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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중심 장이머우 감독
논란의 중심 장이머우 감독 ⓒ CJ엔터테인먼트
1988년 2월 23일 장이머우(張藝謀)감독이 <붉은 수수밭>(紅高粱)으로 유럽의 3대영화제로 뽑히는 베를린영화제에서 대상인 금곰상을 수상했을 때, 세계는 리얼리즘을 바탕으로 인간의 원초적 생명력을 붉은 스크린에 펼쳐 보이는 중국의 5세대 감독에 찬사와 기대를 아끼지 않았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장이머우의 색깔은 과연 어떻게 변했을까. 분명한 것은 <국두>(1990), <홍등>(1991), <귀주이야기>(1992), <인생>(1994), <책상서랍 속의 동화>(1997), <집으로 가는 길>(1999) 등에서의 민중적 삶의 애환을 통한 체제 비판적 색채를 버리고, <영웅>(2000), <연인>(2002), <황후화>(2007) 등에서와 같이 영상미를 바탕으로 권력 지향적 면모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장이머우를 평가하면서도 다분히 서구적인 시각으로 반체제적인 영화가 아니면 모두 선전영화이거나 상업영화로 폄하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의 영화가 중국인들의 진솔한 삶의 현실을 벗어나면서 인간성의 해방이나 인간 욕망의 근원적 문제보다는 권력미학에의 지나친 집착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적인 감독으로 명성을 날리면서 장이머우는 중국영화계에서 이미 문화권력으로 등장했고, 2000년대 들어서면서 이 문화권력은 정치권력과도 서서히 밀월관계에 들어섰다. 영화 <영웅>이 인민대회당에서 시사회를 치르고, 중국정부에 의해 철저하게 다오반(盜版, 불법복제판)이 차단되는 특혜를 누렸다.

@BRI@이에 대한 화답인지 영화 <영웅>은 천하통일을 위해 쏟아지는 화살에 몸을 내던지는, 다분히 지배이데올로기의 국가주의에 충실하다. 최근작 <황후화>는 중국문화의 3대 정수중의 하나인 중의(中醫)와 중양절을 소재로 화려하면서도 웅장한 중화민족주의를 표현해 내려고 애를 쓰고 있다.

장이머우는 베이징올림픽과 관련된 굵직한 행사들의 총감독직을 도맡고 있다. 베이징올림픽 앰블럼 발표회와 아테네올림픽 폐막식의 베이징 소개 공연 등을 맡았고, 올림픽의 절반이라고 불리는 개막식과 폐막식의 중책을 남겨 놓고 있는 상태이다. 이미 기성 체제의 일부가 된 그에게 체제 비판적이고 중국민중의 삶을 그려내는 영화를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 것일까.

장이머우의 변명처럼 중국 영화산업의 현실은 어렵다. 관객의 80~90%는 젊은이들인데 진지한 인생의 문제나 정치적 문제에 관심이 없는 이들이 돈을 내고 극장에서 예술영화를 볼 리가 없다. 그래서 할리우드에 먹히느니 차라리 화려한 영상과 환상적인 스펙터클로 상업영화를 만들었다고 하자.

그렇다 하더라도 장이머우는 그를 향하는 수많은 비판의 화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가 온몸으로 그 화살을 받아낸다 하더라도 그 뒷자리에는 ‘중화민족주의와 상업주의’만이 덩그러니 남을 것이다.

선전상바오(深圳商報)는 ‘장이머우-병폐문화의 표본(张艺谋—病态文化的样本)’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진솔한 민중의 삶과 인간 본연의 욕망을 해부해내며, 중국인 스스로를 반성하게 했던 80년대의 장이머우가 20년이 지난 지금 권력미학과 가상공간에서의 영상미만을 추구하고 있다고 질책하며, 이는 장이머우의 문제만이 아닌 중국사회의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빛을 숨기고 어둠 속에서 묵묵히 능력을 키우던 ‘도광양회(韜光養晦)’의 겸손한 중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돈을 향해 돌진하는 처절한 배금주의와 천박한 상업주의가 판을 치고 올림픽을 위해 가식적인 보여주기 식 이벤트가 기승을 부린다. 여기에 찬란했던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자는 자민족중심의 중화민족주의가 합세하면서 그 모양은 더욱 볼썽사납게 일그러져가고 있다.

장이머우는 혹시 자신이 중화민족주의의 빛만을 찬양하고 급속하게 상업화하고 있는 중국현실의 수많은 문제들을 숨기기에만 급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자문해 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국정브리핑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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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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