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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당의 승리 소식을 전하는 에스토니아 최대 일간지 <포스티메에스> 인터넷판.
개혁당의 승리 소식을 전하는 에스토니아 최대 일간지 <포스티메에스> 인터넷판.
집권 개혁당, 2석 차이의 이슬아슬한 승리

지난 3월 4일 실시된 에스토니아 총선은 중도우파계열인 집권 개혁당의 승리로 끝이 났다.

현직 총리인 안드루스 안십이 이끄는 개혁당은 선거 결과 총 101개의 의석 중에서 31석을 따내는데 성공했고, 전체 28%의 표를 얻어냈다. 2위는 중앙당이 차지했으나, 전체 의석 중 29석, 그리고 26%의 표를 얻어냈다는 점에서 1위 개혁당과의 차이는 아주 미미하다.

선거가 시작되기 전 한 신문사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이번 선거에서 2위를 차지한 중앙당이 선거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결과가 나온 바 있었기 때문에 결과는 약간 예상밖이다.

에스토니아 최대 여당이었던 보수당 '레스 푸블리카'와 조국연합 두 정당이 합당해 창설된 'IRL 연합당'이 레스 푸블리카의 명성에 힘을 입어 이번에도 최대 여당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으나, 기대에 많이 못 미쳐서 3위에 머물렀다.

또 지금까지는 그다지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던 사회민주당이 작년 이 정당의 후보였던 토마스 헨드릭 일베스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의 영향으로 괄목한 발전을 이루어 4위를 차지한 것이 이번 선거의 작은 이변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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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맞닥뜨린 적과의 동침?

이번 선거에서 승리한 에스토니아 개혁당은 완전한 자유시장경제에 기초한 자유주의 정치를 지향하는 정당이다. 현직 총리인 안드루스 안십을 비롯한 외무장관 우르마스 패앳 등을 배출한 정당으로, 독립 초기부터 정부를 이끌어왔기 때문에 에스토니아 내에서는 그 영향력이 아주 막강하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총선에는 소득세를 4년간 18%로 낮추고 연금을 두 배로 늘리며 모든 아이들에게 유치원 무상교육을 약속하는 등 서민들의 생활과 세금 개혁 문제에 많은 초점을 맞춘 공약을 내건 바 있다.

2위를 차지한 중앙당은 에스토니아에서 가장 카리스마 있는 정치인으로 불리는 에드가스 사비사르가 총수로 있는 당으로서, 현재 탈린 시장을 맡고 있는 유리 라타스 등의 막강한 정치인들이 많이 소속되어있다.

사비사르의 카리스마에 의지한 인상적인 정치활동과 중산층 및 중소기업을 우선으로 하는 정책 등으로 많은 지지를 받기도 했지만, 사비사르의 지나친 카리스마적 정치와 유럽연합 가입을 반대하고 친 러시아적 정책을 펼쳐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중앙당의 정치적 성과는 에스토니아의 북부와 러시아 소수민족들의 지지에 많은 빚을 지고 있는데, 이번 선거에서도 러시아인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는 동부 지역에서는 압도적인 승리를 이루었다.

보는 바와 같이 정치색깔이 완전히 다른 이 두 개의 정당이 앞으로 에스토니아 정치분위기를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 예상이 분분하다. 특히 연정 구성의 중심이 될 개혁당은, 과연 그 파트너로 누구를 선택할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안십 총리는 5일 아침 에스토니아 국영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정부는 우파와 좌파 등 여러 성향의 정당들이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서 누구를 편애한다는 감정을 중화시키려 노력했으나, 현재 다소 우파 중심적인 정부가 구성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한 편이다.

우울한 표정의 중앙당 총재 사비사르. 아마 에스토니아의 국민들은 이런 분위기의 사비사르를 보는 것이 처음일지 모른다.
우울한 표정의 중앙당 총재 사비사르. 아마 에스토니아의 국민들은 이런 분위기의 사비사르를 보는 것이 처음일지 모른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전자선거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바대로, 이번 총선에서도 역시 전자선거 방식이 채용됐다. 2005년 지방선거에서 세계 최초로 전국 규모 선거에 전자선거 방식이 사용된 이래, 연이은 세계 두 번째의 전자선거이지만, 총선에서 사용된 것은 역시 세계 최초이다. 본 선거는 3월 4일에 실시되었지만, 전자선거는 그보다 이른 2월 26일부터 28일까지 3일간 시행되었다.

전자선거는 'www.valimised.ee'라는 전자선거 전용 사이트를 통해서 매일 현지 시각 아침 9시부터 저녁 8시까지 참가가 가능했다. 그럼, 세계 최초의 전자총선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살펴보자.

전자선거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수적이다. 일단 개인 ID카드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주민등록증 정도 되는데, 각자의 카드마다 마이크로칩이 부착되어있어 신분증 이외에 여러가지 용도로 사용이 가능하다. 에스토니아는 은행을 통해서 신분증을 발급해 준다.

은행에서 신분증을 발급받는 것과 동시에 주민등록번호와는 다른 별도의 고유비밀번호 두 가지를 부여받는다. 이 비밀번호는 전자구매나 신 본인확인을 위해서 필수적이다.

말하자면 인터넷 사이트에 우리나라는 주민등록증과 본명을 집어넣으면 간단하게 본인확인이 끝나기 때문에, 주민등록증을 분실하거나 번호가 유출되었을 경우 개인정보도용 등의 문제로 밤잠을 설치게 되지만, 이곳에서는 번호를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고 그 번호를 사용하기 위한 비밀번호를 알 수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부모들이 자신의 주민등록증을 이용해서 아이들이 딴짓을 하지는 않을지 전혀 염려할 필요가 없다. 비밀번호는 언제라도 변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ID카드를 인식할 수 있는 카드판독기가 필요하다. 카드판독기는 주변 컴퓨터 기기 상점에서 7000원 정도의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이 가능하다.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는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전자선거에 필요한 소프트웨어가 별도로 있으나 그것은 전자선거 사이트에 접속하면 쉽게 내려받을 수 있다. 그리고 ID 카드의 인터넷 사용을 위한 별도의 소프트웨어 또한 설치해야 한다. 위의 장비를 갖추고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면 불과 5분 안에 선거를 끝낼 수 있다.

전자선거에 참여하기 위해 카드판독기를 구입하려는 사람들로 인해, 에스토니아 컴퓨터용품 상점이 꽤 호황을 누린 것도, 이번 선거가 낳은 결과 중의 하나이다.

기대 못 미친 저조한 참여율... 그러나

@BRI@지난달 26일 저녁 에스토니아 주요 신문이 집계한 결과에 의하면 전자선거 실시 첫날 하루 동안만 약 2만5천 명이 인터넷을 통해 선거를 마친 것으로 나타나 높은 호응도를 보이는 듯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전체 참가자 중 3.5%에 불과한 사람들이 전자선거에 참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렇게 저조한 참여율이라면 전자선거는 돈만 들이고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것이 아니었느냐 하는 평가도 충분히 가능하다. 전자투표 참여에 필수적인 카드판독기 구입과 ID 카드 사용을 위한 프로그램 설치 등 여러 제약이 있던 것도 더 높은 참여율을 올리지 못한 이유다.

그러나 현지에서는 전자선거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는 분위기다. 이번 총선에서는 61.99%라는 놀라운 투표율을 보였다. 이는 본선거 이외에 전자선거가 무려 4일이나 이어지면서 사람들을 선거에 꾸준히 관심을 갖게 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다.

젊은이들의 관심을 많이 받고 있는 개혁당이 중앙당을 누르고 승리할 수 있게 된 것도 전자선거의 공이 크다는 분석이다. 전자선거만의 투표 결과에 의하면 개혁당 지지율이 34.5%나 되었다.

그 외에도 선거 기간 중 투표가 불가능한 사람들을 위해서 본선거 이전에 투표를 할 수 있도록 별도의 조치가 취해진 것도 투표율을 높이는데 한몫 했다.

게다가 에스토니아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러시아인들이 언어상의 문제로 선거를 포기했다는 것도, 이번 선거결과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이번 선거에 전자선거가 없었고, 러시아인들이 참여를 높힐 수 있었더라면 에드가르 사비사르의 카리스마엔 정치적 권력까지 실릴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인터넷 선거를 최초로 실행한 나라가 에스토니아는 아니다. 이미 이전에 스위스의 겐피(Genfi)주나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소규모의 전자선거를 실시한 적이 있고, 영국이나 네덜란드에서도 2004년 유럽 의회 선거시 전자선거를 도입한 바 있다. 그러나 총선이나 지방선거 같은 전국 규모의 선거에서 전자선거가 실행된 것은 에스토니아가 최초이다.

2005년 지방선거에서 실시된 전자선거는 많은 젊은이들의 관심을 선거에 집중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 바 있다. 그 결과 20대 후반의 젊은 정치인들이 대도시의 시장직과 장관직을 맡는 등 젊은이들의 정치진출을 가속화시키기도 했다.

현재 에스토니아 정부는 러시아와 유럽연합 사이에서 갈수록 복잡해져가는 정세 속에서 올바른 방향을 잡고 전진해야할 책임을 안고 있다. 이제 단지 IT분야 만이 아니라 성숙된 정치라는 차원에서도 유럽 최고로 부상할 수 있을까.
#에스토니아#전자총선#투표#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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