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 바닷가의 온천을 출발한 버스는 그동안 남쪽으로 달리던 방향을 바꿔 동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30여분을 달리자 사막의 풍경도 지금까지 달려온 시나이반도 동부지역과는 다른 모습으로 바뀐다.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곳곳에 시루떡을 잘라놓은 것 같이 층이 진 산들이며 언덕이 눈길을 돌릴 수 없을 만큼 멋진 모습이다.
"어머! 저 바위산 좀 봐요? 저건 푸른 빛깔이네."
창밖을 바라보는 눈길이 놀라움으로 가득하다. 어떤 바위산은 그 빛깔이 다양하여 현란하기까지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본적 없는 푸른빛이 나는 바위산이 있는가 하면 붉은 산이 나타나기도 하여 달리는 버스 안에서 다음에 나타날 산이 은근히 기대 되기도 했다.
"여러분 이 사막에 정글이 있다면 믿겠습니까?"
모두들 웬 뜬금없는 말이냐는 듯 멀뚱한 눈으로 가이드를 쳐다본다.
"이제 곧 도착합니다. 르비딤 골짜기는 숲이 우거져 가히 사막의 정글이라고 할 수 있는 곳입니다. 기대해도 될 것입니다."
가이드의 말을 들으며 설마 하던 마음은 곧 현실로 다가왔다. 버스가 제법 넓은 바위산 골짜기로 접어들었을 때, 골짜기 안은 짙은 푸름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성경에 나오는 르비딤 골짜기가 시작됩니다. 다른 말로는 와디 파이란(Wadi Feiran)이라고 하는 곳인데 맛사나 므리바라고도 불리지요."
골짜기 가운데를 달리는 도로 양편으로는 키가 큰 대추야자나무들과 잡목들이 우거져 정말 믿기지 않는 멋진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땅이 비옥하고 숲이 우거진 골짜기의 길이는 4km로 이 지역이 시나이반도 중에서 가장 큰 오아시스 지역이라고 한다. 그 오아시스 지역을 굽이굽이 달려 한 마을 앞에서 버스가 정차했다.
"자 여긴 교통사고가 많은 곳이니 조심하십시오."
가이드는 버스를 도로 한쪽에 세우게 하고 우리일행들을 안전하게 안내하여 길을 건너게 한다.
이 지역은 도로를 오가는 차량들도 많고 달리는 속도도 빨라서 정말 사고의 위험이 높을 것 같았다. 길을 건너자 현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어른들과 노인들까지 상당히 많은 숫자다. 그런데 몰려든 사람들의 행색은 지금까지 보아왔던 사람들보다 훨씬 더 초라하고 궁색한 모습이다.
"이들에게 돈을 주시면 안 됩니다. 감당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이 사람들을 결과적으로 망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불쌍한 모습을 보고 일행 중 한사람이 돈을 꺼내려 하자 재빨리 눈치 챈 가이드가 강력하게 제지를 하고 나선 것이다.
"아니 이곳은 시나이반도에서도 제일 비옥한 땅이라는데, 이들은 왜 이렇게 가난하고 불쌍한 모습이지?"
정말 그랬다. 풀 한포기 자랄 것 같지 않은 사막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렇다 해도 이곳은 비옥한 땅이어서 숲이 우거진 곳인데 왜 이들은 이렇게 가난한 걸까?
일행 중 하 사람은 아무래도 마음이 편치 않은지 가이드가 이곳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는 동안 살짝 아이들 몇 명에게 1달러짜리 지폐 한 장씩을 주고 있었다.
"저 야자나무들을 보십시오. 부러지고 상처가 난 것들이 많이 보이지요? 지난 전쟁 때 이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있었답니다. 그때 이곳이 많이 파괴되었답니다. 그래서 아직도 전쟁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정말 부러진 나무들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전쟁은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나무와 자연환경에도 굉장한 타격을 주는 것이었다. 이들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도 바로 그 전쟁의 여파가 아닌지 모를 일이었다.
"저 앞의 산을 보십시오. 저 산이 바로 모세가 애굽에서 이끌고 나온 유대인들과 아말렉인들이 전쟁할 때 모세 자신이 전쟁을 지휘한 곳으로 알려진 산입니다. 구약성경 출애굽기 17장 '그때에 아말렉이 이르러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8절)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11절)' 그래서 모세의 손을 아론과 홀이 들어 올려주고 있게 하여 전쟁에서 이긴 곳이 바로 이 곳이지요."
그 산은 나지막한 동산이었다. 그야말로 풀 한포기 보이지 않는 바위산이다. 아래 골짜기 야자나무가 우거진 지역이 이곳 원주민인 아말렉 족과 유대인들의 전쟁터였다는 것이다. 마침 바위산이 석양빛에 붉게 빛나고 있었다. 신비한 모습이다. 산 아래 골짜기는 야자나무와 잡목들이 우거진 숲이라는 것이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 풍경이었다.
"이 골짜기는 또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지팡이로 반석을 치자 샘물이 솟아나와 갈증에 시달리던 백성들의 갈증을 풀어준 지역이기도 합니다.(출애굽기 17,1~7)"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이때부터 이 지역이 오아시스로 변모했다는 설명이었다.
"제가 한 가지 질문을 할까요? 구약성경에 나오는 법궤를 싯딤나무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여기서 싯딤나무를 한 번 찾아보세요. 그리고 왜 하필 싯딤나무로 법궤를 만들었을까요?"
그러자 일행 중 한 사람이 근처의 나무를 손으로 가리킨다. 그는 전에도 이 지역을 여행했던 사람이었다.
가이드는 그가 가리킨 나무가 싯딤나무라고 한다. 비스듬하게 서 있는 나무에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재질이 단단했고 길고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 있었다.
"이 나무가 바로 아카시아 나무입니다. 우리나라의 봄철에 향기롭고 예쁜 꽃을 피우는 나무는 사실 아카시아 나무가 아닙니다. 아까시 나무지요. 이름이 잘 못 전해진 것입니다."
그가 진짜 아카시아나무라고 가르쳐준 나무는 풀이나 나무를 거의 볼 수 없는 사막지역에서도 가끔씩 눈에 띄던 나무였다. 특이한 것은 이 아카시아나무는 한 그루씩만 서 있을 뿐 무리지어 숲을 이룬 것은 전혀 볼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성경에 싯딤나무라고 기록된 아카시아나무는 땅속 깊숙이 뿌리를 내려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척박한 환경의 사막에서도 살아남는 거의 유일한 나무였다. 그러나 나무의 모습은 정말 초라하다. 푸르고 울창한 모습은 볼 수 없고 잎도 작고 가늘어서 수분발산을 최대한 억제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또 크고 길고 날카로운 가시로 자신을 보호하고 있었다.
"왜 언약의 법궤를 싯딤나무로 만들었겠습니까?
가이드가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졌다.
"그거야, 사막에 있는 나무가 싯딤나무 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싯딤나무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허허허."
일행 중 한 사람이 별로 자신이 없다는 듯 대답을 한다.
"정답입니다. 인자하신 하나님이 구할 수도 없는 나무로 법궤를 만들라고 하시겠습니까."
너무 싱거운 정답에 모두들 미소를 짓는다. 일행들이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는 사이 나는 다시 길 건너 숲 속으로 현지인의 민가를 찾아 나섰다.
가까운 곳에는 민가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한 곳에 기다란 장대를 삼각형으로 맞춰 세워놓은 곳이 보여서 다가가보니 매우 깊은 우물이다. 물이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이는 것이 20여m는 됨직하다.
이곳이 오아시스 지역이지만 지하수는 매우 깊은 곳에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우물을 살펴보고 있는 사이 아이들 2명이 다가온다. 역시 예의 "원 달러"다. 보는 사람이 없어 그들에게 지폐 한 장씩을 쥐어 주고 돌아서자 일행들이 버스를 타기 위해 앞으로 다가온다.
우리 일행이 버스에 오를 때까지 아이들은 주변을 맴돌았다. 맨발에 남루한 옷차림, 꾀죄죄하고 땟물이 흐르는 얼굴이지만 그래도 눈동자는 슬프도록 초롱초롱한 모습이다. 사막가운데서는 축복 받은 땅 오아시스, 그러나 그곳 오아시스 지역에 사는 원주민들은 여전히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월22일부터 2주간 북아프리카 이집트 남부 나일강 중류의 룩소르에서 중동의 시리아 수도 다마스커스까지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