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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4주년을 맞아 27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한국인터넷신문협회 소속 16개사와 합동인터뷰를 가졌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27일 새벽. 하루의 시작이 여느 날과 다르다. 야릇한 흥분으로 가슴이 설렌다. 청와대에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좋아져 요즘은 청와대 구경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러나 그런 단순한 청와대 관람이 아닌 대통령을 직접 만나러 가는 것이기에 그 의미가 남다르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 취임 4주년 인터넷 매체 합동 인터뷰'의 방청객으로 참석하게 되었다. 평범한 서민이, 그것도 시골아지매가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을 직접 만나 볼 수 있다는 것. 분명 평범한 일은 아니다. 어머니는 아침부터 청와대 갈 준비로 동동거리는 내게 말씀하셨다.

대통령을 만나러 가는 길

@BRI@"어떤 사람은 꿈에 대통령을 보고 로또까지 당첨됐다 카더라. 이랬거나 저랬거나 맨날 TV로만 보던 대통령을 지척에서 볼 수 있다 카는 데 영광도 보통 영광은 아니제. 올 때 복권이나 한 장 사 온나."

집을 나서는 발걸음이 사뭇 가볍다. 경복궁에 도착해 버스를 이용해 청와대로 들어갔다. 오후 3시. 김미화씨의 사회로 '노무현 대통령 취임 4주년 인터넷 매체 합동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이마를 가로지른 굵은 주름 탓일까. 넉넉해 보이는 후덕한 인상 탓일까. 천생 옆집 아저씨 같다. 그런 친근함은 TV 화면으로 볼 때나 지척에서 볼 때나 매양 그대로다. 경상도 특유의 구수한 억양, 그러나 약간 긴장된 듯한 목소리로 대통령은 모두발언을 시작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게 과연 국민들에게도 옳은 것인가.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과연 국민들에게도 꼭 필요한 것인가. 그렇다면 지금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20, 30년 후에도 과연 옳을 것인가. 그것이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가장 많이 마음의 어려움을 겪었던 부분이고 지금도 가장 고심하는 부분이다."

더불어 대통령은 이런 자신의 마음이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바로 소통의 어려움과 그로 인한 답답함을 대통령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다.

또 국민들에게 친구 같은 대통령이 되고자 했는데 4년이 지난 지금, 그것조차도 국민들에게 왜곡되게 전달된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인터뷰 내내 대통령은 이런 안타까움을 전달하고자 무던히 애쓰는 듯했다.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긴 인터뷰, 그럼에도 대통령의 얼굴엔 뭔가 할 말을 다하지 못한 듯한 아쉬움이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다. 가슴 한복판에 응어리진 그 무엇을 대통령은 속 시원하게 제대로 한번 털어놓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하소연에 어떤 따스한 위로를 받고 싶어하는 듯했다.

▲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4주년을 맞아 27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한국인터넷신문협회 소속 16개사와 합동인터뷰를 가졌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인터뷰 중간, 김미화씨가 대통령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민들은 의기소침한 대통령의 모습보다는 열정적인 대통령의 모습을 원할 것입니다. 아직 일 년이나 남았으니 힘내십시오."

김미화씨가 대통령께 그 말을 했을 때 참석한 방청객들이 일제히 박수를 보냈다. 그때 대통령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는 듯했고, 눈자위가 다소 붉어지는 듯했다. '힘내라'는 격려 한 마디에, 박수 한 번에 저렇듯 얼굴이 붉어지는 대통령….

대통령은 그만큼 외로웠던 것일까. 순간, 가슴이 뭉클해지고 목구멍이 싸해져 왔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함께 참여한 다른 시민기자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다고 한다. 이런 대통령의 모습에서 나는, 지난날 내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무기력한 가장의 모습, 그리하여 한없이 주눅이 든 가장의 모습….

생존경쟁을 위한 치열한 삶의 전쟁터에서 최선을 다했음에도 가족들의 욕구를 충분히 충족시켜 줄 수 없을 때의 가장의 무기력함. 가족들의 불만과 비난, 그러나 그 어떤 변명조차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가장.

또 잘했다는 칭찬보단 실수에 대한 비난으로 한껏 주눅이 든 가장. 무슨 말을 해도, 무슨 일을 해도 그 비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에 늘 주눅이 든 가장…. 내 아버지는 늘 외로워 보였다.

무기력했던 아버지와 노무현 대통령

어릴 적, 부모님은 부부 싸움이 잦았다. 늘 찌든 살림살이 때문이었다. 한바탕 전쟁이 휩쓸고 지나가면 아버지는 밖으로 나가셨다. 그리곤 터벅터벅 언덕을 내려가셨다. 한참이 지나 인기척에 밖으로 나가 보면 아버지는 언덕배기에 주저앉아 담배를 피우고 계셨다. 깊은 시름을 긴 담배 연기에 실어 허허로운 웃음과 함께 밤하늘로 날려 보내곤 하셨다.

그런 아버지의 뒷모습…. 왜 그때는 보이지 않았을까, 아버지의 축 쳐진 두 어깨에 실려 있던 삶의 육중한 무게를. 왜 그때는 짐작조차 못 했을까, 아버지의 꾸부정한 등에 내려앉아 있던 깊은 외로움을.

아버지라고 처자식 고생시키고 싶으셨을까. 아버지라고 처자식 호강시켜 주기 싫어 게으름 부리셨을까. 그럼에도, 아버지의 그 애타는 심정을 단 한 번이라도 이해하고 보듬으려 애쓴 적이 있나 싶다. 아버지의 가슴속에 어떤 아픔이 있는지, 아버지의 가슴 속에 어떤 희망이 있는지 언제 한번이라도 그 속내를 들여다 본적이 있나 싶다.

아버지의 아픔을 위로해 드리고, 아버지의 희망에 가족의 희망을 함께 보탰다면 아마도 아버지는 덜 고단하고 덜 외로웠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가족으로부터의 무기력한 아버지, 세상으로부터의 주눅이 든 아버지를 만든 건 바로 우리들, 가족이었다. 지금 와 되짚어 보면, 그런 아버지에게 가장 절실했던 것은 바로 가족의 사랑과 이해 아니었을까 싶다. 문득, 딸아이가 남편에게 자주 불러 주는 노래 하나가 생각난다.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어요∼"

아마도 이 노래는 무기력해진 가장에게, 주눅이 든 가장에게 백 년 묵은 산삼 뿌리보다 더 용한 보약이 될 것이다.

대통령이라고 다를까. 우리가 만든 대통령이다. 그런 대통령이 국민들과의 소통에 답답함을 느끼고 친구 같은 다정함으로 국민에게 다가가고 싶으나 그마저도 외면당하고 있다. 어찌 무기력해지지 않고 어찌 주눅이 들지 않을까. 어찌 그 외로움이 뼈 속 깊이 사무치지 않을까.

애초, 국민들은 대통령에게 많은 것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당연히 실망도 컸으리라. 그러나 실망했다고 해서 모질게 외면해 버린다면 대통령은 어디에 기댈 것인가. 대통령이 힘들 때 우리는 대통령에게 그 곤한 머리 한번 기대라고 어깨 한번 내밀어 준 적이 있는가. 인터뷰 도중 대통령은 그런 비유를 했다.

▲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4주년을 맞아 27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한국인터넷신문협회 소속 16개사와 합동인터뷰를 가졌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국인터넷협회 합동인터뷰에서 인사말을 하며 웃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석가는 영웅도 아니고 신도 아니었다. 그러나 허리가 아프면 아프다고 말했다. 그런 솔직한 모습을 많은 사람들이 존경했다. 나도 그런 모습을 한번 흉내 내 봤는데 비난만 돌아오더라."

대통령의 숱한 말실수를 비유해서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다. 대통령의 그 말 속엔 대통령의 아픔이 고스란히 들여다보이는 듯했다.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하지 못하고 권위와 위엄으로 거짓 포장하는 대통령이 정말 진솔한 대통령일까.

왜 우리는 친구 같은 편안함으로 국민에게 허심탄회하게 다가서는 대통령의 진솔함은 보려 하지 않았을까. 왜 우리는 그런 대통령에게 따스한 위로 한번 해주지 못했을까….

대통령에겐 앞으로 1년의 시간이 남아 있다. 짧다면 짧고 길 다면 긴 시간이다. 그 1년이란 시간은 대통령에게 있어 지금까지의 시간보다 더 힘든 시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의 따스한 위로와 든든한 격려가 함께 한다면 대통령의 남은 1년은 그리 고달프지만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때로 '잘할 수 있다'는 이 짧은 한마디의 격려가 더 할 수 없이 좋은 보약이 된다면 말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청와대를 나서는 길. 나 하나의 미미한 힘이라도 대통령께 보태 드리고 싶어 마음속으로 가만히 중얼거렸다.

"노무현 대통령님.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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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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