다. 담임선택제를 하겠다는 충암고나 거기에 즉각 동조하는 기득권세력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수요자 권리에 막연한 기대를 품는 시민사회 전체가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2007년이다. 1987년 이후 20년이 지났다. 아직도 박정희, 전두환이 통치하는가? 아니다. 이미 민주화 세력이 사회 주류로 등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파탄상은 깊어지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지금은 그것을 고민할 시점이다. 그런데 담임선택제와 수요자 중심주의 교육개혁은 지금까지 개혁해오던 대로 계속 하자는 것이다.

역사의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찰이다. 담임선택제뿐만이 아니라 집권 민주화세력이 추진하는 수요자 중심주의 교육개혁 전반에 대해 성찰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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