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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해방 후 1949년에 문교부 고시로 확정된 형태의 태극기.
ⓒ 임윤수
태극기를 보면 행사장 단상과 국경일이 생각나고, 태극기 물결을 떠올리면 세팅 된 필름처럼 3·1절과 3·1운동이 연상된다. 3·1운동과 태극기는 실과 바늘 꾸러미처럼 항상 그렇게 이어진다. 여기서 3·1절이나 3·1운동을 생각하면 태극기 물결과 함께 영원한 소녀 유관순 열사도 함께 떠오른다. 그러기에 태극기와 유관순 열사는 불가분의 관계이며 서로 상대방을 상징한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태극기는 흰 바탕의 한가운데 진홍빛 양(陽)과 푸른빛 음(陰)의 태극을 두고, 사방 대각선상에 검은빛 사괘(四卦)를 그리는 것으로 돼 있다. 사괘의 위치는 건(乾)이 왼편 위, 곤(坤)이 오른편 아래, 감(坎)이 오른편 위 그리고 이(離)를 왼편 아래로 그린다.

최초의 태극기는 일본에 수신사로 간 박영효가 조선 고종 19년(1882)에 처음 사용했고, 고종 20년(1883)에 정식으로 국기로 채택·공포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제 침탈에 따라 국기 사용이 금지되다 독립이 되고 정부가 수립되면서 현재 사용하고 있는 태극기 형태가 1949년에 문교부 고시로 확정됐다.

▲ 태극기 하면 3·1운동, 3·1하면 영원한 소녀 유관순열사가 생각난다. 사진 속 건물은 유관순열사 추모각.
ⓒ 임윤수
그러기에 정부 수립 후부터 사용되고 있는 현재의 태극기와 그 이전에 사용됐던 태극기는 그것에 담긴 상징이나 정신은 같을지라도 문양과 형태는 조금씩 다르다.

다 같은 태극기지만, 태극기하면 떠오르는 상징적 인물이어서인지 유관순 열사기념관에 게양되거나 전시된 태극기를 보며 남다른 의미를 느끼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3·1운동 88주년이던 지난 3월 1일 오후, 충남 천안시 병천면에 있는 유관순 열사의 기념관을 찾았다. 열사의 애국 혼을 추모하고 그 뜻을 기리려는 사람들로 기념관 내외가 벅적거린다. 추모각 앞에 게양된 태극기는 당시 아우내장터를 울리던 함성이라도 재현하려는 양 바람결에 펄럭거린다.

주변이 잘 정돈된 추모각 입구에는 흰색 국화가 가지런하게 치장돼 있었고, 새로 그려져 3·1절을 하루 앞둔 2월 28일 봉안된 열사의 새 영정이 모셔져 있다. 청순하면서도 깔끔한 인상이다. 제작된 지 오래되지 않아 더없이 산뜻해 보인다.

영정 속 태극기, 시대 불일치

▲ 새로 그려진 유관순 열사 영정이 3·1운동 88주년을 하루 앞둔 2월 28일 추모각에 봉안됐다.
ⓒ 임윤수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영정 속 유관순 열사가 들고 있는 태극기는 그동안 3·1운동과 관련한 화보나 자료에서 봤던 태극기가 아니라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태극기다. 영정을 그린 제작자나 관련 단체에서도 사실에 가깝게 그리려 노력했고, 나름대로 고증을 거치려 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사실이 아닌 모습을 영정에 그려 넣었다.

3·1운동은 수천 수백 년 전의 역사가 아니라 근대사의 일이다. 그런데도 대대손손 역사적 사료로 남을 3·1운동의 상징인 유관순 열사의 영정에 시대정신과 독립운동의 상징인 태극기를 그려 넣으면서, 당시에는 있지도 않았을 현재의 태극기로 그려 넣었다는 건 아쉽고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방과 시대에 따라 각기 다른 형태의 태극기가 사용되던 당시의 상황, 어수선한 시대적 한계를 인정하고 '당시에 사용됐던 태극기는 오직 이것뿐'이라고 단정할 만한 태극기가 선정되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음은 인정된다. 확고부동한 고증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당시의 인물인 유관순 열사의 영정을 그리며 어떤 형태의 태극기를 그려 넣을까를 상당히 고민하고 연구했을 게 분명하다.

그렇지만 '그때 유관순 열사는 이런 태극기를 사용했다'는 것을 정답으로 찾을 수 없었을 때는 3·1운동 당시에 보편적으로 사용됐던 태극기를 그려 넣는 것이 시대적 또는 상징적으로 타당하다는 생각이다.

인물과 시대(태극기)의 불일치는 자칫 의도하지 않은 오해나 왜곡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을 간과한 결정이 아닌가 한다. 수백 년 후 이 영정을 본 후손들은 영정 속 태극기를 3·1운동 당시에 유관순 열사가 대한독립을 외치며 흔들던 태극기로 당연하게 받아들일 것이 염려된다.

▲ 영정 속 유관순 열사가 들고 있는 태극기는 시대에 맞지 않게 현재 사용되고 있는 태극기다.
ⓒ 임윤수
제각각, 거꾸로 매달고 있는 태극기

기념관에서 볼 수 있는 태극기들은 비단 유관순 열사 영정에서뿐 아니라 다른 곳에 전시된 전시물에서도 관람객들을 헷갈리게 한다. 기념관으로 들어가면 3·1운동 당시의 상황을 조형물로 재현, 전시해 놓았다.

그런데 이들이 들고 있는 태극기가 제각각이다. 조형물들이 들고 있는 태극기는 현재의 태극기처럼 태극문양이 상하로 돼 있지 않고 좌우로 돼 있다. 현재의 태극기는 붉은색과 청색 태극이 상하로 합치되는 문양이지만, 그 당시의 태극기는 태극문양이 상하가 아닌 좌우로 합치돼 있어 3·1운동 당시와 지금의 태극기가 다른 모양을 하고 있음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 기념관에 전시된 태극기 목판과 판하 태극기에서 당시에 사용됐던 태극기 문양을 볼 수 있다.
ⓒ 임윤수
▲ 3·1운동 당시를 재현한 조형물들이 들고 있는 태극기가 제각각이다. 오른쪽 태극기는 붉은색 태극문양, 왼쪽 태극기는 푸른색 태극문양을 기준으로 봉에 달았다. 왼쪽 태극기가 거꾸로 달린 셈이다.
ⓒ 임윤수
▲ 심지어 한 사람(조형물)이 들고 있는 태극기도 이렇듯 상반되게 봉에 매달았다.
ⓒ 임윤수
조형물들이 들고 있는 태극기를 보면 어떤 사람(조형물)은 붉은색 태극무늬 쪽이 봉에 달려 있고, 어떤 사람은 이와 반대로 파란색 태극무늬 쪽을 봉에 달아 들고 있는 것으로 돼 있다. 요즘 태극기로 말한다면 푸른색 태극문양이 위로 올라가도록 거꾸로 매단 태극기와 같다. 21개의 태극기 중 13개는 붉은색 태극무늬 쪽을, 8개는 파란색 태극무늬 쪽을 봉에 매달았다.

한 마디로 뒤죽박죽이다. 시대적으로 유교적 사상이 더 강했고, 국운의 회복과 독립을 주창하던 당시의 사람들이 경황이 없고 규정이 없었다고 해도 양과 음을 나타내는 태극문양을 거꾸로 달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이다. 관계자는 관람자의 입장에서 전시하느라 이렇듯 거꾸로 매단 태극기를 들고 있는 상태가 됐다고 설명했다.

목판을 이용해 단면만 찍어낸 태극기를 사용했을 3·1운동 당시에는 어떤 자세로 태극기를 들고 있느냐에 따라 정상(붉은 태극무늬가 봉 쪽으로 가는)으로 보이는 것도 있지만, 인쇄가 돼 있지 않거나 색이 밴 뒷면이 보이는 경우가 있다는 것. 그 때문에 관람자들이 헷갈려 하는 것 같아 인쇄된 면을 전면으로 배치하느라 거꾸로 단 태극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 괘로 보아 유관순 열사가 들고 있는 태극기는 현재의 태극기다.
ⓒ 임윤수
▲ 괘로 보아 유관순 열사가 들고 있는 태극기는 현재의 태극기다.
ⓒ 임윤수
설명을 들어도 이해되지 않는다. 꼭 한쪽만 인쇄된 태극기를 사용해야 했다면 당시 상황 그대로 백지만 보이는 그런 형태로 전시하는 게 당시의 태극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방향에 관계없이 꼭 인쇄된 면을 보여줘야만 했다면 현재의 국기처럼 양면을 인쇄해 걸면 될 것을 억지로 한 쪽 면만 인쇄한 태극기의 한쪽 면을 보여주느라 태극기를 거꾸로 매단 모양으로 전시를 하고 있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어떻게 하는 것이 시대적 상황이나 시대의 정신을 살리고 사실에 가깝게 표현하는 것인지 고민해 볼 부분이다. 관람자들의 시선만 의식해 시대적 정신이 함축된 태극기까지 거꾸로 매단다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역사를 기록하고 표현하는 데 진지한 고민 있어야

영정과 기념관에 전시된 조형물의 태극기만 그런 게 아니다. 추모각으로 들어가는 진입로 오른쪽 광장에 세워진 열사의 동상에서 유관순 열사가 들고 있는 태극기도 현재의 태극기로 제작돼 있다.

▲ 유관순 열사 탄신 200주년을 맞아 2102년 4월 1일에 개봉한다는 이 타임캡술에는 어떤 형태의 태극기가 기록돼 있을지 궁금하다.
ⓒ 임윤수
일반적인 예술품이라면 몰라도 역사의 현장에 세워진 동상이라면 이 또한 사실에 충실해야 한다. 역사는 있는 그대로 기록되거나 표현돼야 한다. 자의적 판단이나 자의적 가치에 따라 표현되거나 기록되는 역사는 알게 모르게 역사를 왜곡하거나 훼손한다.

태그:#유관순, #태극기, #영정, #3.1운동, #추모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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