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보름날(4일)은 마침 첫 일요일이어서 박물관 무료입장일과 겹쳤다. 박물관에서는 지난 2월초 설날맞이 행사와 함께 대보름날 행사를 알리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많은 관람객들에게 나누어주고 미리 홍보하였다. 방패연 모양의 예쁜 안내 팸플릿은 그것만으로도 간직하고플 만큼 멋졌다.
이렇게 대보름 행사를 마련했지만, 하필이면 비가 내리는 바람에 제대로 치를 수 없게 되었다. 비만 내려도 하기 어려운 종이 공예 등의 체험학습 마당은 이날따라 바람이 거세게 몰아쳐 도저히 바깥마당에서 진행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간간히 내리는 빗속에서 행사를 중단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야외에서 계속 진행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박물관에서는 학예사들의 발 빠른 대처로 재빨리 장소를 바꾸어서 보름 행사의 하나로 진행되던 연 특별전시장에서 체험 학습을 할 수 있도록 임시 장소를 마련하였다.
좁고 어수선하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일부러 찾아온 관람객들에게 실망을 안겨줄 수 없다는 판단으로 마련한 장소에서는, 관람객이 많지 않은 탓이긴 했지만 아늑한 분위기에서 차분하게 행사가 진행되었다. 액을 날려 보내는 연 만들기, 한지공예, 민화그리기, 단소 만들기, 탈 만들기, 정승 되기 등의 관람객 참여 프로그램들이었다.
아무리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도 실내에서 할 수 없는 놀이가 있었다. 커다란 장대에 볏가리를 내거는 '풍년 기원 볏가릿대 세우기'와 줄다리기였다.
볏가릿대는 긴 장대와 작은 볏짚으로 만든 오쟁이에다가 쌀을 넣어서 2월 초하루까지 놔두었다가 거두어서 그 양을 재어보고 얼마나 곡식을 거둘 수 있을지 점쳐보는 전래풍속이다. 민속박물관 잔디밭에 조릿대를 세우고 줄다리기를 할 줄을 매는 것을 직접 체험하게 한 줄다리기엔 무려 40여명이 참여해서 조별로 줄다리기 줄을 한 가닥씩 만든 후 이 줄들을 합쳐 튼튼한 큰 줄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직접 체험하는 마당이었다.
야외에서 진행된 이 두 가지 행사(볏가릿대 세우기, 줄다리기)에는 민속박물관의 어린이 박물관에 들어가면 볼 수 있는 세시풍속을 알리는 영상물을 촬영하였던 충남 서산시 장현리 마을 분들이 함께했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거세어서 힘들었지만, 참여한 관람객들이 비옷을 입고 열심히 손을 모아 줄다리기 줄을 만들어 가는 모습은 우리 전통을 그대로 보여줘 먼 옛날로 되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민속박물관의 앞뜰에서는 '대보름 귀 밝기 술 시음회'도 열리고, 엿장수의 구성진 가락에 맞춰서 파는 울릉도 호박엿 판매도 진행했다. 그러나 대미를 장식한 놀이는 역시 풍물패의 지신밟기 놀이였다.
이렇게 멋진 행사를 망친 비가 원망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날씨에 맞춰서 임기응변으로 마련한 행사가 관람객들에게 헛걸음을 하지 않게 해줬다. 그런 날씨 속에서도 옛 모습을 보이려는 값진 노력이 더 돋보이기도 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녹원환경뉴스, 디지털특파원, 개인불로그 등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