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실무그룹 1차 회의가 6일(현지시각) 끝났다.
총 8시간에 걸친 회담을 마친 뒤 연 기자회견에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차관보는 "북한과 매우 유익한 회담을 가졌다, 이제 우리는 제 궤도에 들어섰다"고 평가했다.
@BRI@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도 밝은 표정으로 "이번 회담 분위기는 아주 좋았고, 건설적이었으며 진지했다"면서 "앞으로 결과를 두고 보라. 지금 다 말하면 재미 없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힐 차관보는 "우리가 초기조치 이행단계 60일 동안 잘 해나갈 것이며 '2·13 합의'에 규정된 목적들을 달성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 미북 양측은 낙관적인 전망을 갖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고농축우라늄(HEU) 문제 해결의 필요성에 대해 양측이 의견을 모았으며 전문가 수준의 협의를 갖기로 합의했다"며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서는 HEU 프로그램에 대한 '완벽한 해명'이 필요하며 추가적인 기술적 협의가 도움이 될 것이라는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HEU 핵프로그램에 대해 먼저 언급했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힐 차관보는 북한을 테러 지원국 명단에서 해제하고 외교 관계를 수립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심도깊은 토론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테러지원국 명단 문제도 관계 수립 문제 만큼 심도있게 논의했다. 우리는 정치적·법적인 면에서도 논의했고 솔직히 말해 북한이 명단에 처음 오르게 된 역사적인 측면도 논의했다"고 전했다.
힐 차관보는 한반도 평화 체제에 대한 언급도 했다. 그는 "이번 회담에서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을 만들어내기 위한 '메커니즘'을 논의하기로 합의했다"며 미국은 조속한 시일 안에 한반도의 정전체제를 대체할 평화 메커니즘을 어떻게 창출할지를 밝히기 위한 절차가 시작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회담에서 북한측과 양국간 전반적인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며 "2·13합의' 1단계인 60일 이후 단계에 대해서도 유익한 토론을 가졌다"고 덧붙였다.
미, HEU 문제에 대해 다시 확신
다음 북미간 실무 협의는 오는 19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6자회담 직전에 열린다.
이번 북미간의 협상 내용은 지난 2·13 합의에 규정된 것이다.
2·13 합의에는 초기 60일(4월14일까지) 북한은 영변 핵시설 등을 폐쇄·봉인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으며, 모든 핵프로그램의 목록을 여타 참가국들과 협의하기로 되어있다. 또 이 기간동안 북한과 미국은 전면적인 외교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양자대화를 개시하며, 북한을 테러지원국 지정으로부터 해제하기 위한 과정과 북한에 대한 대적성국 교역법 적용을 종료시키기 위한 과정을 진전시켜 나간다고 되어있다.
일단 가장 현 단계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북한의 HEU문제다. 최근 미 관리들이 이전의 태도에서 한발 물러나 '중간 수준의 확신' 정도로 말을 바꿨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5일 기사에서 부시 행정부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이는 북한의 체면을 살려주면서 HEU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라며 "북한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이 무기가 아닌 에너지 생산을 위한 것이었으며 그나마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다고 변명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국제문제조사연구소 조성렬 기획실장은 "저농축 우라늄은 경수로 원료로 쓰인다, 북한은 평화적 핵 이용차원에서 저농축 우라늄을 실험실 수준에서 했다고 변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 실장은 "그러나 북한은 지난 2002년 북일 수교를 위해 일본인 납치 문제를 인정했다가 나중에 큰 곤경에 처했다"며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인정했다가 비슷한 상황에 직면하지 않을 까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미 행정부가 HEU 문제에 대해 한발짝 물러서자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정보오판과 똑같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를 의식한 듯 6일 한국을 방문한 존 네그로폰테 미 국무부 부장관은 "북한이 HEU 프로그램을 보유해왔음을 전혀 의심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힐 차관보도 6일 "북한은 파키스탄으로부터 얻은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가동하기 위해 알루미늄관과 다른 장비들을 구입하는데 많은 돈을 썼다"며 "그들은 이를 분명히 해명하고 관련 장비를 폐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연락사무소 개설 과정도 생략?
테러지원국 해제와 대 적성교역법 종료 문제는 북한 입장에서 볼 때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의 완화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은 징표다.
미국은 지난 1987년 김현희에 의한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이 일어나자 이듬해 1월 북한을 테러 지원국으로 지정했다. 테러 지원국으로 지정되면 ▲무기수출 금지 ▲테러에 사용될 수 있는 이중용도품목 수출통제 ▲대외원조 금지 ▲무역제재 등의 조치를 당한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통화기금(IMF)·세계은행 등 국제금융기관으로부터의 금융 지원도 받지 못한다.
테러지원국 해제는 미 행정부의 재량사항으로 부시 대통령이 의회측에 "해당 국가가 현재 국제테러를 지원하지 않고 있고, 향후에도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공식 확인해야 한다. 또 최근 6개월간 국제테러를 지원하지 않고 있음을 의회 쪽에 증명해야 한다. 현재 북한을 비롯, 쿠바·이란·수단 등이 이 명단에 들어있다.
대 적성국 교역법은 지난 1917년 미국이 적대적인 국가들에 대해 무역을 제한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만들어졌다. 미국은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 북한을 이 법의 적용 대상국으로 포함시켰으며 수출관리법·국방 생산법을 적용해 북한과의 상업 및 금융거래를 실질적으로 금지하고 대북 경제 지원과 원조를 제한했다.
제네바 합의 이듬해인 1995년 미국 상품의 북한 반입 제한 조치·북한과 외국간 거래시 미국 무역 선박의 북한 입항 금지 조치 등이 풀렸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재발사 유예 이후인 지난 2000년 6월 북한 자산 동결·경제 지원 제한 조치 등 경제 제재 조치가 상당 부분 해제됐으나 여전히 많은 제한을 받고 있다.
이제까지 많은 전문가들은 테러지원국 해제→평양과 워싱턴에 각각 북미 연락사무소 개설→북미 수교 협상 본격화로 단계로 진행될 것으로 보통 예상했다. 그러나 힐 차관보는 6일 기자회견에서 "연락사무소 설치는 미국과 중국의 수교과정에 성공적인 케이스로 작용했지만 북한이 이런 중간단계를 원하지 않고 있어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테러 지원국 해제 문제가 풀리면 북미 수교협상이 급물살을 탈 수 있음을 예고한 것이다.
북, 주한미군 철수 요구할 까?
그런데 아직은 먼 미래의 일처럼 보이지만 북미 수교협상이 본격화되면 필연적으로 등장할 문제가 주한 미군 문제다. 그리고 이는 단지 북미간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내부에서 첨예한 보혁갈등을 일으킬 사안이다.
북미 관계가 정상화되면 한반도에 평화협정이 맺어지는 것이고 이는 바로 주한미군의 위상과 역할에 중대한 변화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힐 차관보는 6일 기자회견에서 "이번 회담에서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을 만들어내기 위한 '메커니즘'을 논의하기로 합의했다"는 말했다. 의외로 빠른 시간안에 주한미군 문제가 논란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6일 통일연구원 허문영 평화기획연구실장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방안'이라는 논문을 통해 "북한은 핵 동결의 대가로 경제적 보상을 받고, 핵 폐기의 대가로 북미관계 정상화와 함께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렇게되면 보수진영에서는 당장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고 이를 관철시킨 뒤 남한을 공격할 것"이라고 반발할 것이다.
그러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6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북한의 미군철수 주장은 명분차원에서 제기하는 것일 뿐 실제 국제정치의 현실을 감안해서는 달성될 수 없다는 것을 북한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991년 1월 20일 김용순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비서가 워싱턴에서 아놀드 캔터 미 국무부 차관을 만나 미군의 남한주둔을 용인하는 조건에서 미·북수교를 요청했었다"며 "더구나 지금은 주한미군이 동북아기동군으로 변모하고 전시작전권도 이양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